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아이는 종교 시험에 최고 점수를 받았다. 한국에서 할머니와 이모와 이모부가 차례로 용돈을 보냈다. 한 사람만 보내시라 해도 안 들었다. 이모의 말은 맞았다. 사람은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
아이의 그림. Lesen ist schön! '책읽기는 멋져!' 그건 그렇고, 저 위의 파랑은 하늘이 아니고 강물이라는데..
요즘 아이는 하드 한 시험 기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주는 종교와 음악. 이번 주는 수학과 독일어. 한 주에 두 과목씩 시험을 치다 보니 한 주에 한 과목만 칠 때가 봄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이번 주는 , 독일어 시험날과 발표일까지 겹쳤다. 아이가 처음 하는 발표 수업의 주제는 책이다.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저자 소개와 등장인물들. 책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책의 한 대목을 읽어주기도 한다.
아이가 발표를 준비한 것은 3주 전 가을 방학 때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큰 발표 종이를 사등분했다. 1주일이 지나자 윤곽이 잡힌 듯했다. 발표 종이에 붙일 책 표지와 저자 사진과 주인공이 나오는 일러스트는 파파에게 복사를 부탁했다. 지난주부터 발표 연습 돌입. 발표문의 표현은 파파가 듣고 고쳐주었다.나는 크게, 천천히, 또박또박하라고 주문했다.
주말부터 아이는 발표문을 다 외워버렸다. 한번 연습하기 시작하면 서너 번씩 하니 외워질 만도 했다. 원래 수줍음이 많아서 남 앞에서 말할 때면 개미만 한 소리가 되기 일쑤였는데.자신감이라는 건 원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중에 생길 수도 있다는 건 아이를 통해 알았다. 왜 아니겠나. 한두 번도 아니고 엄마 아빠 앞에서 몇십 번을 반복하면 겁도 없어진다.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또록또록해지고, 소리에는 감정과 여유가 묻어났다.
발표 준비에 올인!
아이는 반에서 세 번째 발표자가 되었다. 그럴 성격이 아닌데 어쩌다가? 사실은 여름방학이 끝난 9월부터 가을방학이 시작되기 전인 10월에 아이들의 발표가 끝났어야했는데 아무도 신청자가 없었단다. 가을방학이 끝나고도 발표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자 선생님이 화가 나셨단다. 그래서 몇 명이 손을 들었는데 자기도 얼떨결에 따라 들었다고. 그런 실수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 기회에 아이에게 한국 속담을 하나 알려주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율리아나 엄마가 아이의 발표 순번을 듣고 한 마디 거들었다. 율리아나는 발표할 책도 아직 못 읽었고, 준비는 시작도 못 해서 내년으로 발표를 미뤘다는 것이다. 독일학교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순번을 정하는 모양이었다. 언제 하겠냐는 한숨도 뒤따랐다. 미루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부담만 늘 게 뻔하다. 내년 봄까지 시험은 계속될 것이고, 내용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고도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율리아나라 할지라도 발표는 부담이 될 것이다.
이번 주에 아이는 신이 났다. 종교 시험에 최고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 말을 들으니 많은 아이들이 최고 점수를 받았단다. 그렇거나 말거나 좋아서 난리다. 한국에서 할머니와 이모와 이모부가 차례로 용돈을 보냈다. 한 사람만 보내시라 해도 안 들었다. 이모의 말은 맞았다. 잘했을 때 기대치의 칭찬을 해주는 건 중요했다. 자기만큼 기뻐해주지 않는다며 삐지려던 참이었다. 그걸 깜빡했다. 사람은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수학시험을 친 날 선물 가게로 달려갔다. 아이가 고른 건 인어공주. 독일어 시험과 발표가 끝나면 시리즈로 하나를 더 고르겠다고. 아직 애기다. 애기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