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차 소리, 트람 지나는 소리,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 바람 소리까지 섞어마시면 노동의 귀함과 휴식의 기쁨이 짜고도 달달하게 혀끝에 남았다. 고작 두 시간 일하고도 그랬다.
3월부터 다섯 달 동안 해오던 알바를 그만두었다. 어제는 알바생활 중 가장 바쁜 날이었다. 오후 2시가 지나도록 손님이 줄을 섰으니까. 주 2회로 알바 횟수를 줄인후 오랜만에 출근했더니 단골이면서언제나 친절하던독일 여자분으로부터 다시 얼굴을 보니반갑다는 인사를 받았다. 내가 하도 안 보여 휴가라도 간 줄 알았단다. 사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를 친절한 직원으로 기억해 준 고객이 있어 고마울 뿐. 실제로 해보니 두 시간의 알바는 육아에도 가계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론 안 한 것보다는 백 배 나았다.
알바를 하며 남편의 고뇌와 가장의 무게를 생생하게 느낀 것이가장 큰 소득이었다. '닥치고 3년 글쓰기'라는 목표점을 1/3 지나며 어떤 일이건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독일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남편의 사업 역시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생각도 최근에 들었다. 사업도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버티는 게 중요할것 같았다. 최소 3년, 기본 5년, 길게는 10년.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만일의 경우까지 고려해서 접시를 닦기보다는 기술을 닦는 게 나을 것같았다. 마사지도 기술로 본다면.
알바 가게에서 마사지에 대한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발마사지 자격증을 땄다는 얘기를 꺼내자마자 펄쩍 뛰었으니까. 그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마사지 일이 그렇게도 싫나. 궁금해서 뮌헨의 마사지 숍을 검색했더니 열에 아홉이 타이 마사지였다. 그쪽으로 유입되는 아시아계 여성 인력이 많다는뜻이다. 근무 조건이 독일 평균치에 비해 열악할 수도 있겠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해보면 알겠지.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내 나이가 몇인데. 하루라도 빨리 실전에 뛰어드는게 최고의 전략이다. 완벽히 다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누구나 하면서 배운다. 경험이 힘이고, 경력이곧 실력이니까.
처음 알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오래 할 작정이었다. 내가 어디 가서 일자리를 구하겠나. 그 점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막상 일을 해보니 다른 일에도 도전할 자신이 생기더라는것. 두 시간은 너무 짧고 돈이 안 되니까. 기왕 할 바엔 돈도 버는 게 좋지 않나. 제일 성가신 건 시도 때도 없는 독일의 방학이었다. 두 시간 일하러 매일 애를 집에 두고 나와야 했으니까. 오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세 시간이 넘었다. 차라리 이, 삼일 풀타임으로 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독일에서는 이것을 타일 차이트 아르바이트 Teil Zeit Arbeit라 부르는데 의외로 잘 정착되어 있다. 2주 방학을 해도 그때만 할머니 두 분께 아이를 맡기면 되니까.
정리는 그렇게 했지만 막상 그만둔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서. 가게 주인의 말대로 처음엔 오래 할 것처럼 나섰으니까. 그 때문에 내 나이를 고려하고도 뽑아준 거니까. 그래도 어쩌겠나. 최선의 길을 선택해야 후회가 없고 누구를 원망하지 않게 된다. 실망은 되더라도 얼굴 붉히지 않고 헤어지면 웃으며 다시 만날 수도 있다. 한국 다녀오면 친구 마사지 가게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고맙게도 예상하고 있었다며 두말없이 받아주었다. 가게 주인의입장에서 익숙한 사람이 나간다는 말보다 더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을 텐데도 말이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작년 봄에 시도했던 뮌헨의 문학 모임과 올봄에 시작했던 알바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니 감회가 새롭다.
가을에는 아이도 독일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인 4학년이 된다. 1년만 지나면 중고등 과정으로 진학하는 것이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도전은 언제나 옳다. 알바를 하는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오후 2시 반에서 3시 반 사이. 2시에 일을 마치고 가게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아이를 픽업하기 전에 젠들링거 토어 Sendlinger Tor 사거리의 노천카페에서 오후의 휴식 시간을가졌다. 라바짜의 푸른 파라솔 아래 에스프레소 한 잔이 다였지만 그럼에도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황설탕 티스푼 하나에 차 소리, 트람 지나는 소리,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 바람 소리까지 섞어마시면 노동의 귀함과 휴식의 기쁨이 짜고도 달달하게 혀끝에 남았다. 고작 두 시간 일하고도 그랬다. 시원섭섭하구나. 굿바이 첫 알바여, 오후의 서늘했던 라바짜 그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