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의 2021년 새해 카운트다운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에스토니아를 추억하기 좋은 날씨이다. 그리고 추워진 날씨는 늘 우리에게 올 한 해도 끝나가고 있다고 상기시켜준다. 어느새 10월이 지나고 있다.
나는 에스토니아에서 2020년을 마무리했다. 에스토니아에 도착했다는 설렘도 잠시, 보름이 지나자 2020년의 마지막 날이 코 앞에 다가왔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아침을 먹고 스케이트를 타고 올드타운을 거닐었다. 2020년 마지막 예배에 참석하러 교회에 들르고 오늘은 조금 특별한 하루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올드타운을 한 바퀴 도는 미니 관광열차를 탔다.
평소와 다른 조짐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밤 11시 즈음 울리는 폭죽 소리였다.
아무런 새해 전야 행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뉴스를 봤기에 기대하지 못했던 소리였다. 에스토니아에서도 크리스마스 전후로 코로나 환자가 증가 추세였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던 때였다.
동네 아이들이나 몇몇 이서 심심한 마음에 하는 거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신반의하며 밖으로 나가보았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혹시나 새해 전야 불꽃놀이를 한다면 가장 잘 보일 탈린 올드타운의 높은 곳, 톰페아 언덕으로 올라갔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박제하고 싶은 순간들을 맞이한다. 이 순간이, 이 여행이, 이 일상이 끝이 오는 것을 알기에 박제해서라도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순간. 나는 이 날 에스토니아에서의 새해 전야 카운트다운이 그러했던 순간이라 생각한다.
톰페아 언덕에 올라가자 이미 전망대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지?' 싶을 만큼 모여있는 사람들의 수에 압도되었다. 최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 때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10명까지 함께 모이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올해 초만 하더라도 아직 백신도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적어 겨울이면 감기와 증상이 비슷한 코로나 환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 당시, 에스토니아에도 갓 몇 천 도즈의 백신이 보급된 상황이었다.
인파에 압도되어 있던 것도 잠시,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향하는 순간, 전망대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입을 모아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로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은 순간이다. 아직도 생각할 때마다 어안이 벙벙하고 꿈같았던 순간이라 기억한다. 이제 코로나 판데믹은 끝날 것 같지 않았고,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외에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고, 밖에서 편하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에도 제약이 있었던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잠깐 허락된 특별한 하루.
"10, 9, 8, 7, ... 3, 2, 1! Happy New Year!"
마스크 밖으로 튀어나오는 환호성과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만세를 외치고 껴안는 사람들. 그 환호성과 함께 터지는 폭죽들. 요란하고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톰페아 언덕 전망대에서 안개에 휩싸인 올드타운 위로 터지는 폭죽들을 넋 놓고 구경하다 내려와 한참 동안 올드타운을 거닐었다. 새해가 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올드타운 곳곳에 모여 산책을 하고 술과 커피를 마시며 떠들었다. 흥이 넘치는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췄다. 사람들의 눈에는 불안보다 즐거움이 가득했다.
국경을 뛰어넘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토닥토닥 껴안아줄 수 있는 순간, 서로에게 좋은 말들을 건네줄 수 있는 순간.
그런 순간들의 따스함이 그날 밤 탈린 올드타운 내에 함께 모여 있었기에 2021년의 새해 전야와 첫날밤을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었다.
2021년 12월 31일은 어떤 모습일까? 2021년의 마무리까지 이제 10주 남짓 남아있는 지금, 2021년의 마지막 날을 상상해본다. 다 함께 모여 카운트다운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변해버린 일상이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며 "올 한 해도 수고했어. 잘 헤쳐나가고 있어. 해피 뉴 이어!" 이렇게 따스한 말을 건네며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순간들이 가득하길. 그 순간들을 다 함께 나눌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