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글을 쓰고 출근했더니 잠이 부족했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아니면 소파가 너무 편안해서? 노벨 문학상 작품이 원래 지루해서? 그토록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이 지루할 리가!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새벽길이 걸어갈 만한지. 어둡지는 않은지. 겁은 안 날 지. 안전을 염두에 두고 새벽 거리를 살펴볼 계획이었다. 정 위험하다 싶으면 익숙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생각까지 했다. 이달 말에는 서머타임도 끝나서같은 새벽 6시라도 지금보다 훨씬 캄캄할 것이다. 다행히 가로등이 밝았다. 대로변을 따라 걷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간혹 나처럼 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타인인데도 반가웠다.
월요일 오후에는 이른 마감을 하고 후겐두벨 서점으로 갔다. 혼자 호텔일을 하느라 긴장했던지 서점에 도착하니 피곤했다. 그날은 주인 할머니에이어 딸까지 마감 여부를 자꾸 물어서 마음이 바빴다. 나도 일찍 마치고 가고 싶은데. 재촉을 받으니 연어와 야채 쟁반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평평한 상추가 아니라 둥근 양상추라서 더 어려웠다. 할머니 딸이 주방을 오가며 한 마디 했다. 둘 다 별로라고. 그리하여 그녀에게 양상추 사용법을 한 수 배웠다. 모를 땐 묻는 게 최고다.
서점에서는 집에서 챙겨 온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를 읽을참이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서점 곳곳에는 머리까지 기댈 수 있는 긴 회색 소파가 곳곳에 있었다. 창밖을 향해 돌려놓은 소파에 앉았는데 왜 그렇게 졸리던지. 전날 밤 글을 못 써서 새벽에 쓰고 출근했더니 잠이 부족했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아님 소파가 너무 편안해서? 노벨 문학상 작품이 원래 지루해서?그토록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이 지루할 리가! 소파가 창쪽을 향하고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화요일도 6시 30분에 출근해야 했다. 나 혼자서도 일할 수 있게 트레이닝을 시키는 거겠지. 동료인 미나가 오는 7시까지 할 일은 왜 그리 많은지. 이번에는 찻물 끓이는 큰 통이 문제였다. 코드만 끼웠다 빼는 걸로 알았는데 그날따라 물이 끓지 않았다. 나중에 미나에게 물으니 물통 뒤쪽에 스위치가 하나 더 있단다. 그런 건 안 배우면 모르는 건데 누가 알려줘야 말이지. 이렇게 하나하나 배우는 것이다. 어제는 퇴근하기 전에 홀의 커피 머신 클리닝 방법까지 미나에게 배웠다. 그것으로 배워야 할 건 거의 다 배운 셈이었다.
어제는 호텔 주인 딸 니콜에게 쓴소리도 들었다. 전날 내가 세 가지를 까먹고 퇴근했다는 것이다. 찻물 통에 물을 안 채우고, 식기 세척기 청소도 안 하고, 커피머신도 안 끄고 갔단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찻물은 깜빡한 게 맞고, 식기 세척기는 늘 주인 할머니가 마무리 청소를 하셨다. 내가 다음날 뷔페를 준비하는 동안에. 그래야 나를 빨리 퇴근시킬 수 있으니까.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청소법까지 배워서 숙지하고 있는데. 커피 머신을 안 끈 것도 맞다. 니콜이 자주 카푸치노를 마시기에 그냥 갔는데 물어봤어야 했구나.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따끔하고 쓰라리게 배운것은 절대 까먹지 않으니까.
아이도 일요일에 전화로 독일 할머니의 꾸중을 들었다. 전날 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 아이가 피곤한지 옥탑방에 올라가서 누웠다 내려왔다. 그때 천정의 창문을 열어두고 나온 후 깜빡하고 말씀을 드리는 않은 것이다. 밤새 비라도 왔다면! 자동 센서 장치가 있어 저절로 닫히긴 하겠지만 기계가 고장 나지 말란 법도 없다. 당연히 할머니 보러 안 가고 싶단다. '혼날 일 맞아! 그렇다고 안 가면 안 되지. 할머니,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그렇게 말씀드려야지.' 아이들도 혼나면서 큰다. 꾸지람도 필요하다. 한계를 명확히 해주는 것이 아이들의울타리가 되기도 하니까.한국에는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할머니가 계시고,독일에는 따끔하게 혼내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