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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Oct 20. 2021

왜 에스토니아 국기는 파랑, 검정, 하얀색일까?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독립기념일을 보내는 법

나는 특별한 날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나라의 의미 있는 날을 즐기고 축복하는 현지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발리의 녜피가 그랬다. 통행금지가 내리고 모든 불빛이 꺼지는 발리의 새해 첫날인 녜피를 발리에서 맞이했던 나는 발리인들의 새해 첫날을 함께 경험했고, 그 경험은 나에게 가장 특별했던 새해 첫날로 남아있다. 크리스마스나 새해맞이를 유럽이나 미국에서 보내는 것도 좋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거나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기, 서로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는 풍습을 현지인들과 함께할 수 있다.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도 인상에 남는 경험이었다. 바이에른 주 사람들의 맥주 사랑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축제였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 2월은 특별한 달이다. 바로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 협정을 맺고, 실제로 독립을 쟁취한 것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1918년 2월 23일, 에스토니아 파르누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그 다음 날인 2월 24일, 수도 탈린에서도 독립선언문을 공표한다. 독일 그리고 러시아 군대와 2년 가까이의 긴 독립전쟁 후, 1920년 2월 2일,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러시아와 평화 협정을 맺고 첫 독립을 쟁취한다.


이 때 독립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지금 톰페아 언덕의 헬레만 타워에 매일 일출 시간에 맞춰 게양 되는 에스토니아 국기이다. 

톰페아 언덕 헬레만 타워에 365일 게양 되는 에스토니아 국기. 에스토니아 독립의 상징이다.


에스토니아 국기는 에스토니아 타르투 대학의 학생들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각 나라의 국기는 각자 그 나라만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에스토니아 국기에도 에스토니아인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색깔이기도 한 파란색은 에스토니아 국기 맨 첫 줄에 칠해져 있다. 파란색은 에스토니아의 파란 하늘과 발트해의 바다 색깔을 나타낸다. 검은색은 에스토니아의 검은 땅을 의미한다. 또한, 에스토니아가 약 7백여 년 간 다른 나라의 지배와 침략을 받았던 긴 어두운 역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얀색은 에스토니아가 마침내 얻은 독립과 자유 그리고 흰 눈이 대지를 덮는 에스토니아의 겨울, 백야현상이 일어나는 에스토니아의 여름을 상징한다. 이렇게 에스토니아 국기에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정신 그리고 그들이 겪었던 역사와 에스토니아의 자연이 담겨있다.

왼쪽은 한 작가가 본 에스토니아 국기와 닮은 겨울 풍경(https://en.wikipedia.org/wiki/Flag_of_Estonia). 오른쪽엔 내가 본 가장 비슷했던 풍경.



에스토니아의 겨울은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시기이다. 그중 하나가 에스토니아의 독립기념일이다. 에스토니아의 독립기념일은 국경일로 에스토니아 현지인들도 하루 종일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2월 24일 독립기념일 아침 일찍부터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분주하다. 처음 독립을 선언하던 그때, 톰페아 언덕의 헬레만 타워에 국기를 게양했던 것처럼 독립기념일 일출 시간에 맞춰 국기를 게양하는 게양식을 진행한다. 에스토니아의 대통령 및 내각 의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톰페아 언덕에 모여 국가에 맞춰 올라가는 국기를 바라본다. 그날은 마침 탈린 시내가 안개에 잔뜩 싸여있었고 계속 내리던 눈에 길은 빙판길이어서 톰페아 언덕에 올라가는 길이 마치 살얼음판과 같았다. 게양식에는 많은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예전 타르투 대학교의 학생들이 썼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독립기념일 당일 일출 시간에 맞춰 행해진 게양식.
게양식에 참석한 시민들. 자유광장에 놓인 헌화들. 헌화를 하러 온 대통령과 만나는 시민들.


그 이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시내에서는 하루 종일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다. 이번 독립기념일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매년 자유광장에서 행해지는 퍼레이드나 콘서트 등의 큰 행사들은 취소되었지만, 에스토니아 공군의 제트기 쇼, 에스토니아 국기로 장식된 올드타운과 공원의 조형물, 에스토니아 주요 시내에서 파란색으로 라이트업을 하는 등 여러 볼거리가 있었다.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게양식에서 독립기념일 특별연설은 물론 자유광장에 헌화를 하러 와 모인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대통령 및 내각 의원들은 에스토니아 독립운동과 전쟁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곳을 찾아가 헌화를 한다. 나도 자유광장을 거닐다 먼발치에서 에스토니아 대통령을 보았다. 


탈린 시내의 파란색 라이트업. 독립기념일 당일은 에스토니아를 상징하는 대표 색깔로 시내를 밝힌다.


아침부터 밤까지 탈린 시내를 돌아다니던 나의 허기를 채워준 것은 '청어 샌드위치'였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독립기념일에 에스토니아의 전통 음식을 먹는데, 그중 하나가 청어 샌드위치이다. 발트해에서 잡히는 겨울 청어는 매우 유명한데, 절인 청어와 삶은 계란을 에스토니아 전통 호밀빵 위에 얹어 먹는다. 영양가는 있지만 전통 호밀빵의 시큼한 맛과 절인 청어의 비리면서 짭조름한 맛이 독특한 풍미를 느끼게 한다.

탈린 시내 한 카페에서 맛본 청어 샌드위치. 처음 맛보는 맛이었다. 앤초비와 비슷한 맛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인들과 함께 독립기념일을 보내고 나니 조금은 에스토니아인의 정서와 가까워짐을 느꼈다. 동시에 우리는 평소 '광복절'을 어떻게 보냈던가 생각하게 해 주었다. 국기는 계양했던가, 광복절 행사는 한 번이라도 봤던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냈던가.

독립기념일 당일은 하루 종일 탈린 시내가 에스토니아 국기로 가득하다.


'독립기념일'을 축제처럼 보내고 있는 에스토니아인들이 부러웠다. 힘들었던 역사라고 얼굴 붉히고 외면하거나 과거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지나쳐 버리는 것이 아닌 힘든 시기를 함께 극복했음을 축하하는 그들. 함께 노래 부르고 국기를 올려다 보고 전통음식을 먹으며 보내는 에스토니아인들이 강인하고 행복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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