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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11. 2019

독일에서는 다 된다

뮌헨의 서점 후겐두벨


부처가 말하지 않았나.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과 상처와 싸우지 말라는 가르침이 마음에 들었다. 코에 상처가 난 부처가 인간적으로 보였다. 첫 월급으로 저 부처를 모셔오리라.


코가 깨지신 부처(왼쪽). 공부하시는 부처. 밥상이 아닙니다! 아니 밥상이면 또 어떤가.(오른쪽)



"알리시아! 엄마랑 후겐두벨 갈까?" "그래!" 수요일 오후였다. 아이는 수요일마다 시험을 친다. 이번 주에는 두 번째 독일어 시험이었다. 첫 시험은 독해였는데 이번에는 그림을 보고 순서를 정하고 내용을 쓰는 작문이었다. 독해보다 쉽기하고 어렵기 다. 나에게 그랬다는 뜻이다. 시험 전날 아이는 절친인 율리아나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율리아나와 같이 학교에 갔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나도 7시 전에 출근을 해야 해서 율리아나 엄마가 제안했다.


나야 물론 좋았다. 독해 시험은 연습 문제집을 사서 하나씩 풀도록 지도만 하면 다. 정답은 뒤쪽의 해답을 참고하면 끝. 스스로 체크가 가능하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연습을 많이 할수록 시험 때 유리하다. 지문을 읽을 때 큰 부담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문은 달랐다. 정해진 답이 없다.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원하는 대로 쓰면 된다. 아이의 시험 문제는 두 가지였다. 방청소와 요리.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는 요리를 골랐다.


율리아나 엄마가 시험 전날 아이들 연습을 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한몫했다. 아이가 다른 곳에서는 잠을  못 잔다고 해서 망설이기는 했다. 호텔에 30분 늦게 출근하겠다고 말해야 는데 까먹고 퇴근을 해버렸다. 할 수 없이 아이의 판단에 맡겼다. 집에서 푹 자고 싶다면 호텔 주인 딸 니콜과 동료 미나에게 문자를 보내면 될 일이었다. 아이는 시험 전날이니 율리아나 엄마와 시험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했다. 잠옷과 갈아입을 옷과 칫솔을 챙기고 다음날 들고 갈 도시락도 직접 싸고 싶어해서 허락했다. 이른 저녁을 먹은 후 6시 반에 학교 가방을 들고 율리아나 집으로 갔다.



빅투알리엔 마켓 한가운데의 오픈 레스토랑 Nordsee. 튀김 생선인데 의외로 느끼하지 않고 맛있다. 가격은 10유로 전후. 음식을 들고 밖의 비어가든 긴 의자에 앉을 수 있다.



시험은 그럭저럭 쳤다고 했다. 전날 몇 번 깨기는 했어 잠도 잤고, 율리아나 엄마와 연습한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시험 친 날은 쉬기로 했다. 체육시간에 신을 운동화가 작아져서 새로 사러 갔다. 신발보다 엄마를 따라 후겐두벨에 먼저 들러서 찜해 놓은 스티커 북을 사달라고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독일 할머니 댁에 가는 기차 안에서 안 심심할 거라고 면 엄마가 사 줄  뻔하니까. 마침 나는 9월 치 봉급도 받은 참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빅투알리엔 마켓의 오픈 레시토랑 노트제(북해) Nordsee에서 간만에 생선 요리를 사 주고 후겐두벨로 향했다.


내가 후겐두벨 서점부터 가자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 팁으로 후겐두벨에서 12유로를 주고 명상 굿즈 매대에서 작은 부처를 샀다. 그때 조금 큰 사이즈의 나무로 만든 부처도 보았다. 가격은 22유로. 그중 한 부처의 코가 살짝 깨진 것을 발견했다. 부처가 말하지 않았나.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과 상처와 싸우지 말고 오랜 친구처럼 함께 가라는 가르침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자 코에 상처가 난 부처가 인간적으로 보였다. 첫 월급으로 저 부처를 모셔오리라. 나 말고 누가 일부러 상처 난 부처를 사겠나. 독일에서는 상품에 하자가 있을 때 가격 조정을 의뢰할 수 있다. 그날 내가 원한 것도 그것이었다.


"깎아주겠지?" " 당연하지!" 아이의 대답에 자신 있게 2층 카운트로 내려갔다. 마리엔 플라츠 후겐두벨 점은 1층 매장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간다. 매장은 2층과 3층. 메인 카운트는 서점 2층에 있고, 3층엔 서점과 카페와 서비스 카운터가 있다. 곳곳에 앉을 곳도 않고, 창쪽으로는 뮌헨 시청사도 보인다. 최고다! 가격 상담은 명상 매장 쪽 담당자와 상의해야 한단다. 결국 15유로로 다. 이런 게 독일의 매력이다. 말로 못 물어볼 게 없고 웬만하면 다 해결된다. 억지를 부리거나 안 되는 일만 빼고. 아이가  앞에 인천공항 한국 문화 체험관에서 만든 책상을 내려놓았다. 공부하시는 부처라니. 생각보다 잘 어울리신다. 중생사가 오죽 오묘한가. 시름도 고민도 깊으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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