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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현 변호사 Oct 31. 2020

나의 진주 할머니





1. 추억의 사랑방 사탕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입안에 사탕을 물고 일을 한다. 입에 사탕을 넣었을 때 한가득 퍼지는 그 달콤함이 좋기 때문이다. 사탕을 이렇게 먹어도 이가 상하지 않는 어른이어서 참 다행인 듯싶다. 늘 먹던 사탕이 떨어져 가기에, 나에게 달달함을 선물하고자 마트에 가서 사탕들을 둘러보다 무의식 적으로 “사랑방 사탕”을 집어 들었다.


    

 "사랑방 사탕"을 보면 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옆동네에 살았던 외할머니는 사탕 부자 진주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나보다 2살 어렸던 여동생이 진주 할머니라고 부르기에 중학생이 되어서 까지도 진주 할머니가 왜 진주 할머니 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불렀었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엄마가 진주 할머니였고, 진주 할머니가 증조할머니라는 것은 시간이 엄청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수업이 끝나면, 초등학교 뒤에 있던 외 할먼네로 달려가곤 했다. 할머니네에 가면 진주 할머니가 드시던 온갖 종류의 사탕과 요구르트가 냉장고 한가득 있었다. 진주 할머니한테 달려가 인사를 하고, 방에 앉아서 사탕 부자 진주 할머니의 사탕을 까서 먹었다. 집에 돌아갈 때는 양 주머니에 사탕을 가득 넣어간 것은 덤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가 상한다며, 사탕 좀 그만 먹으라며 잔소리를 하곤 했었다.

 


2.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통통한 아이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탕은 색색깔 구슬 모양의 사랑방 사탕이었다. 항상 진주 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탕을 선물로 사 왔는데,  어린마음에 나도 어서 할머니가 되어서 사탕 선물도 마음껏 받고 엄마의 눈치도 안 보고 사탕을 마음껏 먹고 싶었다.


  사탕을 다 먹고 나면, 외할머니네 뒷마당에 말린 곶감을 가져다 한 아름 먹고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소파에 누워서 낮잠을 잤었다. 외할아버지가 감을 까서 햇볕에 말리는 속도보다 내가 다 마르지도 않은 곶감을 먹는 속도가 더 빨라서,  할머니는 처음에 집에 곶감 도둑이 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 통통 했었나 보다.      

 


3. 진주 할머니의 죽음과 외할아버지


  할머니네 옆동네에 살았던 나는 다른 도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외가댁은 명절이 아니면 갈 수 없었다. 학교생활에 바삐 적응하던 어느 날 엄마를 통해 진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주 할머니의 죽음은  내가 세상을 살면서 처음 접한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진주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 외할아버지의 가족사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진주 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친어머니가 아닌, 큰어머니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외할아버지의 큰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작은댁 아들이었던 외할아버지를 큰집의 양아들로 입양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왜 할아버지에게 형제자매가 그렇게나 많았는지, 외할아버지와 진주 할머니 사이에서 느껴졌던 무언의 거리감이 이해가 되었었다.      


  진주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아마, 사탕 부자였던 진주 할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그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수험 공부하느라 바빠서 장례식에 다녀온 뒤로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사탕을 입에 물고 있다 보면 종종 사탕 부자 진주 할머니가 생각나곤 한다. 그 당시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지, 자신이 배가 아파 낳은 딸이 있음에도 작은아버지 아들을 양자로 들여야 하는 것이 얼마나 속상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는  진주 할머니가 살던 시대에 비해 비교적 살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라서라는 제약이 많이 사라졌고,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받는 차별도 없다. (물론, 사회적 제약과 차별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끔씩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불안한 생각이 들곤한다.


 그렇게 나의 세대는  진주 할머니의 시대와는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인생이란 굴레는 시대마다 새로운 주제를 던주며, 그 굴레를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정답은 없지만, 정도는 있기에  최선을 다해 나에게 주어진 인간의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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