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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11월은 록다운

분위기는 그다지 평온하지 않다

by 뮌헨의 마리


이번 주 수요일 메르켈 총리가 록다운에 관한 아우트 라인을 발표했다. 올해로 두 번째인 이번 록다운이 11월 한 달은 진행될 거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독일의 일출은 아침 7시. 일몰은 오후 5시. 사진은 아침 7시의 하늘! 록다운이 와도 저 하늘의 풍경은 그대로겠지..



요즘 독일은 예전만큼 평온하지 않다. 일일 확진자 수가 10.000명을 넘어선 것은 1주일 전부터였다. 주말에는 무려 14,000명을 돌파했다. 코로나 이후 최대치였다. 이번 주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유지하는 중이다. 월요일에 10,000명 아래로 내려왔다가 화요일부터 다시 10,000명을 상회하더니, 수요일은 15,000명에 육박했다. 독일이 유럽의 주변 국가들에 비하면 양호한 상황이라는 것도 문제다. 대체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어떻단 뜻일까. 수요일에는 메르켈 총리가 록다운에 관한 아우트 라인을 발표했다. 이번 록다운은 최소 11월 한 달간 진행된다. 지난봄에 이어 두 번째로 실시되는 강한 제재다. 다른 점은 제목 뒤에 라이트를 붙였다는 점. 일명 '다운 라이트 Lockdown light'. 지난봄보다 가벼운 느낌을 강조하려는 것일까. 내용을 보면 실제로도 그랬다.


1차 때와는 뭐가 달라졌을까. 다운 기간을 어느 정도 정해두고 시행한다는 점이 다르다. 봄에는 두 달 동안 가게들이 문을 닫았었는데 록다운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지 몰라서 혼란과 불안이 더 컸다. 어제 우리 카페 오너 슈테판이 농담처럼 말한 게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1년에 두 번의 록다운으로 최소 2년은 늙게 될 것 같다고. 그는 올해 만으로 서른 셋이다. 허세와는 담쌓은 독일 남성인 그의 말을 조금 과장해서 해석하자면 한 20년쯤으로 들린다. 그럼에도 어제 우리 카페에는 침묵만이 흐르진 않았다. 자주 웃음과 농담이 오갔다. 물론 슈테판 앞에서는 조금 삼갔다. 오너에 대한 배려와 월급 받는 자의 눈치라는 게 있잖나. 어제 저녁에는 남편을 마트에 보내 분위기를 파악해보려 했는데 자기 눈에는 평소와 다름이 없더란다. 그럴 리가. 남편이 무딘 것 인정!


록다운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즉각 시행된다. 모든 레스토랑과 호텔, 스포츠 센터는 문을 닫는다. 카페, 바, 클럽/극장, 오페라 하우스, 영화관, 콘서트 홀, 전시장/미용 관련 마사지숍과 타투숍이 여기에 포함된다. 가족이나 이웃은 두 가족, 10인 미만까지 접촉이 허용된다. 회사는 재택근무 권고. 그러나 회사 식당 칸티네는 오픈. 더욱 놀라운 건 유치원과 학교도 문을 연다는 것. 저런 담대함은 어디서 왔을까. 개인적으로 저 담대함을 좋아하긴 한다. 어쩔 것인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코로나 제로 시대는 현실 불가능에 가깝다. 코로나가 와도 먹고는 살아야지. 한 부모 가정이든 양부모 가정이든 한두 달 이상 아이들을 집에서 보살피기 어려운 가정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 아이들은 어떡하나. 정부와 학교가 적극적으로 떠안는 게 책임감 있는 태도라고 본다. 물론 어려운 문제다. 한국은 한국의 방식이, 독일은 독일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독일에 살아서인지 나는 독일의 방식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참고로 지난봄에는 독일도 휴교를 택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이번에는 미용실이 문을 연다는 것. 그때도 지금도 개인 조깅은 가능하다.


비에 젖거나 말거나 곱디 고운 단풍도..



지난주에는 코로나와 관련한 세 가지 소식을 들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더 이상 코로나가 먼 곳의 일이 아니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아이의 같은 반 학생 중에 아빠가 코로나 확진인 경우가 있었다. 나머지 가족은 음성. 해당 학생은 2주간 집에서 격리되었다가 다시 등교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같은 반에 확진자가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지인의 남자 친구 이야기. 남자 친구의 동료가 확진자라 남자 친구도 2주간 격리 조치되었다. 다행히 남자 친구는 음성으로 판명 났지만, 만약의 경우 지인도 출근을 못하고 격리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가슴을 졸였다. 언제 코로나가 이렇게 우리 가까이 왔지? 지난 봄보다 체감이 달랐다. 남편이 다운로드한 독일의 감염자 추적 코로나 앱은 사용자가 적다. 거기에는 매일 본인이 알게 모르게 스쳐간 사람들 중 확진자가 있는지, 그들과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를 분석해서 위험 수위를 알려준다. 초록색은 위험 수위 낮음.


지난 주말에는 시누이 바바라에게 감기 기운이 있다는 것을 전화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정은 이랬다. 동료가 감기가 심한 채로 출근. 그날 날씨 추움. 회사 난방 고장. 이것이 말로만 듣던 개인주의의 실체인가 싶었다. 동료는 왜 감기가 심한데 출근을 했을까. 문제는 바바라였다. 주말에 시부모님을 같이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바바라가 다음날 본인 상태가 좋으면 우리랑 동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반대! 그건 아니지. 그 동료가 확진 일지 어떻게 아나. 감기면 무조건 쉬어야지. 노부모님 방문은 무리수! 우리랑 같은 차를 타는 것도. 내 반대 의사에 기분이 상한 듯해서 남편에게 바통을 넘겼다. 본인이 안 간다고 해야 맞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어쩌면 바바라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올가을 걷잡을 수 없는 유럽의 코로나 재확산 사태를 보며 든 생각이다. 주말에는 우리만 시부모님을 찾아뵙고 왔다. 어제 시어머니는 록다운 소식에 전화로 한숨을 쉬셨다. 의사인 시아버지 친딸은 코로나로 방문을 안 하고 있는데 우리마저 못 보시면 어쩐다. 바바라 동료의 확진 여부는 아직도 못 들었고.


록다운과 관련 새어머니의 소식도 빼놓을 수 없다. 레겐스부르크에서 한쪽 무릎 수술을 받으신 지 한 달째. 다음 주 화요일이면 퇴원을 하신다. 지난 주말에는 병원에서 재활 클리닉으로 옮기신 어머니의 병문안을 계획했다. 시어머니가 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하셨는데 병문안 한 번 안 간 며느리라니. 한 달 내내 1인실에 혼자 계시는데.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반대하셨다. 반대만 벌써 두 번째였다. 어머니의 이유는 단 하나. 코로나를 묻혀 오면 곤란하다는 것. 차로 가겠다는데도 원하지 않으셨다. 매일 병원 음식이 맛이 없다 하셔서 불고기를 하나, 매콤한 돼지 불고기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건만. 다음 주말에 레겐스부르크 댁으로 찾아뵈려 했는데 다음 주부터 록다운 시작. 그것도 어머니가 퇴원하시기 직전에. 아, 어쩌면 이다지도 운이 없으실까. 그렇게 활동적인 분이 집에만 계셔야 하다니. 그것도 혼자서. 노년은 외롭다. 외롭지 않은 노년은 어떻게 만들까.


황금빛이 지네, 지고 있네.



며칠 전에는 오후에 두 군데 카페를 들렀다. 록다운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오전에 우리 카페에서 일을 마치고 한글학교 앞 카페 디바로 향했다. 주인장은 이란 사람이고 이름은 레자다. 독일에 산 지는 오래. 예전에는 우리 새어머니가 사시는 레겐스부르크에 살았다. 아직도 여동생네가 레겐스부르크에 살고 있다. 이곳은 카페 겸 바를 겸하는 곳이다. 저녁에는 안 와봐서 모르겠지만, 단골도 제법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알바도 썼는데, 요즘은 혼자서 일한다. 일요일은 쉬었는데, 일요일도 카페를 열 지 말 지 고민 중이라고. 록다운 소식에는 한숨만. 그러나 각오는 하는 듯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동네 카페에도 들렀다. 주인장인 헝가리 할아버지의 이름은 슈테판. 우리 카페 슈테판과 이름도 같다. 동네 카페에서 나는 손님이 아니라 친구 대접을 받는다. 어쩌다 들르는데도 그렇다. 무료 차 한 잔을 마시고 옆 테이블의 빈 찻잔을 나르기라도 하면 엄청 고마워하신다. 이런 동네 카페가 문을 닫을 계획이라니. 오다가다 더 자주 들를 생각.


이번 주 카페 근무는 화/수/금이다. 내일이 마지막 근무가 아니길 바란다. 테이크아웃 가능 여부가 관건이겠다. 어제는 세프 아드리아노가 내 나이를 물었다. 여기도 여자 나이를 묻는구나. 신기해하고 있는데 미안했는지 자기 나이부터 밝힌다. 만 42세. 생각보다 많았다. 30대 중후반으로 봤는데. 그래도 나에 비하면 베이비 아닌가. 난 엄청 플러스야. 놀란다. 비결이 뭐냐고 묻는 에티켓까지. 생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건만. 다 너희들 덕분이지. 너희들과 웃으며 일하는 게 비결이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건 진리다. 내가 나눠준 생강청을 여자 친구와 고맙게 마셨다는 얘기 끝에, 더 줄까 물으니 아니란다. 이번엔 자기 차례라고. 치즈 갖다 준다고 해놓고 잊었다며 사과의 말까지. 이 정도면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참, 슈테판 말로는 나와 오전 시간을 나눠 일하는 레헬도 오십이란다. 오십 대인 나를 채용한 건 얼굴도 못 본 그녀 덕분인지도.


오후 파트타임을 구해 볼까 하던 마음은 단번에 접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몸을 사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일자리도 구했고, 카페가 내 최종 목적지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샌드위치가 주 업무라 일의 강도도 적당하고, 홀 서빙이 아닌 것도 마음에 든다. 조금 더 익혀서 아드리아노의 주방 일을 거드는 것도 괜찮겠다. 카페 주인장도 셰프도 둘 다 괜찮고, 홀 팀원들의 팀워크도 좋다. 매일 함께 일해야 할 멤버들과 삐그덕거릴 일이 없다는 게 가장 안심이다. 봉급은 적지만 내년에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차차 나아지겠지. 지금은 코로나와 함께 무사히 겨울을 지나는 게 급선무다. 건강을 잃으면 무엇이 소용인가. 록다운이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면 대로 견딜 마음의 준비는 되었다. 오늘 새벽 한국에서 날아온 깊어가는 한국의 가을 풍경과, 경외의 마음을 우러나게 하는 당당한 800살 은행나무 사진과, 그리운 샘의 곡진한 당부처럼. '록다운 시간을 깊어지는 문학의 계절로 채우길!'



가을의 꽃은 은행잎처럼 노란 낙엽!



P.S. 어제부터 독일 신문들은 난리다. 단어 하나 때문에. '록다운'인지 '셧다운'인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저 난리들인지! (아래는 록다운 발표 하루 전날 신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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