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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Oct 15. 2021

여행지에서 나만의 아지트 찾기

어디에서나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야 하는 이유

누구에게나 나만의 아지트는 필요하다.

내 기억 속 나의 첫 아지트는 거실 테이블 아래이다. 테이블 의자로 입구를 막고 테이블과 의자에 이불을 씌워주면 방공호처럼 테이블 아래 컴컴하지만 아늑한 공간이 생긴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잡동사니를 놔두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아지트는 휴식공간이자 내가 세상에 나가기 위해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지트 안에서는 내가 어떠한 짓을 해도 나를 볼 사람도 혹은 나에게 세상의 잣대를 들이댈 사람도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보여지는 나의 모습을 잠시 꺼두고 내면에 있는 나에게 온전히 빛을 비춰주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아지트이다.


나는 여행지에서 나만의 아지트를 찾는다. 

여행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의 연속이지만 그만큼 예기치 못한 상황이 언제나 발생할 수도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늘 조금의 긴장감을 안고 지낸다. 그 조금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곳들은 에스토니아에서 내가 시간을 보냈던 아지트이다.

탈린 옛 시청사 광장 앞 카페. 야외석에 앉으면 시청사 광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탈린 올드타운 안에 있는 유일한 커피 로스터리.
탈린 성 울라프 교회 근처의 와인바.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오가닉 와인이나 유럽 여러 지역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타르투 대학가 근처의 카페. 과제 하는 학생들 속에서. 북유럽의 커피는 맛있다.


여행지에서 나만의 아지트를 찾을 때 몇 가지 나만의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왠지 모르게 계속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장소를 고른다.

사람과 장소 사이에도 끌림과 인연이 존재한다. 있기 편안한 장소가 존재하고 왠지 모르게 거기에 갔더니 좋은 일만 일어나고 그런 경험들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혀 모르는 장소이지만 자연스럽게 슬쩍 눈길이 가는 장소는 아지트 후보지에 넣어둔다.


두 번째, 내 스스로 발품 팔아 우연히 찾은 장소를 고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 발품 팔아'와 '우연히'라는 키워드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정보를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얻고 간다. 예를 들면, '이곳은 구글 맵에서 평점이 4.8인 곳.', '이곳은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곳.', '이곳은 예전에 여행 가본 적 있는 친구가 추천한 곳.' 등등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미리 정보를 얻고 간 곳은 우리가 이미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가져버리게 된다. '이곳은 친구가 추천해줬으니 분명 예쁠 거야.', '이곳은 구글 맵 평점이 높은 곳이니 분명 맛있을 거야.', '이곳은 전혀 언급된 적이 없으니 가볼 가치가 없는 곳일 거야.' 등등 아직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이런 기대감과 선입견이 우리가 실제로 그 장소를 갔을 때, 그 장소를 판단하게 되는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기대감을 뛰어넘기가 힘들어지거나 선입견이 그 장소를 바라보는 시야를 좁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 스스로 발품 팔아 찾은 곳은 어떨까?

내 스스로 찾은 곳이기에, 더군다나 발품을 팔아 찾은 곳이기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장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가 찾았다는 성취감과 애착은 그 장소를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또한, 우연히 찾은 그곳은 우연이 주는 두근거림으로 인해 더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세 번째, 실제로 그 장소에 머무를 때, 그 장소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함께 편안한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장소를 고른다.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우연히 내 발걸음을 계속 멈추게 하는 장소를 발견해 들어간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왠지 조금 위험하게 보이고, 그들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없다면 그 장소를 다시 찾게 되는 일이란 발생하기 드물 것이다. 

탈린에서 내가 자주 머물렀던 와인바의 오너는 늘 주문을 받는 타이밍, 말을 걸어주는 타이밍이 정해져 있었다. 내가 혼자 있고 싶다는 제스처를 취하면 전혀 방해하지 않았고, 말을 하고 싶은 때이면 몇 마디씩 캐치볼을 주고받았다. 

나의 또 다른 아지트였던 옛 시청사 광장의 카페는 탈린에 사는 외국인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에 가면 다른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카페의 할아버지 사장님은 아침에 늘 자전거를 타고 탈린 시내를 분주하게 돌아다녔는데, 시내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타르투의 단골 카페의 오너는 주문받을 때 외에는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지만, 주문할 때 늘 친숙함이 묻어나는 간단한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일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가면 늘 변하지 않는 그 오너들이 나를 반겨주고 그들과 편안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함께 있는 듯 혼자 있는 듯 긴장감을 풀어낼 수 있는 아늑한 장소들이었다.




여행지에서 아지트가 생긴다는 것은 그 여행지가 더 이상 단순히 내가 갔다 와 본 곳에 그치지 않게 한다.

그 여행지를 내가 언제든 다시 돌아가 머무를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든다. 

나만의 아지트, 나만의 휴식공간, 내가 좋아하는 장소. 여러분도 다음 여행지에서는 꼭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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