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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26. 2019

성탄절에 여러 가지 소식을 들었다

새어머니와 함께 한 성탄절


새해에는 주말에 새어머니가 뮌헨에 오셔서 같이 뮤지엄에 가는 계획도 세웠다. 한 달에 한번 어머니가 뮌헨에 오시고, 한 번은 우리가 레겐스부르크로 가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성탄절에 레겐스부르크의 새어머니 댁에서 이틀을 묵고 돌아왔다. 24일 정오에 도착해서 어머니 댁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메뉴는 언제나 똑같다. 작은 소시지 구이에 독일 김치에 해당하는 자우어 크라우트를 따뜻하게 데워먹는다. 가끔 소시지가 지겨울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혼자 사시는 새어머니의 입장을 헤아린다. 무슨 요리의 즐거움이 있으랴. 음식이란 자고로 남을 위해 만들 때 신나고 즐거운 법인데. 점점 단순해지는 어머니의 레시피에 나도 익숙해지는 중이다.


날은 흐렸고, 영상의 기온 탓에 눈 대신 비가 흩뿌리는 크리스마스이브도 처음이었다. 그런 날은 어머니의 두통도 심해졌다. 그럼에도 오후에는 산책을 했고, 새어머니와 넷이서 식탁에 둘러앉아 보드 게임을 했다. 선물은 거실 탁자 위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올해 어머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과감히 생략하셨다. 대신 거실과 다이닝 룸 쪽 베란다 화단에 반짝이는 전구를 켜서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셨다. 식탁 위 조명에도 아름다운 장식들이 걸렸다. 어머니의 취향답게 깔끔하고 멋졌다.





독일의 성탄 이브날 전통 메뉴는 무엇일까. 거위나 칠면조나 오리나 닭? 거위와 오리다. 그러나 새어머니는 이런 전통 메뉴를 선호하시지 않는다. 대안으로는 생선이 제격이다. 뮌헨에 사시는 이태리 형부의 외숙모님 탄테 헬가도 성탄절 때마다 생선 요리를 즐기신다. 그리하여 새어머니가 메뉴를 물었을 때 생선 수프인 부야베스를 주문했다. 어머니가 고기를 즐기시지 않고, 남편과 나도 무거운 정찬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벼운 저녁. 깔끔한 화이트 와인으로 입가심.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어울리는 유쾌한 가족 영화를 보았다. 즐거웠다!


빌 머레이와 앤디 맥도웰 주연의 1993년도 영화 <사랑의 블랙홀>. 알다시피 주제는 이렇다. 아침 6시. 라디오의 알람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는 매일 똑같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다. 절하고 분노하고 자학하지만 죽는 것조차 맘대로 되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 다음 날도 똑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지만 로맨스도 제자리다. 그러다 피아노를 배우고 남들을 돕고 사랑을 배운다. 사는 일에 시들하고 냉소적이주인공재탄생이다. 수순대로 그녀의 마음을 얻고 이전과는 다른 하루가 준비되어 있다. 놀랍지 않은가! 너무나 현실적이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지 않은가.





성탄절에 다소 충격적인 소식도 들었다. 남편의 사촌 누나 다니엘라가 아버지와 전 남친을 차례로 잃은 지 1년 만에 근사한 남자 친구를 만났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잉꼬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던 그녀의 남동생 크리스티안 부부가 이혼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에겐 청소년이 된 두 딸이 있다. 부모님이 사시다 돌아가신 큰 집에 아직 살고 있는 다니엘라와 그 집의 절반의 상속권을 요구하는 남동생네의 분쟁도 어느 정도 예상된다. 그럼에도 성탄절날 날아온 이혼 소식은 충격이었다.


놀라운 건 시누이 바바라였다. 50대 후반인 바바라는 요즘 갱년기처럼 보인다. 나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친엄마인 시어머니 댁에서 성탄절 식사 날짜를 정하다가 아무도 자기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화를  적이 있. 크리스마스이브는 절친의 가족들과 보내고 25일 새어머니 댁으로 온 바바라는 보드 게임을 하다가 빨리 하라는 새어머니의 다그침을 못 참고 게임을 중단하고 테이블을 떠났.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유순하던 사람이라서 더욱 놀랐다. 그러나 이해한다. 나 역시 갱년기라는 강가쉽게 강을 건널 나룻배를 기다리중이라서. 도중에 힘들게 헤엄치는 바바라를 만나면 그녀함께 태워줄 생각이다.


새해에는 주말에 새어머니가 뮌헨에 오셔서 같이 뮤지엄에 가는 계획도 세웠다. 한 달에 한번 어머니가 뮌헨에 오시고, 한 번은 우리가 레겐스부르크로 가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내년에도 어머니는 몇 번의 여행을 계획 중이시고, 그 여행들이 어머니께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와 함께 하 시간 역시 어머니의 인생 수첩 속에 곱게 정리될 것이다. 불편했던 기억들은 모서리를 살짝 덜어내고 조금씩 다듬어 가면서. 모나지 않게 둥글게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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