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바쁠수록 좋다고 철학관에서 말했다

호텔 4

by 뮌헨의 마리


옛날에 철학관에서 내 사주는 바쁠수록 운도 좋아지는 케이스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모양이다. 이보다 더 바쁠 수는 없다.





어제는 월요일답게 바빴다. 독일에 살면서 바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진짜로 바빴다. 새벽의 호텔 출근길엔 먹구름. 바람의 세기로 보나 착착 감겨드는 공기의 감촉으로 보나 오후의 비 소식은 틀림없어 보였다. 월요일답게 각오를 하고 갔는데 임시 직원까지 출근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물어볼 틈이나 있어야지. 조식 서비스 동료인 미나가 말했다. '너랑 나랑 둘이 호흡 맞춰 어떻게든 해 보자.' 내 생각도 그랬다.


게스트가 내려오면 자리를 안내하고, 커피를 마실 건지, 티를 마실 건지, 커피라면 어떤 커피를 원하는지 물어본다. 블랙을 원하는 손님에겐 커피 포트에 커피를 담아 내준다. 우유는 테이블마다 미리 올려놓는다. 카푸치노나 밀크 카페나 라테 마키아또는 그렇다 쳐도 놀랍게도 아침부터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손님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소형 커피 머신에서 내려서 가져다준다. 티는 본인이 직접 골라 티폿에 전용 뜨거운 물을 담아가도록 한다.


두 번째는 계란. 삶은 계란은 뷔페에 준비되어 있으니 괜찮다. 문제는 스크럼블드 에그를 원하는가, 계란 프라이를 원하는가. 스크럼블드 에그에도 종류가 있다. 플레인이냐 토마토냐. 치즈냐 햄이냐. 계란 하나를 가지고 이토록 많은 선택지를 던질 수 있다는 게 더 놀랍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룸 넘버 체크하기. 경이로운 건 영어도 안 되는 미나가 영어 쓰는 손님이 꽤 되는 호텔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하는 것이다. 대신에 미나는 프랑스어와 이태리어가 된다. 모국은 모로코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면서도 프로답게 쟁반에 햄과 살라미를 척척 준비할 때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어제는 아이 학교에 볼 일이 있어 호텔을 일찍 나와야 했다. 목표는 오후 1시. 과연 1시까지 뷔페 준비를 끝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다행히 미나가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사십 대 후반인 미나는 2년 전에 그리스 남자와 결혼해서 뮌헨으로 왔다. 아이는 없다. 칸인가 니스에서 일할 때 뮌헨에 살던 지금의 남편이 여행을 왔다가 만나 결혼했다. 당연히 독일어는 딸린다. 뮌헨 시내 호텔에서 일하는 미나의 남편이 지금의 호텔을 알아봐 준 이후로 지금까지 2년간 일하고 있다. 호텔 주인 할머니와 할머니의 딸과는 가끔 이태리어로 대화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중요한 문제라는 신호다.


어제 오후 학교에서 볼 일을 마치고 아이와 남편과 셋이 슈탄베르크로 갔다. 시어머니와 양아버지를 찾아뵈려고. 일요일 방문이 무산되어 실망이 크셨을 것이다. 아이 감기는 다 나았는지, 내가 새로 시작한 호텔 일은 어떤지 궁금도 하실 것이고. 비는 내리고 아이의 무거운 학교 가방에 우산까지 받쳐 들고 S반을 타고 다녀오는 것이 엄두가 안 났다. 전날 밤에는 아이가 잠결에 계속 엄마를 부르는 바람에 깊이 잠들지도 못했다. 나도 아이도 피곤하다고 남편이 차로 같이 가주었다. 두 분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내가 호텔에서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 잘하고 있다는 말씀을 듣고는 흐뭇해하셨다.


옛날에 철학관에서 내 사주는 바쁘게 살수록 운도 좋아지는 케이스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모양이다. 이보다 더 바쁜 건 사양이다. 결혼도 늦을수록 좋다고 해서 어쩌다 보니 그 말대로 되었다. 인생 초중반 운보다 말년 운이 좋다는 말도 믿어볼 작정이다. 어제는 미나가 며칠 묵은 이태리 부부와 그새 정이 들었는지 떠날 때는 서로 다정하게 볼 키스를 나누는 것도 보았다. 주방과 홀을 정신없이 오가던 미나가 내게 큰소리로 말했다. '50센트 동전 두 개를 팁으로 받았어. 너하고 나하고 하나씩 가지는 거야!' 요즘 행운의 동전이 자주 들어오는 것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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