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롤로그 2]
어디로 가다가 이런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거야?
MBTI가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는 융 심리학의 기본 전제가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사람을 고쳐야 될 대상으로 바라보는 다른 많은 심리학들과 달리 융 심리학은 인간을 ‘스스로 성숙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본다. 인간을 지나치게 병리적인 측면과 결함의 측면에서만 설명하려고 들면서 ‘현재는 과거의 원인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다’고 하는 프로이트의 인과론적 결정론에 융은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고 결국 이 문제로 프로이트와 결별했다고 한다.
융은 고통받는 인간에 대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망가졌는가’ ‘어떻게 고칠 것인가, 즉 어떻게 해서 고통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놓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고통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를 살펴보기는 하지만 단순히 고통 이전으로 돌려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어디로 향해 가다가 이런 고통을 만난 것인가’를 알고자 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처럼 기본 전제에서부터 인간을 ‘고쳐야 될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MBTI에는 어디까지가 정상 범주냐, 어디서부터는 비정상이냐 이런 게 없다. 어떤 유형이 좋고 어떤 유형은 나쁘다고 하지도 않고 심지어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하는 것도 없다. 다만 무엇이든 극단으로 치우치면 뒤집어진다는 것만 강조한다.
융의 심리유형론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대극’ 이론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은 같은 선상에 있으며, 따라서 어느 한쪽의 극단에 이르면 그것이 곧 반대편의 극단이라는 것이다.
MBTI는 이렇게 대극을 이루는 네 가지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에너지의 방향이 어느 쪽이냐’ 에 따라
외향 E ――――――――― 내향 I
‘무엇으로 세상을 인식하느냐’ 에 따라
감각 S ――――――――― 직관 N
‘무엇으로 판단하느냐’ 에 따라
사고 T ――――――――― 감정 F
‘목표 중심이냐 과정 중심이냐’ 에 따라
판단 J ――――――――― 인식 P
서로 대극을 이루는 이 네 가지 지표마다 둘 중 어느 쪽이냐를 가려서, 예를 들어 ‘내향(I)-감각(S)-감정(F)-판단(J)’ 이런 식으로 나열한 것이 MBTI 16개 유형이다. 이 16개 유형의 특징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서도 설명을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 여기서 16개 유형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는 MBTI의 뼈대가 되는 네 가지 지표를 알아보고, 그다음으로는 자기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컨트롤하려고 하는가, 즉 통제유형에 따른 갈등을 살펴보고, 그다음으로는 각 기질별로 긍/부정적 측면과 왜곡요인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는 무의식의 작용과 내 안의 그림자가 어떻게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 나는 어떤 성향인가? : MBTI 네 가지 지표
• 주변과의 관계 : 통제유형에 따른 갈등
• 사람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지뢰가 있다 : 기질별 왜곡요인
• 내 안의 또 다른 나 : 무의식과 그림자
유형이 아니라 방향, 그리고 성숙
자기가 어떤 유형인지를 아는 것은 처음엔 흥미로울지 몰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인생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어떤 유형이라고 해서 밀봉된 유리병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유형이라고 해도 완전히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유형도, 어떤 성향도 모두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게 마련이고,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중 어느 쪽을 발전시켜나가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를 결정하는 것이지 어떤 유형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다.
같은 성향이라도 성숙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있고, 평생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수준에 고착돼 있는 사람도 있다. 성숙의 수준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 누가 어떤 유형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나가느냐, 얼마만큼 성숙하냐가 중요한 문제다. MBTI 유형이 아니라 그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첫 번째로, 나는 어떤 성향인가? : MBTI 네 가지 지표에 따른 성향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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