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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11. 2020

함께 걷던 이들을 생각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버스들이 요란하게 내 곁을 스칠 때, 지나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큰소리로 불러보았지, 그 노래. 그 길을 함께 걷던 그리운 얼굴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소환되었다.



뮌헨에 내린 두 번째 눈.



뮌헨에 두 번째 눈이 쏟아진 날. 아침에도 펑펑. 오후에는 훨훨. 눈이 온다고 산책을 멈출 수야 없지. 멀쩡할 때 걷고 또 걸어야 몸이 기억할 테니. 이유불문 집을 나선다. 산책을 나갈 때는 완전 무장. 걷기에 편하고 따듯 솜바지는 한국의 언니가 보내줄 것이다. 여기서 입을 수 있는 것은 스키 바지.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날 것 같아 패스했다. 통이 넓고 품이 넉넉한 청바지 안에는 수면 바지, 롱 패딩 안에는 가볍고 따듯한 쟈켓 하나. 목도리에 털모자와 장갑까지. 작은 크로스 가방에는 열쇠와 지갑과 폰. 어깨가 무거워 보온병은 들지 않는다. 올해는 눈이 많이 오려나 보다.




아침부터 한국에서 대학 친구(호칭은 통화 순대로 A, B, C로 하겠다.) B의 톡과 전화가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세상의 모든 예의들은 옛 친구들 앞에서 무장해제된다. 그러니까 친구지. 친구들과는 부산 사투리로 욕도 한다. 가스나, 문디 지랄한다, 미쳤나.. 런 건 예사다. 경상도식 애정 표현. 런 것이 점점 좋아지려 한다. 친구들 앞에서는 암 때문에 움츠러들거나 방어적이 되지 않아도 좋다. 가스나야, 내 암 아니었으면 내한테 평생 연락도 안 하고 종 려고 했제! 그러니까 말이다. 낄낄낄. 무려 십 년도 넘게 소식이 없던 친구였다. 그러나 늘 생각나던 친구. 지난 일요일에 통화했던 대학 친구 A한테 들었단다.


그날은 A의 생일이었다. 생일인 것도 모르고 전날 내가 암이라는 시한폭탄을 투척했나 보다. 그걸 생일 선물이랍시고. 니 남은 액땜은 내가 다 해 줬으니 고마운 줄 알아라, 가스나야!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전화기에 대고 A둘이서 미친 듯이 웃었다. 누가 봤다면 진짜 미친 여잔줄 알았을 것이다. A는 두어 달 전에 내 꿈을 꾸었다고 했다. 이 가스나가 진짜 작가가 될라 하나, 싶었단다. 고맙다 가스나야, 인제 자리만 깔면 되겠다! 속으로는 고마우면서도 퉁명스레 답하둘이서 또 미친 듯이 웃었다. 요새 욕쟁이가 다 되었다는 내 친구는 더 이상 속에 담아두지 않고 살기로 했단다. 대학 시절 이후로 담아두고 사는 꼴 본 적 없는 거 같은..


다음날 B의 연락을 받고 C가 전화를 했다. 유방암 항암 전력은 B한테 들었다. 그날 C는 자신의 항암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그 와중에도 회사도 계속 다녔다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원래 욕을 잘하는 게 매력이던 B 빼고, 욕과는 안 어울리게 생긴 A와 C가 못 본 새에 욕쟁이가 되어 있었다. 이게 다 갱년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 건강에는 좋다. C가 말했다. 암 걸리는 거 보면 다 이유 있다. 니나 내나 다 '꽁'한 년들 아이가! <응답하라>를 보면 이런 씬에서 꼭 '매애~' 소리가 들리던데. 인정! 꽁한 중년 여자 둘이서 셀프 디스 속에 시원하게 웃었다.




어딘가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의사가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라고 했을 때 한국인과 미국인의 반응은 어떻게 다를까. 한국인 반응은 '이제 죽었구나!'. 미국인은 '쇼 타임 끝 바른생활 시작!'. 나도 후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거 같다. 50년 동안 몸 안 돌보고 제멋대로 먹고살았다. 이젠 강제로 운동하는 삶을 살게 되겠네, 그런 생각만 들었지, 죽는다는 생각은 지 않았다.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랬나. (철이 없나?) 왜 내게 암이? 란 생각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일부러 하지 않았다. 올 만했으니 왔겠지! 운동 안 하고, 검진 안 받고.


우리 고모가 하신 말씀도 전해야겠다. 나에게는 세 명의 고모가 계셨는데, 지금은 둘째 고모 한 분만 남았다. 마산에 사시는 고모가 내 소식을 듣고 서울우리 언니에게 전화를 하셨다. 금아야, 정아 소식 들었데이. 우리 오씨 집안 여자들 강하다! 절대로 안 약하다. 정아는 괜찮다. 꼭 해낼끼다. 눈치 없는 우리 언니가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고. 고모, 고모 말씀이 맞아예. 직히 우리 씨 여자들이 남자들보다야 강하긴 하지예. 고모 왈, 남자들도 강하다! (매애~) 내가 요번에 생전 처음으로 죽은 우리 '오빠'한테 기도를 다 안 했나. 우리 정아 도와달라꼬. (그 오빠가 우리 아버지시다.)




두 번째 눈 오시던 날.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래도 불렀다. 불렀다기보다는 내 속에서 흘러나왔다고 하는 게 맞겠다. 큰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오는데 높은 담벼락에 노란 나뭇잎들이 버티고 있지 뭔가. 세상에, 지금이 어떤 계절인데. 그리고 이어서 내 귀에 들리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우리 언니가 좋아하던 두 남자는 이문세와 김광석이었다. 버스들이 요란하게 내 곁을 스칠 때, 지나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큰소리로 불러보았지, 그 노래. 그길을 함께 걷던 그리운 얼굴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소환되었.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이렇게 다시 찾아오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떠나가지만, 에서 노래는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목이 잠기더라고. 이런 곳에서 이런 노래가 터지면 눈물 나지. 오전 두 시간, 오후 두 시간의 산책은 그렇게 눈물 바람으로 마감했다. 그날은 좀 추웠나 보다. 전날 무 세 개를 썰어 뭇국을 끓였는데 오전 산책 때만 먹고 오후에는 안 먹고 나갔더니 돌아오자 허기가 졌다. 마음도 따라 휘청거렸다. 그런 날 저녁의 노래는 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과 바람이 전하는 말 두 곡을 엄선해서 들었다. 아, 영원한 오빠들! <아저씨> OST였던 고우림의 묵직한 음성으 백만 송이 장미를 듣고도 울던 밤. 그 후 노래를 듣지 않기로 했다. 눈 오는 날에는 시인의 일기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일기

                     

                                                                                        황동규


하루 종일 눈. 소리 없이 전화 끊김. 마음 놓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음.

길 건너편 집의 낮불, 함박눈 속에 켜 있는 불, 대낮에 집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불, 가지런히 불타는 처마. 그 위에 내리다 말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눈송이도 있었음.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비채를 휘두르며 불길을 잡았음. 불자동차는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달려옴.

이하 생략.

늦저녁에도 눈. 방 세 개의 문 모두 열어놓고 생각에 잠김.

이하 생략.

"혼자 있어도 좋다"를 "행복했다"로 잘못 씀.



부엌 베란다에서 내리는 눈도 같이 찍었는데 안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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