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는 어떤 성향인가? : 감각형/직관형
이곳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감각형은 실제로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기존에 알려진 지식과 경험의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한다. 이 틀 안에 들어맞지 않는 생소한 정보나 사건을 접했을 때 감각형은 그것을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허황된 것’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하는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런 게 어딨어?” 같은 말들은 ‘헛소리 하지 마라’ ‘그런 건 없다’라는 거부의 뜻을 담은 말이다. “나는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는 “니가 잘못 알고 말하는 거겠지”를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감각형에게는 ‘처음 듣는 얘기’란 일단 ‘틀린 얘기’로 간주되고, 아직까지 듣지 못했고 보지 못한 것은 ‘없는 것’이다.
기존 지식의 틀을 벗어나는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감각형이 쉽게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 사회적 지위나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예를 들면 교수, 의사, 잘 알려진 기관이나 조직의 누구)이 한 말일 때, 또는 책이나 신문, 방송에 나온 얘기일 때 그렇다. 이런 경우는 처음 듣는 얘기더라도 ‘그동안 몰랐던 걸 알게 됐다’ ‘새로운 걸 배웠다’라고 받아들인다. 나는 전체를 경험해보지는 못했으니까, 나는 거기까지 배우지는 못했으니까, 내 경험의 한계, 내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지위에 있는 사람들 또는 널리 알려진 매체의 권위를 통해 받아들인다.
세상 모든 것을 기존에 알려진 지식(사회의 경험)과 경험(내 경험)을 통해 받아들이는 감각형은 새로운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그 정보 자체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 정보의 출처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곳인가 아닌가에 따라 그 정보는 ‘몰랐던 걸 새로 알게 된’ 것이 될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감각형은 대체로 기존에 잘 알려진 권위를 존중하고, 기존의 조직과 체계 안에서 개인을 이해한다. 개인이 모든 걸 경험할 수 없고 모든 지식과 기술을 쌓을 수는 없으니까 개인들은 전체 중 어느 한 부분을 차지하고 각자 자기 분야, 자기 위치에서 그만큼을 이해하고 처리하며 살아나가면 된다. 그래서 감각형은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세분화되고 안정된 조직에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하고 빛을 발한다.
반면에 직관형은 이렇게 세분화되고 안정된 조직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을 때는 일을 잘 해내기가 어렵다. 세분화된 조직의 어느 한 부품, 그중에서도 말단의 위치에 있는 신입사원에게 요구되는 일은 전체를 조망하고 오리지널을 창출하는 일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업무일 것이고, 그조차도 자기의 고유 업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일 것이다. 부분으로 쪼개진 부분을 또 쪼갠, 부분 중에서도 가장 끄트머리 조각들을 이것 저것 눈치 빠르게 만졌다 놓고 만졌다 놓고 해야만 한다. 그야말로 베이직과 디테일이 전부다.
그러니 디테일에 약한 직관형은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지적과 ‘정신 안 차린다’는 억울한 소리를 매일 듣게 될 것이고, ‘이 직업이 내 적성에 안 맞나? 이 직장이 나랑 잘 안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세분화된 조직이라면 어느 직업, 어느 직장을 간다 해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그 어려움은 직관형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관형은 모든 게 단단히 자리가 잡혀서 안정되게 굴러가는 조직보다는 좀 자리가 덜 잡혀서 뭔가 시도해 볼 수 있고 가능성을 펼쳐볼 여지가 있는 곳에서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직관형 인재를 선호하는 곳도 역시 이런 조직이다. 인력과 자원이 충분치 않고 체계가 아직 덜 잡힌 조직에서는 위계와 질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
다만 성과를 낸 뒤에 직관형 인재가 그 결과물을 자기의 몫으로 챙길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직관형은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더 큰 가능성을 실현시켜보고 싶기 때문에 성취의 결과물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의 더 큰 성공을 위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기도 하고, 꿈에 투자하느라 당장 오늘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인 문제로 부부 사이에 다툼이 일어날 때, 돈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감각형과 직관형 사이의 문제인 경우도 많다. 부부가 둘 다 똑같이 감각형이라면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그걸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에 서로 협력해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수가 있다. 만약 둘 다 직관형이라면 같은 비전을 바라보면서, 또는 함께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서로 지지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견딜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직관형이고 한 사람은 감각형인 부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 감각형은 ‘현실을 직시하라’ ‘언제 철이 드냐’ 하면서 직관형을 비난하고, 직관형은 자기가 직관을 통해 얻은 현실 인식과 미래 전망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감각형인 배우자와 말이 안 통한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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