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에스토니아
어느 나라를 가나 현지 언어를 배워두면 좋다. 간단한 것이라도 말이다. 처음 보는 현지 사람들에게 '그래도 이 친구는 우리나라에 대해 뭐라도 알고 왔구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기 때문이다.
내가 에스토니아행을 결정했을 때 맨 처음 구글링 해본 말이 '안녕'과 '고마워'이다. 일상생활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어로 '안녕'은 '떼레(Tere)'이고 '고마워'는 '아이따(Aitah)'이다.
에스토니아는 나에게 참 감사한 나라였다.
나는 매번 여행을 갔다 올 때마다 간단한 여행일지를 쓰는데, 이 당시 나는 한참 '감사일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에스토니아에서 일어난 감사한 일들을 메모했다. 지금까지의 에스토니아 여행에 관련된 모든 글들은 전부 이 '감사일기'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에스토니아는 나에게 첫 '북유럽'이었다. 늘 처음이란 것은 우리에게 설렘과 기대를 주는 동시에 두려움과 막연한 불안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 모든 감정들을 나는 에스토니아행을 결심하면서부터 에스토니아에 발을 디딜 때까지 쭉 가지고 있다가 에스토니아에서 생활하는 3개월 내내 에스토니아에게 이 감정들을 꺼내놓았다. 그러자 에스토니아는 나에게 이렇게 화답했다.
"거 봐. 해보니까 별 거 아니지? 혼자서도 잘할 수 있잖아. 잘 지낼 수 있잖아."
나는 추위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눈은 좋아한다. 하얗게 내리는 눈이 추위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에스토니아의 겨울은 눈 천지이다.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 매일 눈을 볼 수 있다. 눈으로 뒤덮인 에스토니아의 자연, 그것은 특별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에서 공기가 맑은 나라 Top 5 안에 드는 나라이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국민 인구수는 경기도민 수준인 1천3백여 명이다. 국토의 절반은 숲이다. 에스토니아의 숲은 대부분 크리스마스트리 나무와 같은 상록 침렵수들로 빽빽하다. 발트해를 즐길 수도 있다.
에스토니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섬인 사아레마를 방문했을 때다. 에스토니아 전국을 기차나 버스로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넓은 대지와 숲을 볼 때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에 감탄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다. 우선 에스토니아에서 생활하던 3개월 동안 나는 인종차별을 한 번도 겪지 않았다. 지금까지 25개 나라를 돌아다니며 아시아 여성에게 인종차별이란 꽤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란 걸 몸소 체험해 알고 있었지만 유럽에서 한 번도 인종차별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쾌적하고 편안한 경험이었다. 인종차별이 없다는 것은 그 나라가 얼마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냐를 알려주는 지표이다.
사회 분위기뿐만 아니라 에스토니아에서는 이를 제도적으로도 지지한다. 국경 없는 디지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자 영주권' 제도를 전 세계에서 처음 도입한 나라가 에스토니아이다. 어느 나라에 살든 어느 국적의 사람이든 에스토니아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면 온라인으로 신청해 전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데, 이 제도를 통해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사회에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8만 명 가까이 된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인구 절반이 에스토니아 사람이 아닌 것을 보면 에스토니아는 온오프라인 모두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이다.
또한, 에스토니아에서는 영어가 꽤 잘 통한다. 물론 외곽지역에서는 영어가 통하는 확률이 낮아지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스토니아어와 영어, 두 언어로 소통을 시작해온다. 대부분의 가게와 거리에서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보가 영어로도 공유된다. 이것은 내가 에스토니아를 행선지로 정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모든 정부, 미디어 그리고 주요 시설의 홈페이지에 정보가 영어로도 원활하게 제공된다는 점이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늘 상황이 급변하는 시기에 물론 에스토니아어를 할 수 있다면 베스트이겠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빠르고 정확한 정보의 취득은 중요해진다.
에스토니아에 입국하기 직전까지 나는 에스토니아 정부, 미디어 등에서 영어로 아무런 문제 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 편리함은 에스토니아 생활 내내 지속되었다.
보통 영어가 제1 언어가 아니라면 중요한 정보 외에는 누락되거나 부자연스러운 영어로 정보가 기재되어있는 경우도 많은데, 에스토니아의 경우 그렇지 않았고 영어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도 다양했다. 역시 인터넷 자유도 세계 2위의 명성에 걸맞게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은 당장 에스토니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큰 안심을 준다.
여담이지만 에스토니아는 오랫동안 러시아와 독일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러시아어와 독일어도 꽤 통한다. 그리고 이웃 나라의 핀란드어도 잘 통해서, 이런 언어들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북유럽은 물가가 비싸다.'라는 인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개인 소득세가 에스토니아는 일률 과세로 20%인데 비해 여타 북유럽은 누진세로 50%에 육박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들이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의 정보에 따르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한 달 생활비는 집세 포함 2천 달러(한화 약 2백만 원) 안팎인데 비해 다른 북유럽인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3천5백 달러(한화 약 4백만 원),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4천5백 달러(한화 5백만 원)에 육박한다.
실제로 내가 에스토니아에서 에어비앤비로 한 달씩 집을 옮겨 다니며 생활해 본 결과, 집세가 평균 한 달에 1백만 원 정도 나왔다. 그리고 다른 생활비(식비, 여가비 등등)는 1백만 원 정도로 합해서 한 달에 약 2백 만원씩 지출하였다. 중간중간 에스토니아의 다른 도시인 합살루, 파르누, 발가, 사아레마 등으로의 짧은 여행에 대한 지출도 포함한 생활비였다.
한국 서울에서 생활해도 비슷한 금액의 생활비가 필요하니 북유럽에서 생활하는 것 치고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에스토니아에서의 생활은 꽤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혼자 생활하면 집세 외에 가장 많이 생활비로 지출하게 되는 것이 식비인데, 식비 또한 에스토니아는 저렴한 편이다.
북유럽은 커피 소비가 세계에서 아주 높은 편인데 에스토니아의 이웃나라인 핀란드는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이 12kg에 달해 전 세계 1위의 커피 소비량을 자랑한다. 그래서 에스토니아에도 다른 북유럽에서 들어온 질 좋은 커피들을 많이 파는데 좋은 커피 원두에서 추출한 에스프레소와 에스토니아의 맛있는 우유를 섞은 고소한 라떼가 3유로(한화 약 4천 원) 안팎이면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점심 특선 메뉴가 있는 것이 에스토니아 식당들의 특징인데, 매일 조금씩 메뉴가 바뀌는 각 식당 고유의 점심 특선 메뉴를 오전 11시~오후 2시 사이에 맛볼 수 있으며, 가격도 꽤 저렴해 5유로(한화 약 6천 원) 정도만 내면 고기나 생선류에 감자, 야채 등을 함께 곁들인 원 플레이트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보통 유로권 나라에서는 점심 식사가 10유로 이상, 저녁 식사는 20~30유로 이상 지출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꽤 합리적인 식소비가 가능하다.
만약 홈쿠킹을 즐긴다면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오랫동안 농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에스토니아답게 야채나 과일류는 물론 육고기와 발트해에서 잡힌 해산물 등 싱싱한 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나는 탈린 역 근처의 전통마켓과 쇼핑몰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을 즐겨 찾았는데, 발트해의 연어가 100g에 1유로(한화 약 1천 원)도 하지 않아 한국의 반 값에 연어를 구매할 수 있어 연어 스테이크를 자주 해 먹었다. 야채나 과일류도 보통 1~2유로 선에서 구매할 수 있고 대부분 에스토니아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들어어서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장보는 것이 쇼핑하는 것 마냥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낙농업도 발달한 나라여서 우유, 치즈 등과 같은 유제품들도 저렴하고 맛있기 때문에 주변 북유럽이나 다른 유럽 등에 수출도 하고 있는 정도이다.
유럽을 돌아다니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각 도시별 특색들이 다양해 돌아다니는 맛이 난다. 하지만 대부분 서유럽은 서유럽대로, 남부 유럽은 남부 유럽대로, 북유럽은 북유럽대로 동서남북으로 나눠져 각자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데, 에스토니아는 북유럽, 서유럽, 러시아의 경계에 있어 여러 문화가 섞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것은 오랫동안 에스토니아가 북유럽과 서유럽의 나라, 러시아의 지배와 침략을 거듭해 오며 그들의 영향을 모두 받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는 특히 그 세 문화의 혼재를 보여주는 장소가 많은데, 오래전부터 에스토니아의 행정의 중심부였던 톰페아 언덕에는 중세시대의 지도자가 통치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성벽과 탑, 성당 그리고 러시아가 지배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 바로크 양식의 의회 건물과 대통령 관저 등 중세 유럽과 근대 서유럽, 러시아의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다.
탈린의 중앙역과 항구 근처에는 북유럽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모던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스트리트 아트와 마켓, 카페, 갤러리, 셀렉트 샵 등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근현대에 들어서며 이웃에 위치한 북유럽과의 문화적 교류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독특한 다양성은 음식 문화에서도 드러난다. 중세시대부터 내려오던 에스토니아의 전통음식은 물론 러시아와 독일의 음식문화도 공존하며, 중세시대 한자동맹의 주요 거점답게 많은 동양의 향신료도 보편화되어 있어 음식 간이 제법 동서문화가 섞여있는 그리스나 터키의 음식을 먹는 듯하다. 다양한 허브를 블렌딩한 차도 많이 마신다.
그리고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유럽의 문화도 공존하기 때문에 비건 요리나 일반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당과 요리도 많아, 경기도민 정도의 수의 인구가 사는 이 조그만 나라에 이토록 다양한 음식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겨울에 에스토니아를 들른다면 'Tasty Tartu'와 같은 음식 콘테스트에서 여러 식당의 신메뉴를 즐길 수 있는 축제도 즐길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미식가들에게는 입이 즐거운 나라이다.
코로나 판데믹, 처음 가본 북유럽 에스토니아.
이 상황과 장소가 겹쳐 나는 다시 한번 여행으로 성장하는 나를 발견했다.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미지의 상황에서 첫 북유럽이자 처음 가보는 에스토니아라는 미지의 지역과 나라에서 생활하며 나는 나에게 있어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여행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지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고 알고 있던 것들을 재확인하는 과정
처음 에스토니아행을 결정했을 때 나는 에스토니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심지어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도 정확하게 몰랐다. 하지만, 에스토니아행을 단행하며 나는 에스토니아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했고, 실제로 에스토니아에서 3개월 간 생활하며 나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에스토니아의 다양한 매력을 알아갔다. 내가 알아봤던 정보와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있었다. 사전 학습과 실제 경험에는 역시 상이하는 부분이 발생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에스토니아에 대해 알아보았고, 실제로 에스토니아에서 생활하는 동안 최대한 마음을 열어 에스토니아를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생활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상식이 상식이 아닌 경우도 발생했다. 해외에서는 인종차별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종차별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북유럽은 처음부터 부자 나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픈 역사를 겪으며 그 과정 속에서 나라와 시민을 지키는 복지와 부를 갖춘 나라들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겨울에는 스키와 썰매가 자전거와 유모차처럼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배움들로 나는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과 지평을 조금 더 넓히고 깊게 할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수정하고 넓혀나갈 수 있는 여행의 과정.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늘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세상을 보고 정보를 얻는 힘을 얻는다. 여행은 나의 이런 능력을 드라마틱하게 성장시킨다.
여행은 실전. 새로운 돌발상황에서 나를 시험하는 과정
여행은 연습이 없고 늘 실전이다. 내가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이 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No'이다.
이 순간 그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여행을 대하는 우리의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이번 여행도 돌발상황의 연속이었다. 분명 독일 경유 시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란 독일 국경 경찰의 답을 이메일로 받고 출국했지만 EU 입국 심사관이 꽤 까다로워 10분 간 입국 심사대 앞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타르투 외곽에 있는 성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버스 요금을 내는 방법을 몰라 바디 랭귀지로 한참을 소통하다 겨우 버스 요금을 낸 일. 아이폰 카메라가 깨져 새로운 아이폰을 구매했던 일. 눈이 이렇게나 많이 올 줄 모르고 운동화만 챙겨 갔다 부랴부랴 에스토니아의 쇼핑몰에서 부츠를 구매했던 일. 에스토니아에서 한국으로 오던 날 새벽, 집 열쇠와 짐을 동시에 집 안에 놔두고 밖에 나와버려 급하게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호출해 짐을 꺼내 공항으로 향했던 일.
지금 생각만 해도 이 정도인데 분명 에스토니아에서는 몇 번이고 진땀을 뺐을 것이다.
신기하게 이런 진땀 빠지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인간은 예상 밖의 여러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여러 감정들도 느낀다. 그러면서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내 안에 이런 감정들이 있었구나.',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구나.', '내가 이런 것도 해결할 수 있네?'
이런 돌발상황과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나 자신과 더 가까워진다. 나를 더 알아가고 탐구할 수 있다. 그리고 돌발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생긴다. 한 고비 넘기고 나면 나 자신과의 조금 더 탄탄하고 끈끈한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래서 에스토니아는 나에게 참 고마운 나라이다.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보는 힘과 나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인 북유럽과 에스토니아를 알게 하고 나에게 있어 여행의 가치를 재차 깨우쳐 준 나라. 이것들을 느끼고 배우는 3개월 간의 여정을 스스로 해낼 수 있게 힘과 용기를 준 에스토니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모르는 나라여서, 잘 안 알려진 나라여서 발걸음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 실제로 경험해보면 나에게 더 맞는 것들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여행을 통해 본인에게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나라를 꼭 찾으시길, 세상과 나를 탐구하고 발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