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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22. 2021

셋이 합쳐 200살-고령가족 여행기(9/10)

#9. 삶이라는 기적을 만나다.  

묵시아에 살고 싶다. 2019


묵시아 가는 버스는 하루에 4번 있다. 표도 예약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가서 기다렸는데, 타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아버지는 초조해하셨다. 다행히 버스는 사람 수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어서 기다리는 사람 중에 못 가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반 만에 묵시아에 도착했다. 묵시아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로 바다의 별 이라고 불리는 성모 발현지로도 유명하다. 숙박 주인장에게 물어 적당한 가격의 맛있는 식당을 추천받았고, 다행히도 한 끼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북적북적한 꼼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섰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묵시아에 와서 아무도 없는 큰 바위에 올라서 한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데 울컥하며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쉬움, 두려움, 경이로움, 뭐 이런 것들이 이름도 없이 마구 섞여서 지금 여기 오늘 살아 있음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는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DAY 17 6월 12일 10:00 묵시아Muxia - 피스테라Fisterra (27km/버스)


묵시아에서 버스를 타고 피스테라로 간다. 40분 정도면 다다르는 씨Cee 에서 모두 함께 내려 피스테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게 된다. 피스테라는 휴향 도시로 관광객 반 갈매기 반이었다. 항구 근처에 식당과 숙박시설, 알베르게가 즐비하다.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서, 산티아고 순례길 0km 비석이 세워진 곳으로 갔다. 사람들이 바위에 걸터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길래 나도 따라 해 보았다. 

뒷모습이 더 낫다고 한다. 피스테라 2019


DAY 18 6월 13일 피스테라Fisterra -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 


산티아고로 돌아왔다. 우체국에서 맡겨두었던 짐을 찾았고, 내일 새벽에 마드리드로 떠난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큰 향로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순례자 미사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상당히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말한다. 지나칠 정도로 상업화되어 있는 데다가 길도 다른 유명 트레킹 코스들에 비해서 딱히 특색이 없고, 많은 길이 도시를 지나게 되어 있어 흙길보다는 시멘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우리는 애써 좋은 길을 찾아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매일매일 좋은 길을 만났다. 운이 좋았다. 


오리손 산장에서 만났던 독일 아저씨는 2006년에 도장 1개를 받은 크리덴셜(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며, 다시 이 길에 서는데 13년이 걸렸다고 했다. 순례길을 시작하자마자 집에 일이 생겨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청년이었던 아저씨는 중년이 되어 이 길에 다시 섰다. 그때 함께 였던 친구와 이번에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기적이라고 했다. 


우리의 이 여행은 아버지의 버킷 리스트에서 시작되었고, 나에게는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살아온 시간은 다르지만 우리의 삶이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여행을 준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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