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학과 예술과 글쓰기가 아무리 중한들 삶의 무게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그러니 저 역시 글쓰기에서 삶 쓰기로 나아가는 순간까지 묵묵히 일하며 쓰고 또 쓰는 수밖에요.
둘째 주에 칸티네에서 바라본 뮌헨 시내쪽 풍경
그리운 샘!
새해가 밝은 지도 한 달의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새해엔 새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노라, 그것이 저의 첫 신년 계획이었죠. 첫발은 내디뎠습니다. 첫 주엔 고전을 면치 못했고, 둘째 주는어찌어찌 버텼답니다. 서비스일 중 칸티네 일이 제일 힘들다던 호텔 옛 동료 미나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제가 뭘 알았겠어요. 호텔에서 일한 경험만믿고 쉽게 덤빈 탓인데요. 거기다 풀타임 잡이라니요. 요즘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른답니다. 글도 자주 못 쓰고요.
첫 출근 하던 날 인터넷으로 한 장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삶의 무게를짊어진 사람. 중국에 사는 어느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식당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남편은 시장에서 한 손으로 세 살배기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200근이나 되는 물건을 등에 지고 날랐답니다. 한번 짐을 옮길 때마다 받는 돈은 10위엔(1700원). 저녁이면 판잣집에불이 켜지고 아빠는 밥을 짓고 아들은 부엌에서 공부를 합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이 가장이 하루에 쓰는 돈은 담배 두 갑과 국수 한 그릇. 총 21위엔.
십 년 후 아들은 중학생이 되고 공부도 곧잘 해서 반장이 되었답니다. 7평 판잣집도 헐렸습니다. 성실한 가장은 은행 빚을 안고 20평 아파트를 샀지요. 오래된 아파트는 낡고 어두웠지만 세 가족에겐 빛으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시장 경기가 나빠져건축자재나 이삿짐까지 날라야 하는 아빠가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는 아이의 말. 가장의 무게나 인생의 무게만큼 묵직하던 그 말. 책과 문학과 예술과 글쓰기가 아무리 중한들 삶의 무게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그러니 저 역시 글쓰기에서 삶 쓰기로 나아가는 순간까지 묵묵히 일하며 쓰고 또 쓰는 수밖에요.
샘.
둘째 주 첫날 출근길에는 새가 울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우는 새소리는 하도 신기하여 현실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계속 저를 따라오며 이렇게 말하지 뭐예요. 오늘도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요. 오호라, 오늘도 무사히! 새가 다 알려주네요. 촌각을 다투는 전쟁통 같은 주방에서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야 하는 제게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누가 이렇게 하랬냐. 누가 저렇게 하랬냐. 종일이런 말만 듣다가 근래 듣는 소리 중 가장 반갑고 다정한 말이었어요.
요즘 독일의 시어머니와 새어머니 두 분은 제게 무척이나 잘해주십니다. 새벽부터 일하느라 힘들다고요. 다행인 건 직업의 귀천은 따지지 않으시네요. 한국 며느리가 혼자서 일자리를 구하고 일도 척척 하니 대견하신 모양이에요. 시어머니 댁은 매주 방문하고, 새어머니는 격주로 찾아뵙고 자주 전화를 드립니다. 어제도 셋이서 전화를 드렸더니 기운 없이 받으셨다가 마지막엔 하하 호호 즐겁게 웃으셨답니다. 알리시아도 엄마를 도와주네요. 파파가 매주 이틀 출장을 가면 알람에 맞춰 혼자 일어나 학교에 갑니다. 얼마나 일찍 가는지 수위실의 수녀님도, 선생님들도 깜짝 놀라신대요.
지난주에는 시어머니 댁을 갔는데 양아버지께서 저녁을 많이 못 드셨어요. 그러자 시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더군요. 그날 저녁엔 어머니댁에서 버스를 타고 슈탄베르크 역까지 왔답니다. 바람 부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할머니가 '건강'하셔야 할아버지가 건강하시지 하니까, 알리시아가 그러더군요. 그게 아니고 할머니가 '행복'하셔야 할아버지가 행복하시다고요. 할머니는 충분히 행복하십니다. 저녁마다 <Du bist mein Stern(You are my star> 라는 노래를 불러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시니까요.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양아버지가 안 계신 삶은 상상이 안 간다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샘은 어떠신가요? 새해 들어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말씀 듣고 걱정입니다. 겨울 날씨가 너무 매섭지 않은 건 다행이고요. 생의 무게는 날로 가벼워지고 생의 의지는 나날이 굳건해지는 2020년 한 해가 되시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