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
길을 가다가 누군가 친구를 부르는데 전 연인의 이름과 같을 때라던지, 들뜬 마음으로 신간 소설을 펼쳤는데 주인공 이름이 전 연인의 이름과 같을 때라던지. 대학교 3학년 때 기말 시험 문제에 바로 전날 헤어진 남자친구의 이름이 나와서 문제를 읽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10분간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시험은 C+을 받았다.
또 하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인의 이름과 나에게 지독한 상처를 주고 떠난 남자친구의 이름이 같아서 그 시인의 시를 볼 때마다 한동안 마음이 아팠던 기억도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그저 하나의 글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 나의 전부가 되어 버린다.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비단 이름만이 아니다. 나에겐 이름만큼 특별한 지명이 하나 있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 만났던 남자친구는 충북에 살았다. 제대로 된 첫 연애를 장거리 연애로 시작하다니, 운이 지지리도 없었지만 여행 가는 셈 치자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난 거의 매주 일요일 아침, 고속터미널에 가서 표를 끊고 서울로부터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충북의 작은 도시, 제천으로 갔다. 아침 10시에 도착하면 8시간 정도 짧게 데이트를 하고, 저녁에 서울로 돌아왔다. 왕복 4시간에 데이트 8시간. 굉장히 비효율적이었지만 그 당시엔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내 남자친구를 이름 대신 '제천'이라 불렀다. 그래서 어쩌면 제천은 나에게 남자친구의 이름과 맞먹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엔 제천이란 도시는 내게 낯설고 생소한 곳이었다. 심지어 제천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렇지만 그 사람을 만나고 난 뒤 나는 제천 관광 안내사 수준이 되었다. 특히 데이트 코스에 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벚꽃으로 둘러싸인 충주호를 보고 싶어서 40분에 한 번씩 오는 시내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버스 드라이브를 했다. 벚꽃 시즌 땐 차가 막히곤 했지만 상관없었다. 버스가 천천히 가면 그만큼 창밖으로 벚꽃 구경을 더 할 수 있었으니까. 제천의 작은 시내에는 놀거리가 많이 없다. 볼만한 영화도 마땅치 않을 땐 의림지라는 저수지에 놀러 갔다. 저수지를 둘러싼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걷고, 작은 놀이공원까지 구경하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해졌다. 함께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터미널 앞에 파는 제천의 별미, 빨간 어묵을 사 먹으며 유난히 빨리 가는 시간의 끝자락을 붙잡곤 했다.
나는 투명하게 반짝이던 나의 스무 살을 제천에 고스란히 새겨두었다.
일 년 반 정도 연애를 하는 동안 서울에서 제천이라는 글자가 적힌 고속버스만 보면 괜스레 반가웠고, 차를 타고 가다가 제천이 적힌 표지판이 나오면 아는 체가 하고 싶었다. 그 시절, 제천은 나에게 남자친구 그 자체였다.
풋풋했던 이 연애는 결국 장거리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끝이 났다. 우린 너무 어리고 여렸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은 '제천'이란 글자만 보면 가슴이 아릿했다. 그 글자가 마치 그 사람인 양. 친구들도 내 앞에선 제천이란 말을 쉬쉬했다. 사실 그렇게 자주 접할 기회가 있는 지명도 아니었지만 잊을만하면 꼭 한 번씩 튀어나와 내 마음을 덜컥 흔들어 놓곤 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그저 아련해진 추억이다. 이젠 더 이상 제천이란 그 이름이 아프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천'은 그를 만나기 전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미 그 단어 속에 스무 살의 추억이 각인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단지 글자일 뿐인데, 그저 흰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쓰인 문자에 불과한데.
아무 의미도 아니었다가, 나의 전부가 되었다가,
이젠 너무나도 잘 알지만 아는 체도 할 수 없는 글자.
너를 알기 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글자.
너의 이름
너를 알기 전에는
티끌처럼 스쳐 지나가던 것
네가 나에게 오자
팽창하여 새로운 우주가 된 것
너는 이제 없지만
영영 사라지지 못하는 것
무와 유의 경계 그 어디쯤에
오도카니 남아 나를 바라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