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이네스 Dear Ines

화내는 연습 1

by 뮌헨의 마리


"가장 소중한 건 니 애 아니니?"



금요일 오전이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아이를 데리러 가는 날. 두 주만 지나면 여름방학인 7월 중순이었다. 카페에서 정신없이 글을 쓰는데 난데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 말고 걸려올 전화가 없는데.


"여보세요."


"도대체 어딥니까? 당신 아이는 데려갈 겁니까, 말 겁니까!"


악! 시계를 보니 11시 35분. 픽업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다. 여자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맘먹고 달리면 학교까지 1분도 걸리지 않는 카페였다. 어쩌자알람지웠나? 자기 자신을 그리 모르나!


익명의 여자는 아이와 함께 신호등을 건너오겠다 했다. 왜? 내가 학교까지 가도 되는데. 토를 달고 어쩌고 할 시간도 없었다. 죄송하다, 감사하다, 바로 신호등 앞으로 가겠다, 정신없이 카페를 뛰쳐나갔다.

신호등을 건너 내 쪽으로 걸어오는 여자는 같은 반 학부모 이네스였다. 알바 엄마. 그녀도 나도 뒤늦게 학부모가 된 동갑내기. 우리는 학급의 22명 중 유일하게 방과 후를 시키지 않는 부모. 애를 데리러 가면 매일 만나는 사이. 전화로 소리소리 지르던 여자가... 설마 이네스?


"할로, 이네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글 쓰느라 깜빡..."


차분한 편이지만 학교 방침에 동의가 안 되면 항의 서한도 불사하는 이네스. 아이가 밖에서 잠을 못 잔다고 2박 3일 졸업여행 때 50km 거리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에서 출퇴근하겠다던 이네스. 애가 다른 애들한테 놀림받지 않니. 조심스럽게 묻자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단호하게 말할 땐 특이하지만 저런 신념도 있구나. 대단하다. 내 감탄을 자아내던 이네스.
멋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미안한 얼굴로 변명하는 내게 이네스가 울그락 불그락 정색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내 얼굴 앞에서 바쁘게 오가던 그녀의 손가락은 삿대질?


"가장 소중한 건 니 애 아니니?"


아니 누가 아니랬나. 애를 잊다니 있을 수 없는 일. 못을 박듯 한 마디를 더 내뱉고 파르르 돌아서던 그녀의 넓은 등판에 차마 내뱉지 못한 마지막 말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저런 여자가 엄마라니!

수치심. 모욕감. 그리고 분노. 박정하고 무정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저런 오만, 무례, 방자라니. 그렇다고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고.
그때 아이가 멋도 모르고 기름을 들이부었다. 엄마! 알바 엄마가 그러는데 너희 엄마는 자기 애보다 핸드폰이 더 중요하대. 아직까지 이네스에게 열린 뚜껑은 닫히지 않았다. 좋은 일로 사람의 진가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궂은일을 겪어봐야 안다.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만날 사람이 있나, 모임이 있나. 허구한 날 학교 앞 카페에서 글 쓰고 책 읽는 게 다인데.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이네스와는 그 카페에서 학부모 중 유일하게 커피 한 잔까지 나눈 사이. 그 카페가 내 글쓰기 아지트라는 것도 그때 밝혔는데. 어느 날은 지나가던 그녀가 창밖에서 손까지 흔들어주지 않았나. 그렇게 화낸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이네스라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구나. 괜찮아. 천천히 와. 놀라지 말고. 완벽한 이네스가 늦을 리 만무. 멋진 시연의 기회도 없다고 봐야겠지.


폰이 무슨 죄? 여기도 애 데리러 가 보면 젊은 엄마들도 폰만 들여다보고 있던데. 반에서 유일하게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두 사람 중 하나가 이네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싫어해 알바가 관심을 보이는 게 고민이라고 한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10년째 쓰는 폴더폰은 문자 불가. 그런 게 왜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인지. 미소를 머금고 두 번씩이나 강조했으니 그날 내가 보낸 건 당연히 이메일.


"디어 이네스. 다음부터는 나한테 전화하지 마. 내가 늦으면 알리시아가 관리실 담당자에게 부탁해서 전화할 거야."

세상에 일어나지 못할 일이 어디 있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고 안 일어난다는 보장은 어디 있고? '절대로'와 '그럴 수도'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이네스와 나 사이. 나는 '완전한' 사람도 '완벽한' 엄마도 아니며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의 불완전함을 아이가 스스로 채워가길 바라는 간 큰 엄마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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