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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뮌헨의 마지막 외출

독일을 떠나는 청년과 함께

by 뮌헨의 마리


텅 빈 거리에는 꽃집만이 문을 열었고, 쇼핑 거리에는 젊은 남자가 켜는 아코디언 소리만 가득했다. 동전을 넣을 때마다 고개를 들어 미소 짓던 보헤미안의 맑은 얼굴. 잘 견뎌서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꽃들이여, 거리의 뮤지션이여.



외출금지령 전날의 이자르 강변(좌) 뮌헨 시청사(우)



금요일은 화창한 봄 날씨였다. 외출금지령으로 그날이 뮌헨의 마지막 외출이 되었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다음날 독일을 떠나는 20대 청년은 뷔르츠부르크에서 금요일 오후 1시쯤 뮌헨에 도착했다. 토요일 오후에 뮌헨 공항에서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뮌헨에 도착하자마자 개의 여행 가방과 백팩을 집에 두고, 김치 만둣국으로 점심을 먹고, 이자르 강을 따라 시내까지 함께 걸었다.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유모차를 끄는 사람. 햇살 좋은 강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며.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었다. 꽃망울을 터뜨리거나 연둣빛 새순이 나온 나무들도 보였다.


강변의 놀이터는 비어 있었다. 놀이터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자 아이와 자주 들르던 책방도 문을 닫았다. 문을 연 건 꽃집 하나와 로또 잡화점뿐이었다. 코로나도 꽃들을 어쩌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때로는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길 때가 있다. 우리도 그랬으면. 실체가 보이지 않는 적은 두렵지만 그 공포감을 이겨내는 것이 첫 번째 관건이 될 것이다. 빅투알리엔 마켓의 비어가든 테이블 역시 철거되었다. 마리엔 광장 시청사 앞이 그렇게 넓어 보인 것도 처음이었다. 가게들이 문을 닫은 쇼핑거리를 걷는 기분은 착잡했다. 그 많던 종업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신발 가게 앞에서는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멋진 탱고를 선보이던 주제곡이 들려왔다. 처져 있던 사람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으켜 세울 것만 같던 그 멜로디. 젊은 남자가 아코디언을 켜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이 없는데. 청년과 아이와 나 셋이서 갈 때도 돌아올 때도 지갑을 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어 미소를 던지던 보헤미안의 맑은 얼굴. 우리보다 먼저 독일 할머니 한 분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는 것도 지켜보았다. 잘 견뎌서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꽃들이여, 거리의 뮤지션이여.



잘 있거라, 꽃집의 꽃들아. 정들었던 거리들아. 곧 다시 만나자!



청년은 나와 친한 언니의 조카였다. 가 독일로 온 것은 3월 3일. 군 복무까지 마치고 6개월 교환 학생으로 독일로 왔다.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를 들을 예정이라 했다. 그가 도착하던 날을 나도 기억한다. 2월 말에 칸티네를 그만두고 쉬던 첫 주의 화요일 저녁. 그날 저녁 그의 여정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뷔르츠부르크를 거쳐 작은 소도시에서 끝이 났다. 저녁도 못 먹고, 여행가방을 두 개나 들고, 기차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그가 기숙사 방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긴박한 때라서 독일 대학에서 입국을 허락하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던 때였다. 다행히 입국 허가를 받고 3월 첫 주에 기숙사에 짐을 풀고도 강의 시작까지는 2주간의 여유가 있었다. 첫 주말에는 기차로 빈까지 여행을 다녀온다 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생각보다 여행객은 적더라고. 그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이야. 3월 둘째 주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대학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당일 저녁에 날벼락같은 통보를 받았다. 대학 개강이 한 달 연기되고 온라인 강의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그러려고 한 학기를 준비해서 독일까지 온 건 아니었을 텐데.


그는 3월 21일 토요일 오후 뮌헨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올 때는 대한항공으로 왔지만, 갈 때는 도하를 경유하는 카타르 항공을 탔다. 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입국한 지 18일 만에 다시 귀국이라니! 마트에서 사재기를 보고 귀국을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날은 날씨도 좋았다. 이자르 강변도 걷고, 뮌헨 시청사에서 인증샷도 찍고, 내친김에 영국정원까지 걸었다. 그날 영국정원에 서서 바라보던 저녁 풍경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언젠가 다시 그가 독일로 올 날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물러나고, 다시 평화로운 날들이 찾아오는 언젠가 말이다. 그때 꼭 다시 오기를! 일요일 오전 11시 반. 한국의 공항에 도착한 후 코로나 검사를 위해 격리실로 간다는 톡이 왔다. 그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2020.3.22 오전 9시 독일의 코로나 현황)

- 확진자: 22,213명

-사망자: 84명



2020. 3. 20 외출금지령 전날의 해질 무렵 영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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