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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Oct 15. 2021

나는 매일 스케이트를 탄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눈 오는 겨울에 대처하는 법

에스토니아의 겨울은 춥다. 나는 에스토니아에서 12, 1, 2, 3월을 보냈다. 에스토니아의 초겨울부터 겨울이 끝나가는 무렵까지의 날씨를 경험한 나의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에스토니아의 겨울은 춥긴 하지만, 견딜 만하다.

시베리아에서부터 오는 겨울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를 육박하는 서울의 겨울도 경험했고, 바닷바람으로 인해 정신 못차리는 도쿄의 겨울도 경험한 나로서는 에스토니아의 겨울 날씨는 상상했던 매서운 북유럽의 겨울 날씨보다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추워도 영하 10도 수준이어서 체감온도가 영하 2~30도로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았고,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섬나라 일본에서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매서움이었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고, 에스토니아의 겨울은 극소량의 햇빛으로 인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쌓이는 눈, 소복소복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온 몸을 때리며 내리는 눈보라와의 싸움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한국 사람들은 온돌로, 일본 사람들은 코타츠로 그들만의 겨울을 견딘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스케이트와 스키, 썰매로 그들의 겨울에 적응한다.


에스토니아의 눈은 대부분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 내리는데, 매일 눈이 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계속 눈이 휘몰아친다. 추운 날씨로 인해 제설차가 매일 지나 다님에도 불구하고,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의 눈이 거리에 쌓이거나 거리에 쌓인 눈이 쉽게 얼어 온 골목이 빙판길이 되거나 그 두 가지 경우의 수가 항상 반복적으로 발생하기에 부츠는 에스토니아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다.


또한, 스케이트, 스키, 썰매는 부츠 말고도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겨울 필수 아이템이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스케이트를 타본 적이 언제인가? 스키나 썰매는?

나는 겨울 스포츠 매니아가 아니기 때문에 스케이트는 겨울이 되면 아이스링크에서 한 두번 정도? 스키는 7년 전, 썰매는 초등학교 이후로는 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는 스케이트, 스키, 썰매가 겨울 일상생활의 일부이다.



내가 에스토니아에서 스케이트장을 발견한 것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하고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탈린의 올드타운 안에 위치한 스케이트장은 탈린의 옛 시청사광장과 성니콜라스성당, 자유광장,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과 같이 탈린의 주요 관광지를 보며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스케이트를 타면서 볼 수 있는 탈린 올드타운의 아름다운 풍경


에스토니아의 스케이트장에서 무엇보다 놀란 것이 있다면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시즌권이 100유로 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 당 7만원만 내면 겨울 내내 스케이트를 대여하는 것도 포함해 매일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입장에 10유로인 입장료 대비 시즌권을 이용하면 4달 내내 매일의 입장료가 1유로도 안된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정말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매일 스케이트를 타냐고?

응, 매일 탄다. 

원래 겨울에 바깥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평소 같았으면 스케이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겠지만 북유럽에서 겨울 내내 생활하는 것이 어디 흔하겠냐는 생각과 그래도 운동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즌권을 끊고, 거의 매일 스케이트장을 찾았다.

스케이트장에는 단골 손님들이 있다. 실력도 수준급이다. 보통 피겨 스케이팅이나 스피드 스케이팅의 꿈나무와 같은 아이들, 피겨 스케이팅을 예전에 전문적으로 했을 것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한 두시간 씩 연습을 한다.

스케이트장은 커플들의 데이트 장소, 친구들의 놀이터, 가족들의 주말 필수코스이기도 해서 주말이나 평일 밤에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신기한 것은 꽤나 많은 사람들, 어린아이부터 중년의 부모님까지 자신의 스케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학교의 겨울 방학이 끝나면 이제 인기가 조금 사그라든 스케이트장에는 낮시간 동안 근처 학교의 아이들이 체육 수업으로 스케이트를 탄다. 한 시간마다 학생들이 교대로 스케이트장에 드나드는 모습에서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주 스케이트를 타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남녀노소 스케이트를 즐길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스케이트장 뿐만 아니라 얼어있는 큰 호수 위에 사람들이 다 같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여름이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강 둔치에 나와 치맥을 즐기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에스토니아 타르투 외곽의 큰 호수. 얼어 있는 호수 위로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인 거리를 걷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금새 지쳐버린다. 성인도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에스토니아에서 겨울에 유모차 대신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썰매이다. 

나는 지금까지 썰매는 썰매장에서만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내 한 복판에 엄마 아빠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썰매에 아이를 태우고 썰매를 끌고 가는 모습은 에스토니아에서 겨울에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맨 처음 그 광경을 보았을 때 나는 당혹감과 동시에 썰매에 타고 부모 손에 끌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기도 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의 대형마트에서는 겨울에 다양한 형태의 썰매를 판매한다.



허허벌판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바로 옆에 집이 있고 버스가 지나 다니는 도로이다.

눈 쌓인 길을 걸어가다 스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만난다면?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 스키는 스키장에 가서 타는 것이 아니라 동네 골목길에서도 공원에서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다. 눈이 많이 쌓인 날,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자신의 스키를 꺼내 집 밖으로 나온다. 스키를 타고 마치 조깅이나 산책을 하듯 쌓인 눈 위로 미끄러져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안이 벙벙하다가도 이해가 된다. 매년 겨울마다 이렇게 쌓이는 눈을 본다면 걷는 것보다 스키를 타는 것이 더 빨리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환경에 적응했다.

스키나 썰매는 힘들겠지만 스케이트만큼은 매일 타러 다녔다. 판데믹 상황이라 외국인은 나 밖에 없었기에 스케이트장 직원들도 금새 나를 기억해주고 내 발 사이즈도 기억해 스케이트장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스케이트를 건내주며 인사해주었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겨울을 보내는 것처럼 나도 겨울을 보내다보니 에스토니아에서의 3개월은 금새 흘러갔다. 스케이트를 맨 처음 탄 12월의 일주일은 근육통에 시달리며 엉덩방아도 몇 번 찧었지만 스케이트장의 얼음이 따뜻해지는 햇살로 조금씩 녹기 시작한 3월 초 즈음에는 익숙하게 30분 정도 아이스링크를 빙글빙글 돌 수 있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그 곳과 어울리는 취미를 가지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 판데믹 동안, 발리에서 6개월 요가를 하며 지냈고 에스토니아에서 3개월 스케이트를 타며 지내면서 여행지에서 그 곳 사람들이 일상생활처럼 하는 것에 도전해보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의 즐거움을 느꼈다.

금새 떠나가 버릴 사람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하는 것을 해보고 그들의 생활을 느끼며 그 장소에 스며드는 것. 여행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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