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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l 18. 2019

수요일에 도마를 말렸다

쥐포도 구워 먹고


수요일은 새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작년에도 생신 때 여행을 가시더니 올해도 가셨다. 생일날 혼자 집에 계시기 쓸쓸해서가 아니었을까.


수요일 오전엔 얼마나 한가하던지! 새벽 4시에 남편이 출장을 가느라 같이 일어났더니 오전 시간길고도 길었다. 아이를 깨우기 전까지 글을 쓰고 아이를 보낸 후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한가함 배가 되었다. 이번 주에 알바를 가니 가게 주인이 금에 이어 수요일도 쉬라고 해서 알바를 가느라 서두를 도 없었다. 곧 한국에 갈 거니까 상관없지 않냐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예상치 못한 휴무였으나 일이 늘 그렇게 일어나법이지. 예고가 있나.


월요일부터 날씨는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아침엔 쌀쌀하나 낮에는 더웠다. 일찌감치 당일글도 완성했고, 밀린 설거지도 말끔하게 해치웠고, 쓰레기도 분류해서 내놓았으니 이제 아침 햇살과 커피와 음악에 묻힐 차례였다. 아이가 독일 할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빨간 라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산뜻한 음악이 날씨와 잘 어울렸다. 날씨를 핑계 삼아 다섯 개의 도마를 차례로 씻어 햇볕에 말리자 더 이상 일도 없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쥐포였다.


쥐포의 맛을 안다면 올드한 세대 아닐. 요즘 젊은 세대들도 쥐포를 먹나. 내가 수십 년 만에 쥐포를 먹은 것은 현경이 집에 갔을 때였다. 현경 아빠가 한국에 출장을 갔다가 공수해 온 품목이었다. 쥐포라니! 이름은 좀 해괴하나 우리 세대에겐 추억의 먹거리다. 쥐포라는 만 들어도 부산의 갈치와 국제시장과 영화관이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영화관 앞에 가면 연탄에 쥐포를 구워서 팔곤 했다. 얼마 전에 현경 네로부터 쥐포 한 봉지를 선물 받은 게 생각나서 오븐에 구웠는데 혼자 먹으니 역시 맛이 덜했다.



전날에는 알바를 마치고 아이 학교로 오는 길에 젠들링어 토어 꽃가게에서 핑크빛 장미 꽃다발을 보았다. 얼마나 예쁜지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격은 12.95유로. 조금 비쌌지만 아이의 방과 후 선생님께 선물했더니 기뻐하셨다. 아이의 선생님은 두 분이다. 오전 수업 담당 교사는 프라우 쾨너 Frau Körner. 오후 방과 후 담당은 프라우 랑겐바흐 Frau Langenbach. 방과 후 샘심성얼마나 고우도움을 많이 받았다. 화요일은 아이를 1시간 일찍 데리러 했지만 톡을 보내 4시까지 있도록 편의를 봐주셨다.


전날 저녁에는 아이가 여행 중이신 레겐스부르크의 할머니께 생일 축하 엽서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수요일이 새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작년에도 생신 때 여행을 가시더니 올해도 가셨다. 생일날 혼자 계시기 쓸쓸해서가 아니었을까. 새벽에 일어난 김에 어머니께 축하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멋진 날이 되시기를 바라요. 내년에는 저희와 함께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로 해요!'라고 더니 한참 만에 고맙다, 답이 도착했다. 집을 떠나신다고 쓸쓸함이 사라지겠나. 같이 밥도 먹고, 좋아하시는 미술관에같이 가고, 아이와 시간도 보내셔야 즐겁지.


수요일엔 아이가 일찍 데리러 오라 했으니 두 시에 픽업을 가야 했다. 두 시까지 시간이 남아서 오래전에 한국 친구가 가져다준 맥심 믹서 커피가 한 개 남아 있길래 물을 데워 끈하게  잔 마셨다. 아침에는 삶은 계란도 먹었다. 남편에게 주려고 삶았는데 기차 시간 때문에  먹고 가서 남은 것이었다. 여기서는 반숙에 걸리는 시간이 13분이다. 저녁에 우리 집에 들른 바바라에게 최근에  콩국수 라면을 끓여줬더니 맛있다고 했다. 바바라는 매운 것을 못 먹는다. 긴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어제처럼 도마를 말릴  한가한 수요일이 언제  려나. 쥐포도 반이나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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