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역시 국화지

한글학교 방과후 수업은 동양화

by 뮌헨의 마리


나는 국화를 사랑했다. 매난국죽 중에서도 국화가 가장 좋았다. 시월처럼 서늘하고 긴 줄기 하며, 심심할까 봐 두 개씩 찍은 점까지. 백미는 그리움이 깊어지듯 겹겹이 쌓여만 가는 꽃잎들.


아이가 그린 국화. 가운데 두 줄과 윗부분 잎 두 개는 선생님의 첨삭. 역시 줄 하나 잎 하나도 선생님의 각은 다르다!



한글학교에서 아이가 방과 후로 동양화를 시작한 건 작년 가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강자가 적어서 안타깝다. 처음에는 또래 친구가 없다고 가지 않으려 해서 내가 같이 들어갔다. 선긋기를 배우고 시작한 것은 난이었다. 난이 오죽 어렵나. 해도 해도 늘지 않는 난을 치느라 난리를 칠 무렵 그만두었다. 올해 봄이었다. 한글학교 우리 반에 새 친구가 왔다. 아이는 그 친구와 단짝이 되었고, 동양화 반에도 엄마 말고 친구와 갔다.


지난주에 아이는 새로운 테마를 시작했다며 자랑스럽게 작품을 들고 왔다. 국화였다. 나는 국화를 사랑했다. 매난국죽 중에서도 국화가 가장 좋았다. 시월처럼 서늘하고 긴 줄기 하며, 심심할까 봐 두 개씩 찍은 점까지. 실제보다 풍성한 잎들과 깊었다가 얕아지는 먹물의 그늘에도 자꾸 눈길이 갔다. 백미는 역시 촘촘한 꽃잎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겹겹이 그리움이 쌓이듯 쌓여만 가는 꽃잎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저런 게 미다. 차곡차곡 쌓이는 내 글도 저랬으면.


옛날 상해에 살 때 나 역시 잠깐 동양화를 배웠다. 배울수록 매혹적이었다. 색도 없이 검은 먹 하나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세계. 배운다기보다 동양화 선생님의 붓질을 보는 즐거움으로 다녔다고 봐야겠지. 중국 동양화 선생님은 바위를 특히 잘 그리셨다. 선생님의 붓질 하나로 매, 난, 국, 죽이 생명을 얻은 듯 화선지 위에 꽃으로 잎으로 줄기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선생님의 국화에서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꽃잎들. 언제까지나 젊고 검푸르게 화선지 위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던 꽃잎들. 그때부터 반했다.




동양화만큼 아이의 한국어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전에는 단어를 한 글자씩 읽었다면 이제는 한 단어씩 통으로 읽었다. 저녁에 책을 읽어줄 때면 소제목은 아이가 읽도록 니 금방 달라진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중요하다. 언어를 배우는 단계에서 가장 큰 발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글학교 다닌 지 1년 반 만의 성취. 고맙고 기쁘다. 중고등 과정까지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 거기서 한국 친구들도 사귀게 되면 좋겠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우리 같은 다문화 아이들에게 일생의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한글학교를 다녀온 토요일 저녁에 반드시 한글 숙제를 끝내기로 한 엄마와의 약속을 지켰다. 안 그러면 따로 한글학교 숙제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피곤한 건 피곤한 거고 숙제는 숙제다. '태극기 위가 빨간색이지?'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나도 헷갈렸다. '글쎄, 그런가?' '한국 사람이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당연히 위가 빨간색이지. 그것도 까먹었냐?' 아이고 참. 엄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이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없어도 괜찮다. 세상에 그런 존재는 많지 않다. 아이는 숙제를 마치고 주말 저녁에 짱구 한 편을 즐겁게 보았다.


이번 주부터 호텔 일이 조금씩 한산해졌다. 50명에 육박하던 인원은 옥토버 페스트가 끝난 이번 주부터 35명 선으로 내려왔다. 미나와 둘이서 일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숫자다. 목요일인 오늘과 내일 이틀간은 휴무다. 아침에 남편을 보내고 아이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밀린 가사를 했다. 빨래를 세 번 돌리고 그 사이 내 글방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밀린 글도 읽고 카톡도 보내는 휴식 시간은 달고도 달았다. 아이러니는 브런치 글쓰기가 늦더라는 것. 독일보다 7시간이나 빠른 한국 시간과 아이 픽업 시간 때문에 더 미룰 수도 없어 부랴부랴 마무리한다.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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