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앞에 함께 선 가족들의 소망은 그들 각자에게 맡기고, 저는 저의 소망에 집중합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으면서요.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 자체가 이미 소망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촛불, 촛불들..
그리운 샘.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며칠 후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2020년. 기대하지도 않던 일이 기다리고 있기나 하듯 괜히 제 가슴도 두근거립니다. 12월은 촛불의 달이었지요. 저희도 십이월의 일요일 아침마다 초를 밝혔답니다. 크리스마스 직전 일요일이 마지막 촛불이었죠. 촛불 앞에 함께 선 가족들의 소망은 그들 각자에게 맡기고, 저는 저의 소망에 집중합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으면서요.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 자체가 이미 소망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12월에는 호텔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길게 받았습니다. 사흘 정도 쉬려고 했는데 초과 근무 없이 남은 시간을 다 쓰라는 뜻인지 연말에 하루만 일하면 된답니다. 덕분에 긴 휴식을 즐기고 있지요. 성탄 전부터 계속 비가 내려서온 세상이축축하다가어제는 반짝 해도 났답니다. 덕분에 기분이 맑고 산뜻해졌어요.독일은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날, 그리고 다음 날까지 사흘이 가장 피크랍니다. 온 가족이 집에서 이브를 보낸 후 나머지 이틀은 레스토랑마다 사람들로 붐비거든요.
새어머니 댁에서 이틀을 묵은 후 26일에는 시어머니를 방문했지요. 양아버지를 모시고 저희 가족과 시누이 바바라, 그리고 양아버지의 딸과 손녀까지 레스토랑에서 크리스마스 식사를 했답니다. 양아버지께서 거동이 불편해지신 이후로는 행사 때마다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레스토랑으로 저희를 초대하시는데 저는 이 방식이 간편해서 마음에 들어요. 한국식 같잖아요. 한국이나 독일이나 집에서 많은 식구의 식사 준비를 하는 게 보통 일인가요.접시는 또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요.
호텔을 겸한 이태리 레스토랑에 도착하기 전부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일도 즐겁답니다. 양아버지의 90세 생신 파티를 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두 분과 자주 가던 곳이라 메뉴를 잘 알거든요. 클레멘스는 스테이크를, 저는 모둠 생선 오븐구이, 알리시아는 돈가스인 슈니츨을 골랐어요.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해물 스파게티인데, 모둠 생선구이와 스파게티 중 고민하는 저를 보고 클레멘스가 생선을 먹으라고 옆구리를 찌르잖아요. 부모님께서 초대하실 때는 그에 걸맞은 메뉴를 고르는 게 예의겠죠? 오,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스파게티가 울고 갈 정도로 맛있었거든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어머니 댁으로 몰려가 차와 커피와 크리스마스 쿠키로 티타임을 가졌답니다. 어머니댁의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선물을 놓고 각자 개봉식도 했고요. 어머니께서 모두에게 미리 봉투를 주셔서 각자 원하는 선물을 사 오라 하셨거든요. 우리 어머니 스타일이 저는 정말 좋아요. 예전에는 제게 향수를 선물로 주셨는데, 향수 알레르기가 있던 저는 쓸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체홉의 4대 단편집 독일어 책을 사고 돈을 아꼈고요, 알리시아는 김나지움용 책가방을, 클레멘스는 구두를 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드리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선물은 당연히 알리시아가 준비합니다. 아이들이 드리는 선물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쁘게 하는 건 없으니까요. 친할머니께는 자기가 그린 동양화 그림을, 혼자 사시는 새할머니께는 너무 외롭지 마시라고 직접 그린 동양화 그림과 직접 만든 물고기 도자기를 드렸지요. 두 분 다 무척 기뻐하셨어요. 샘은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송년회와 신년회로 무척이나 바쁘시겠지요. 송구영신. 오래된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는 연말연시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기쁨으로 맞는 새날들 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