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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07. 2019

기뻐서 우주까지 날아간 마음

아이의 시험


매일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면 시험 결과가 안 좋아도 야단치지 않는다. 노력도 없이 요행수만 바랄 땐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낸다. 성실함이 요행이다. 다른 건 없다.




구월에 개학과 함께 아이가 아픈 적이 있었다. 감기 몸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독일 초등 4학년의 위엄은 대단했다. 매주 한 과목씩 치는 정식 시험부터 그랬다. 3학년 때까지는 시험이 자주 없다. 학기 중간과 에 한 번씩 치고, 그것으로 번의 성적표를 받는다. 성적표엔 각 과목에 대한 자기 점수기재되어 있고 등수는 다. 독일 성적표가 다른 점이다. 그래도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는 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인기가 많은 것도, 공부 잘하는 아이 엄마들끼리 친한 것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아이는 첫 수학 시험을 형편없이 치렀다. 공부를 거의 안 할 때 알아봤고, 시험 친 날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시험이 어땠냐는 질문에 보통이었다고 대답했다. 결과 역시 보통이었다. 수학을 잘한다고 태만했던 . 시험 문제는 만만하지 않았다. 각각 4점인 문제를 두 개나 틀렸다. 아이는 미에 해당하는 3을 받았다.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파파한테 어떻게 말하지 하며 울상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말하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심정을 아이는 이렇게 표현했다.


-엄마 아빠한테 마테 3 받았다고 말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일기에 쓰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데.

-인형한테 말하기도 얼마나 어려운데.



아이의 수학 마테 Mathe 점수는 보통인 3



둘째 주는 독일어 시험이었다. 독해 시험이었는데 아이에겐 독일어 역시 쉬운 과목이 아니었다. 서점에서 연습 문제집을 사서 매일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는 독일어를 우에 해당하는 2를 받았다. 자기 점수에 얼마나 감동하는지! 공부 잘하는 절친 율리아나도 2를 받았고, 우등생인 짝지 알바도 2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가 얼마나 잘했냐는 거다. 아이는 총 22문제 중에 세 개를 틀렸다. 율리아나도 세 개를 틀리고, 알바는 세 개 반을 틀렸다나. 구름 위를 걷는 아이를 지상으로 끌어내리느라 그날 엄마도 땀 꽤나 흘렸다.


이것은 과학이다. 정석이고 해법이다.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는 당연하다. 연습한 만큼 당일 시험 때 응용력이 커진다. 똑같은 문제가 아니라도 계속해 온 탄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자신감. 시험이 만만해야 실수를 줄이게 된다. 안정된 심리가 시험 당일날의 최대 변수다. 아이에겐 매일 조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시험 결과가 안 좋아도 야단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노력도 하지 않고 요행수를 바라는 건 봐주지 않는다.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낸다. 성실함이 요행이다. 다른 건 없다.



국어인 독일어 점수는 우수한 2



공부를 잘하는 율리아나는 이번에 독일어 시험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율리아나의 점수와 아이의 점수 온도차가 다르다. 율리아나는 열심히 안 해서 받은 점수고, 아이는 열심히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못 이기는 법이다. 점수보다 그 점을 칭찬했다. 셋째 주도 독일어 시험이었다. 독일어 연습 문제를 펼치던 아이가 뮤지컬 배우처럼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시선을 위로 던지며 감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독일어 2 받은  믿기지가 않아. 꿈같아!

-지붕을 뚫고 날아갈 거 같아!

-기뻐서 우주까지 날아갈 거 같아!


나 참, 저렇게 좋을까! 지붕을 뚫고, 허공가로지르고, 우주로 날아갈 것 같은 기쁨이란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상상이 지 않는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다. 스스로 찾은 기쁨이라서 더 다행이다. 다른 사람이 주는 기쁨의 최대치란 지상에서 1미터쯤 뛰어오르게 하는 정도를 넘지 않을 것이므로. 앞으로도 아이의 공부에 부침은 있겠지. 고개 숙인 해바라기처럼 시들했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를 반복겠지. 그러나 한 번의 경험이 아이를 성장하게 할  있다. 그런데 시험을 못 치면 악역은 언제나 엄마 몫인가. 파파라는 분은 야단이 뭔가. 큰소리도 화도  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악역의 결과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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