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초등 4학년이 스트레스를 푸는 법

인형놀이, 플레이 모빌, 보드 게임

by 뮌헨의 마리


오늘은 시험날. 아침에 학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며 아이는 오늘 저녁엔 주사위가 등장하는 클래식한 보드 게임을 제안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침부터 짱구 얘기는 또 왜 나오나?


우노는 이태리어로 숫자 1을 뜻한다. 맨 마지막 카드 한 장이 남았을 때 재빨리 우노!라고 외친다. 카드를 다 버린 사람이 이긴다(위). 그리고 인형의 집(아래)!



아이는 독일 초등 4학년이다. 김나지움을 향한 첫 입시가 시작되는 독일의 4학년. 반년 동안 매주 시험을 쳐야 하는 초등 마지막 학년. 시험 과목은 도이치(독일어), 마테(수학), 하에스우(HSU/사회과학). 어느 과목도 만만하지 않다. 우리 나이로 열 살 아이들이 뭘 알겠나. 인문계 중고등학교 김나지움이 뭐며, 대학인 우니 Uni는 또 뭔지. 왜 김나지움 진학 경쟁이 이토록 치열한지. 레고와 인형과 플레이 모빌과 보드 게임이 더 재미있을 나이인데.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만 8세까지 한국에서 자랐다. 서울에서 독일 유치원과 독일학교를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는데 거의 놀이 수준이어서 학습이란 개념을 들은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었다. 독일에 온 지 2년. 초등 2학년 2학기에 입학해서 4학년이 되었다. 인생 첫 학습 경험이 시작된 것. 자기 삶이 힘들어도 너무 힘들단다. 매일 숙제하고, 시험공부 하고, 매주 시험도 쳐야 한다고. 이럴 때 확실한 비교가 한국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 주었다.


한국은 학교 마치고 학원을 가야 하는 거 모르니? (당연히 모른다. 한국 친구들이 학원 가는 건 봤어도 가서 뭘 하는지 모르니까.) 거기서 얼마나 숙제를 많이 내주는지 몰라? (당연히 모르지. 안 겪어봤는데 무슨 수로 아나.) 그리고 밤에 잠잘 시간도 없어. 밤늦게까지 학원 숙제해야 해서. 아이의 눈이 점점 커진다. 처음 듣는 무시무시한 소리다. 이참에 한 술 더 뜬다. 독일 친구들 중에 매일 아이패드 보는 애들도 없지? 커졌던 눈이 작아진다. 시험이 끝나는 내년 봄까지는 안 보는 게 맞겠지?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우기지는 못한다.



플레이 모빌(위 왼쪽), 쿠한들(동물 사고 팔기/위 오른쪽), 코요테(머리에 두른 띠에 카드를 꽂고 숫자 맞추기 놀이), 루미(숫자 배열하기)



아이와 시험 기간을 함께 보내며 결심한 건 한 가지. (물론 김나지움 진학은 기본!) 아이의 아이패드 시청 습관을 끊어주기로 했다. 아이는 매일 아이패드를 보았다. 이것은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벌써 중독인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한몫 거들었다. 처음에는 짱구로 시작했다가 유튜브를 통한 다양한 시청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더 마음을 굳혔다. 문제는 다른 놀이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 독일은 보드 게임의 원조격이자 천국 아닌가. 남녀노소를 불문.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 세대까지 아우르는 전 국민의 놀이 문화인 보드게임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게임이든, TV나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든 지나친 건 학습에 지장을 준다. 아이의 시험 기간이 6개월쯤 되니 시도해 보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아이의 나이가 어려서 엄마 말이 먹힌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조건은 달았다. 시험 다 끝나면 보여 줄게.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아이도 견디지. 쥐도 퇴로를 열어놓고 몰아야 하지 않나. 나 역시 그때까지 아이가 다른 놀이에 취미를 붙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간다. 솔직히 아이의 아이패드 시청 습관은 내 탓이 크다. 직접 놀아주기 귀찮아서 아이패드와 놀아라고 방치한 거니까. 아이가 세 살 이후로 TV는 버렸다. 그 나이에 벌써 TV를 좋아하는 걸 보고!


아이패드 시청에 좋은 점도 있다. 독일에 와서 보기 시작한 <짱구> 덕을 많이 보았다. 아이가 밝아지고, 까불이가 되었다. 원래 내면이 밝았는데 늦게 발현된 건가. 독일 물이 맞나? 아무튼 다행이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일단 논다. 인형이나 장난감으로 1인 연극놀이. 플레이 모빌로 연극놀이. 간식 먹고 부엌에서 시험공부. 자기가 공부할 땐 엄마도 꼭 옆에 있어야 된단다. 저녁을 먹고, 엄마 아빠와 보드 게임 한 판. 따뜻한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며칠째 우노 Uno! 를 외치고 있다. 절대 봐주기 없기가 규칙이다. 한 판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한 번만 더! 아이의 떼를 누가 이기나.


오늘은 시험날. 엄마가 휴무라서 아침에 자기를 깨워준다고 신이 난 아이는 무거운 학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며 오늘 저녁엔 주사위가 등장하는 클래식한 보드 게임을 제안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침부터 짱구 얘기는 또 왜 나오나? 짱구와 엄마가 유체 이탈을 해서 몸이 바뀐 에피소드다. 듣다가 나도 아이를 따라 키득키득 웃었다. 짱구는 진짜 못 말린다. 대책 없이 사람을 웃긴다. 짱구 엄마도. 짱구나 짱구 엄마처럼만 살면 근심도 걱정도 없이 세상만사 태평이겠다. 요새 내가 그렇다. 글 올리는 게 하루 이틀 밀려도, 며칠째 댓글에 답을 못해도 걱정도 안 되니 이게 무슨 일이람.



온 국민의 클래식 보드 게임. 보드 게임 종합세트라고 보면 되겠다. 아이가 좋아하는 건 주사위 던져 사다리 타고 결승점 도달하기와 얇은 나뭇가지를 살살 걷어내는 미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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