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시,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는 몸도 마음도 초록빛이 됩니다. 초록은 뭐랄까요, 바람의 결 같다고 할까요. 파도 같은 바람이 불어올 때 젊은 나뭇잎들이 서로의 어깨를 부딪는 소리. 그들의 풍성한 초록 머리칼이 푸른 창공으로 흩날리는 모습. 새들이 그 모습에 화답할 때쯤 오월은 옵니다.
퇴근길(위) 마스크에 관한 신문 기사와 독일의 종이 마스크. 일명 치과용 마스크(아래)
그리운 샘!
오랜만에 편지를 드리네요. 독일에도 마스크 사용 의무령이 내렸습니다. 이번주 월요일(4.27)부터 시작했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마트나 상점을 이용할 때 적용됩니다. 마스크가 없으면 손수건이나 스카프 등 뭐라도 입과 코를 가리면 된대요. 마스크를 안 쓸 때 벌금도 있답니다. (150유로. 그런데 상점 측은 무려 5,000유로라고 하네요!) 이번주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걸 보니 얼마나 생경하던지요. 아무튼 독일에서 마스크라니, 놀랍습니다. 저는 4월부터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답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일하는 요양원에서 무료 마스크를 다섯 장이나 주더군요. 파란색 종이 마스크, 일명 치과용 마스크예요. 한국의 기능성 마스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고맙게 받았습니다. 요즘 독일에서 마스크만큼 귀한 물자는 없거든요. 한국에서 보내준 천 마스크 등은 언제 도착할지 기약이 없고요. 4월 한 달은 제게도 요양원 일에 익숙해지느라 바쁜 시기였답니다. 주방이 거기서 거기겠지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주방엔 5명의 셰프들, 제 소속인 서비스팀과 설거지팀도 각각 5명씩입니다. 근무는 모든 부서가 1일 3인조입니다. 저희 팀은 샐러드와 디저트 등을 담당하지요. 메뉴가 매일 바뀌고, 메인도 2~3개씩 있어서 좀 헷갈리기도 한답니다.
4월, 나날이 푸르러지는 요양원 건물 안쪽 정원
저희 팀엔 세 명의 여자분이 있는데 각각 터키와 알바니아 출신이에요. 정규직이고 근무 연수가 무려 15~30년이나 되지요. 저와 스페인 출신 마뉴엘은 임시직입니다. 마뉴엘은 이쪽 주방 경력만 8년 차인 베테랑, 저는 한마디로 좌충우돌 신입이고요. 4월 내내 실수를 연발하며 일을 배우는 중입니다. 돌아보면 봄날은 3월의 딱 두 주였답니다. 그때는 간단한 보조일만 했거든요. 저보다 한두 달 먼저 들어온 신입 두 명은 벌써 그만두었고 지금은 저만 남았어요. 제 업무는 아침, 점심, 케이터링, 저녁 네 가지 업무 중 점심과 케이터링입니다. 7주 차인 이번 주가 되어서야 전체적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씩 감이 오네요.
세상에 공짜가 없듯 쉬운 일도 없다는 것을 매일 배웁니다. 혼도 많이 났고요. 야단칠 때는 에누리 같은 것도 없습니다.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나지요. 일이 널널한 줄 알았던 건 제 착각이었어요. 세 명 중 제일 나이 많은 분이 올해 예순이신데 터키 여자분이랍니다. 아직도 갱년기가 안 끝나신 건지 불면증 때문인지 늘 기분이 별로이십니다. 아침부터 예민하고 날카로워서진땀을 흘리게 하시는 분. 별 거 아닌 일로도 호되게 야단을 치실때는 말로 해도 알아들을 걸 왜 저러실까 싶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그것도 야단맞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거고요. 그분 입장에서는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 일일지도 모르지요. 참을 인과 역지사지가 필요한 사월이었습니다.
요양원 카페테리아와 점심 메뉴
샘.
그럼에도 저는 이 일을 사랑합니다. 일에 익숙해지면 실수도 적고, 예민한 동료분을 자극할 일도 줄겠지요. 세상 일이란 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고도 징징거리면 부끄럽지요. 다행히도 저는 매일 나아지고 있답니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니 좋은 점도 있네요. 얼굴을 붉힐 일도 마스크가 가려줍니다. 일도 묵묵히 배우고 익히다 보면 언젠가는 머리에도 남고 몸에도 익고 손에도 붙을 날이 오겠지요. 아, 반가운 소식도 있어요. 4월부터 병원과 요양원 근무자들에게 무료 점심이 제공되고 있답니다. 특별 보너스도 언급되고 있고요. 코로나로 실직한 사람들에게는 급여의 60%가 지급된다고하네요.아이가 있으면 65%고요. 그래도 저는 일을 하는 게 좋습니다.
4월부터 매일 카페테리아에서먹는 점심도 좋아합니다. 저희 주방의 세프들이 준비한 메뉴랍니다. 고기나 생선, 누들이나 채식 요리 두 가지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지요. 어떨 때는 아침에 제가 준비했던 디저트나 샐러드가 나올 때도 있어요. 직원 식당을 겸한 작고 아담한 카페테리아는 내부도 아늑하고, 야외 테라스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먹는 게 압권이지요. 매일 오가는 출퇴근 길에도 녹음이 짙어갑니다. 오후 세시,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는 몸도 마음도 초록빛이됩니다. 초록은 뭐랄까요, 바람의 결 같다고 할까요. 파도 같은 바람이 불어올 때 젊은 나뭇잎들이 서로의 어깨를 부딪는 소리. 그들의 풍성한 초록 머리칼이 푸른 창공으로 흩날리는모습. 새들이 그 모습에 화답할때쯤 오월은 옵니다.
샘. 내일이 벌써 사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5월부터는 글쓰기도 조금 분발해야겠어요. 샘의 오월도 화창하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늘 건강하시리라 믿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