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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09. 2020

암 걸렸다고 시어머니께 혼나고

타인의 호의를 거절하는 연습 중


연락과 통화를 원하는 몇 분의 호의를 거절했다. 내겐 오래전 관계든 최근 알게 된 사이든 연락할 마음의 여유도 그럴 시간도 없다. 나는 불과 열흘 전에 병원에서 암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고, 5일 전에 암 선고를 받았다. 무슨 정신이 있겠는가.


늦은 오후의 산책을 마치고.



지난 주말은 힘들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아는 친구가 두 시간이나 기차를 갈아타고 뮌헨에 왔다.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다. 오전 산책 두 시간을 끝내고 기운이 없자 남편이 같이 중앙역으로 마중을 가주었다. 친구와는 집으로 왔다. 록다운이라 카페에 들어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두 시에 와서 다섯 시에 떠났다. 너무 지쳐서 남편에게 중앙역까지 친구의 배웅을 부탁했다. 먼 길 갈 친구에게 저녁을 대접하지도 못했다. 내가 암환자라는 것을 잊은 대가는 컸다. 오후 산책을 나가기엔 너무 늦었다. 산책은 생명이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산책보다 더 소중한 것은 가족 말고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일. 다음에 또 오겠다는 그녀의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한 이유다.


또 있다. 십몇 년 전 처음 독일에 살 때 알던 이가 연락을 했다. 내 이메일로 휴대폰 번호를 남겼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그때 그녀에게는 지금 우리 딸만한 예쁜 딸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컸겠지. 보고 싶다거나 보고 싶지 않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내겐 오래전 알던 이에게 갑자기 연락을 받고 연락할 마음의 여유도 그럴 시간도 없다. 나는 불과 열흘 전에 병원에서 암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고, 5일 전에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이다. 무슨 정신이 있겠는가. 정신이 있다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겠지. 뮌헨까지 온 친구의 방문도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 힘들었는데 하물며 오랫동안 보지 못한 타인과 다시 연락을 한다는 건 불가능이. 그런  상식적으로도 태평한 시절에나 가능한 일 아닌가.


또 있다. 멀리 사시는 분이 오랜만에 브런치를 보고 깜짝 놀라셔서 통화를 하자는 것도 거절했다. 요즘 나는 거절하는 법을 스스로 익히터득하고 다. 그래야 한다. 내겐 수술이 불과 1주일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 의료진과 미팅을 해봐야 정확한 날짜를  수 있다.) 내겐 하루하루 일 분 일 초가 귀하고 소중하다. 허투루 쓸 시간이 없다. 한국의 언니는 오기 힘들 것이다. 뮌헨에 사는 조카의 도움은 기꺼이 받으려 한다. 그럼에도 혼자서 몸조리를 한다는 각오로 준비할 게 많다. 멀쩡할 때 아이와도 놀아주어야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다. 그것 말고는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 나는 섣부른 위로도 바라않는다. 그 시간에 산책을 하고, 수술 후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산책을 계속할 그것만이 화두.


친한 언니의 남자 조카도 교환 학생으로 독일에 와 있다. 내년 2월 귀국 전에 뮌헨에 왔다가 나를 만나고 귀국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거절했다. 생각해 보시라. 12월에 수술을 받으면 내년 초부터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시작될 것이다. 죽도록 노력해도 예전 체력의 반의 반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오는 톡에 답하는 것조차 힘들겠지. 오지 마라고 했다. 아플 때 오는 손님만큼 번거롭고 힘든 게 어디 있다고. 외롭지 않겠냐고? 글쎄다. 외롭겠지, 당연히. 안 그런 게 이상하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게 있다. 방문하는 사람을 오히려 내 쪽에서 위로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괴로움. 같이 손잡고 울 수는 없으니까. 내가 흘리고 싶은 건 기쁨의 눈물이지 후회와 자책의 눈물이 아니다. 그런 나도 피할 수 없는 방문있었다. 일요일 오후 시부모님 방문. 원래 토요일 오후에 오라 하셨는데 못 갔다. 결론만 말하자. 모든 방문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산책이 백 번 낫다!






일요일 오후에는 시어머니 앞에서 펑펑 울었다. 어머니 카타리나의 말씀이 서운하고 러워서. 뮌헨에 온 지 3년. 산부인과를 안 간 것에 발등을 찍고 싶은 나람은 난데. 제일 아픈 부분을 어머니가 따로 불러 대못을 박으시더라. 가장 큰 실수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리고 최후의 일격. 아직 열 살 밖에 안 된 딸은 어쩔 거냐고. 돌아서서 울었다. 어머니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어서. 어머니도 울었다. 울면서도 큰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자기 아들에 대한 염려도 겠지. 암환자 아내를 케어하며 살아야 할 막내 아들의 고충 말이다. 남편이 들어와 어머니와 나 사이를 가로막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남편이 말했다. 지난 일은 상관없어요. 우린 앞만 보고 갈 겁니다. 엄마도 그렇게 세요! 떠날 때는 정신을 수습해서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는 강합니다. 당신만큼이나요. 다시 건강하게 시어머니 앞에 서리라, 그 전에는 문턱도 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카타리나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했었다. 지난주에 전화로 말씀드렸을 때 기가 차신지 역정부터 내셨다. 할 말이 없다고도 하셨다. 어머니의 반응에 할 말이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신도 자궁을 들어내셨건만. 조기 발견으로 항암 치료는 안 받으셨지만. 오토 아버지를 돌보시느라 마음의 여유는 없으시겠지. 그래도 서운했다. 나를 걱정하시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카타리나 어머니와는 달리 오토 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시며 연민의 눈길로 물으셨다. 어떠냐, 괜찮냐..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절로 났다. 아뇨, 안 괜찮아요.. 솔직한 말도 따라 나왔다. 그러자 금방 붉어지며 젖어들던 구십 노인의 파란 눈. 저런 게 위로가 아니고 뭔가. 얘야, 우리가 너를 도울 수 있다면 언제든지, 뭐든지 말하렴. 나는 그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아버지와 나를 친자식처럼 키우신 삼촌과 오토 아버지의 마음이 하나로 겹쳐지는 걸 보았다.


새어머니이신 힐더가드 어머니의 반응은 달랐다. 지난주에 처음 들으시자마자 이런 어쩌니! 그래도 괜찮을 거다. 너무 걱정하진 라. 나도 오래전에 자궁 들어냈잖니. 그때는 하네스(돌아가신 시아버지) 걱정할까 봐 말도 안 하고 혼자 가서 수술받고 왔잖아. 참, 어머니도.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가장 많이 나를 걱정해주셨다. 어제는 산책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왓츠앱이 도착했다. 좀 어떠니? 니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단다. 어머니를 안 지 20년 만에 처음 들어보말씀이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저녁에 통화할 때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보험 적용 안 되는 검사가 있거든 무조건 다 받아라. 계산은 내가 하마. 의료진에게도 미리 말해놓고. 벌써 대우가 달라진다. 안다, 불공정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알았니? 죽으면 어차피 너희들에게 돌아갈 몫인데 미리 당겨 지불한다고 달라질 게 뭐겠냐. 아, 어머니!


시누이 바바라는 노니 Noni를 선물했다. 열대 과일 엑기스라고 했다. 항암에도 효과적이라고. 고마운 마음에 시키는 대로 딱 한 번 큰 숟갈로 두 숟갈을 먹었다. 계속 먹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바바라에게는 노니도 고맙지만 내게 진짜 필요한 도움은 수술 후 1주일에 한 번 와서 청소를 해주는 거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했다. 내게 필요 없는 걸 거절하고 내가 꼭 필요한 걸 부탁하는 연습도 하고 있다. 많은 구독자분들이 말없는 마음으로, 라이킷과 댓글로 응원과 위로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를 알려주셨다.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 사시는 브런치 작가 두 분이 내 글을 읽고 대추를 보내주시겠다는 기별을 받았다. 두 말 없이 감사히 받고 꼭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나를 염려해서 찾아준 친구와 오랜만에 소식을 준 분과 통화를 원하시던 분의 진심을 몰라준 것 같다. 세 분에게 깊고 넓은 이해를 바란다. 암환자가 되어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 앞길이 구만리라서. 고맙고 죄송하다.



산책 때마다 방문하는 성당 Heilig-Kreuz-Kirche(Holy Cross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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