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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Sep 20. 2019

셋이 합쳐 200살-고령가족 여행기(10/10)

#10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순례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해 나의 답변을 정리해 보았다. 길 위에 있었던 것은 20여 일이지만, 그 길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 트레킹을 3개월에 걸쳐 다녔다. 돌아와서 다시 글로 써보니 그 길을 다시 걷고 있는 것처럼 새롭다. 여행을 하나의 장기 프로젝트로 만들었고, 삶에는 큰 활력이 생겼다. 


{얼마나 걸을 것인가에 대하여}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보는 시도는 종종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위해서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잘 알아야 한다. 산티아고 프랑스길의 경우는 보통 하루 20-30km을 걸어 34일에 안에 완주하는 것을 표준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안일 뿐이다. 보통 하루 15킬로 이상 걸으면 무릎에 무리가 온다고 하니, 본인의 상태를 잘 확인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정을 짜는 것이 좋다. 우리는 순례길 이후에도 잘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생장 순례 사무국에서 받은 프랑스길 루트 일정표 2019

{신발과 양말에 대하여} 순례길을 위해 등산화를 새로 샀다면 길을 잘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3개월 정도 주중이나 주말에 산행을 하며 신발과 익숙해 지기 위해 노력했다. 가기 전 20킬로 이상의 산행을 이틀 연속 한 뒤 양말 때문에 발가락이 까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인의 발이 어떠한 상태인지, 어린 시절 곤충을 관찰하듯 자세히 관찰해 보자. 사람마다 모두 생긴 꼴이 다르다. 발가락끼리의 밀집도가 매우 높은 어머니는 등산 양말과 발가락 양말을 같이 신으셨다. 아버지는 발가락 양말만 신으셨는데, 훨씬 편하다고 하셨다. 재래시장에서 산 1켤레 1천 원짜리 발가락 양말이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배낭에 대하여} 배낭중요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해지는 것은 그만큼 쓸데없는 짐을 많이 가져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38리터의 오스프리를 구입해서 가져갔는데, 수납이 용이해서 좋았다. 그 가방을 2/3 정도 채운다. 그 정도 짐만으로도 생활이 충분하고, 걷는 데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출장과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콤팩트 한 짐을 싸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런 나도 군더더기가 많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스페인은 한국보다 물가가 싸다. 다시 간다면 많은 것을 현지에서 조달할 것이다. 


{순례길 예산에 대하여} 먼저 해야 할 것은 예산을 짜보는 일이다. 1일 사용 비용은 크게 숙박 알베르게 10-12유로, 아침식사 3-5유로, 점심 샌드위치/저녁 순례자 정식 코스 합쳐 15-20유로 정도를 기준으로 잡아 볼 수 있다. 하루 28-37유로 정도를 쓰게 되는 셈인데, 식사를 모두 사 먹지 않고 재료를 사서 직접 준비하면 확실히 많은 돈을 절감할 수 있다. 추가적인 비용은 세탁/건조는 4-8유로, 동키(배낭 배달 서비스) 8유로 등이 있다. 일정을 줄이고 버스/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거리에 따라 버스 비용이 달라지니 Rome 2 Rio나 구글맵을 참고해보자. 


{현금을 얼마나 가지고 다닐 것인가에 대하여} 큰 도시에서는 ATM기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의 예산에 따라 현금을 찾아 쓰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나는 필요한 현금을 모두 한 번에 찾아서 지갑에 넣고 다녔다. 이마트에서 구매한 여행용 지갑으로 허리에 찰 수 있었는데, 샤워할 때도 비닐에 넣어서 들고 들어갔다. 큰 알베르게에는 좀도둑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서, 긴장했다. 부킹닷컴에서 예약이 가능한 알베르게는 신용카드 예약을 받고, 예약을 하면 1-2유로가 추가된다. 그날 써야 하는 돈만 바로 뺄 수 있게 해서 주머니 속에 따로 넣어 다녔다. 


{인터넷 데이터 사용에 대하여} 데이터를 따로 신청하지 않았다. 주요 카페와 알베르게가 와이파이를 잘 갖추고 있었고, 길 찾기는 데이터 사용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와이파이가 있는 상황에서 미리 계획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한데, 어디로 갈 것인지를 구글맵에 미리 표시해 두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길 안내판이 너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맵이 필요하지도 않다.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 카톡이 아니라 전화가 올 것이고, 이왕 시간을 냈다면 오프라인 세계에서 걷는 것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자는 일에 대하여} 나는 매우 조용한 상태에서 잠을 자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코골이들이 있는 알베르게가 참기 힘들었다. 잠이 모자라면 우울, 예민,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면 며칠에 한 번씩은 1인실이나 펜션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펜션은 40-50유로 정도인데, 마음 맞는 사람 2-3명이 같이 쓰기 충분할 것이다. 맥주/와인/생 오렌지 주스를 주로 마셨다. 하루를 정리하며 마시는 맥주 한잔은 꿀! 나는 대부분 재료를 사서 식사를 해결했지만 가끔 외식을 하기도 했다. 알베르게 근처에는 10-12 유로의 순례자 메뉴를 파는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어딜 가도 그 구성이 매우 비슷하다. 순례자 메뉴에도 질렸다면 타파스 바에서 이런저런 타파스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대하여} 막상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들어가니, 번잡스럽고 물가도 비싸게 느껴졌다. 여전히 대성당은 내부 공사 중일 것이고 그 안에서 미사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숙박도 비싸지기 때문에 오전에 도착했다면, 묵시아까지 들어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클럽이나 밤 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콤포스텔라에 남아 있어야 한다. 콤포스텔라의 거리는 새벽 4시에도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옛날 사람인 나는 묵시아로 들어가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묵시아와 피스테라 모두에서 '순례길 0킬로 미터'라고 쓰인 비석을 만날 수 있다. 묵시아는 작은 바닷가 마을, 피스테라는 제법 큰 휴양지 느낌이었다. 


{마음가짐에 대하여} 산티아고 순례길은 수백 년 동안 많은 순례객들이 이미 다녀간 길이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딱히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종점을 향해 걷지만, 그것이 목적이 될 필요는 없다. 순례길을 걷는 것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줘야 할 필요도 없다. 걷고 먹고 자는 이 단순한 하루의 리듬 속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자. 강 약 중강 약, 내 몸의 리듬에 맞춰서 잘 걷고 잘 쉬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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