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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현 변호사 Oct 31. 2020

인생 책방


1.


  한 학년에 한 반만이 있던 시골의 작은 국민학교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국가차원의 의지로 인해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고, 비슷한 시기에 나라의 지원을 받아 새로 만들어진 도서관에는 새 책들로 가득 찼다.     


  새로 지은 건물 안에 생긴 정갈한 도서관은 그 아늑함에도 학생들이 대부분 찾지 않았다. 그 조용함이 좋아서 쉬는 시간, 방과 후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이리저리 펼쳐보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책을 읽기보다는 천장 가득 높이의 책장에 가득 꽂혀있는 책들의 모습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초등학교 시절보다 훨씬 큰 도서관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에게 태백산맥을 읽으라고 했던 담임선생님의 권유에 못 이겨 10권이 넘는  태백산맥을 읽다가 책과 멀어졌으며, 신화의 팬이었던 주황공주였기에 팬들이 가수를 상상하며 쓴  팬픽에 빠져 살았었다. 추억 속의 물건인 플로피 디스켓을 사용했었는데, 그곳에 유명한 팬픽을 가득 담아서 모니터 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부모님 몰래 읽곤 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스크롤을 내리며 팬픽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그렇게 신화의 팬픽을 읽으며, 신화 오빠들에게 팬레터를 보내면 중학교 시절을 보냈었다. 예쁜 편지지에 가득 왜 오빠들이 좋은지를 손글씨로 가득 적었지만 부치치 못한 팬레터는 아직도 내 책상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2.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입시 공부에 시달리느라 교과서 이외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고, 도서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대학생이 되자 자유시간이 많아졌고, 넘쳐 나는 시간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대학교의 도서관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도서관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컸고, 다양한 섹션을 다니면서 책을 구경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책이 너무 많으니 읽고 싶은 책을 찾으려면 도서를 검색해서 해당 섹션에 가서 일련번호에 맞춰서 책을 찾아야 했는데, 그 책들을 찾고 있노라면 내가 여태껏 왜 소풍을 가서 보물찾기 게임에서  상품을 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지 단박에 이해되곤 했다.      

올재 클래식 고전 시리즈, 한 권에 2900원이다.

  

  졸업할 즈음이 되니, 학교에 교보문고가 생겼다. 언덕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도서관과 달리 서점은 강의를 듣는 강의실의 근거리에 있었다. 진열되어 있는 책들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읽어 내려갔고,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책을 구매했던 것 같다. 그러다 주황색 표지의 책들을 발견했는데, 가격이 한 권에 2900원이었다. 홍정욱 전 의원이 고전의 보급을 목적으로 올재 클래식이라는 출판사를 세워 저렴한 가격에  책을 출판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책에 비해 번역이 좋아서 인지 구매 경쟁이 치열했다. <국부론>과 <마음>이라는 두 권의 책을 득템? 한 뒤로는 올재 클래식의 책을 구매할 수가 없었다.


책세상의  문고본


  문고본으로 작은 사이즈의 책들이 있었는데 책 세상의 고전 시리즈들, 지식인 총서의 책들이었다. 크기가 손바닥보다 조금 컸고, 종류가 다양하며 두께가 얇아 가방에 넣어도 큰 부담이 없었기에 세일을 할 때 왕창 구매해놓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지식인 총서의 <미술 경매책>과 <커피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학기가 시작하면 학생문화관 앞에는 벼룩시장과 같은 책 마켓이 열렸는데, 학생문화관 앞 광장 트레일러에서 한 가득 책을 팔았다. 가격은 대게 3천 원부터 시작했으며, 괜찮다 싶은 신작 책들도 50프로 정도 세일했던 것 같다. 책이라면 환장하는 내가 새책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책 마켓이 열리면 공강 시간마다 책을 구경하느라 마켓에서 살았던 것 같다. 간혹 가다 갖고 싶었던 책을 저렴한 가격에 건지면 그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고, 돈을 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참 책을 좋아.. 아니 사랑했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렇게 책을 좋아했던 것일까? 아니 왜 책을 사랑했던 것일까?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아마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메우기 위해 책들을 벗으로 삼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부족함이 많아서 책을 벗으로 삼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리고 요즘 나의 책 사랑은 월정액을 등록하면 무제한으로 책을 구독할 수 있는 전자책 서비스와 오디오북으로 이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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