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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Nov 21. 2019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아이의 발표 준비


이번 주에 아이는 종교 시험에 최고 점수를 받았다. 한국에서 할머니와 이모와 이모부가 차례로 용돈을 보냈다. 한 사람만 보내시라 해도 안 들었다. 이모의 말은 맞았다. 사람은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


아이의 그림. Lesen ist schön! '책읽기는 멋져!' 그건 그렇고, 저 위의 파랑은 하늘이 아니고 강물이라는데..



요즘 아이는 하드 한 시험 기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주는 종교와 음악. 이번 주는 수학과 독일어. 한 주에 두 과목씩 시험을 치다 보니 한 주에 한 과목만 칠 때가 봄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이번 주는 , 독일어 시험날과 발표일까지 겹쳤다. 아이가 처음 하는 발표 수업의 주제는 책이다.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저자 소개와 등장인물들. 책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책의 한 대목을 읽어주기도 한다.


아이가 발표를 준비한 것은 3주 전 가을 방학 때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큰 발표 종이를 사등분했다. 1주일이 지나자 윤곽이 잡힌 듯했다. 발표 종이에 붙일 책 표지와 저자 사진과 주인공이 나오는 일러스트는 파파에게 복사를 부탁했다. 지난주부터 발표 연습 돌입. 발표문의 표현은 파파가 듣고 고쳐주었다. 나는 크게, 천천히, 또박또박하라고 주문했다.


주말부터 아이는 발표문을 다 외워버렸다. 한번 연습하기 시작하면 서너 번씩 하니 외워질 만도 했다. 원래 수줍음이 많아서 남 앞에서 말할 때면 개미만 한 소리가 되기 일쑤였는데. 자신감이라는 건 원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중에 생길 수도 있다는 건 아이를 통해 알았다. 왜 아니겠나. 한두 번도 아니고 엄마 아빠 앞에서 몇십 번을 반복하면 겁도 없어진다.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또록또록해지고, 소리에는 감정과 여유가 묻어났다.



발표 준비에 올인!


아이는 반에서 세 번째 발표자가 되었다. 그럴 성격이 아닌데 어쩌다가? 사실은 여름방학이 끝난 9월부터 가을방학이 시작되기 전인 10월에 아이들의 발표가 끝났어야 했는데 아무도 신청자가 없었단다. 가을방학이 끝나고도 발표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자 선생님이 화가 나셨단다. 그래서 몇 명이 손을 들었는데 자기도 얼떨결에 따라 들었다고. 그런 실수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 기회에 아이에게 한국 속담을 하나 알려주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율리아나 엄마가 아이의 발표 순번을 듣고 한 마디 거들었다. 율리아나는 발표할 책도 아직 못 읽었고, 준비는 시작도 못 해서 내년으로 발표를 미뤘다는 것이다. 독일학교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순번을 정하는 모양이었다. 언제 하겠냐는 한숨도 뒤따랐다. 미루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부담만 늘 게 뻔하다. 내년 봄까지 시험은 계속될 것이고, 내용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고도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율리아나라 할지라도 발표는 부담이 될 것이다.


이번 주에 아이는 신이 났다. 종교 시험에 최고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 말을 들으니 많은 아이들이 최고 점수를 받았단다. 그렇거나 말거나 좋아서 난리다. 한국에서 할머니와 이모와 이모부가 차례로 용돈을 보냈다. 한 사람만 보내시라 해도 안 들었다. 이모의 말은 맞았다. 잘했을 때 기대치의 칭찬을 해주는 건 중요했다. 자기만큼 기뻐해주지 않는다며 삐지려던 참이었다. 그걸 깜빡했다. 사람은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 수학시험을 친 날 선물 가게로 달려갔다. 아이가 고른 건 인어공주. 독일어 시험과 발표가 끝나면 시리즈로 하나를 더 고르겠다고. 아직 애기다. 애기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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