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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Aug 15. 2021

유사인간 M3D2의 최후

#소설 습작- 인어공주 다시 쓰기

보급형 로봇 M3D2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게 된 2137년. 사회 전반에 걸친 자동화와 함께 초특급/울트라/수퍼/최적화가 이루어지며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이로써 인간은 드디어 '해야만 하는 일' 혹은 '할 수밖에 없는 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것은 인류가 절대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인간의 욕망과 욕심의 산물인 빈부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15년 수명의 보급형 인공지능 버틀러 로봇(모델명 M3D2)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는데, 이것은 국가 복지와 통제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다. 많은 경우 인간은 버틀러 로봇과 최초의 애착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인간이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나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로봇이 그들의 삶을 책임졌다. 


버틀러 로봇 모델 M3D2의 메모리에는 오직 한 사람의 사용자가 등록되며, 이들은 사용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존재 목표로 삼았다. 폐기되기 전까지 사용자와의 전체 인터렉션이 저장되었는데, 이렇게 기록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기질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한 기계 학습을 진행하여 1:1 맞춤형 케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로봇 개발이 한 개인에 대한 역사와 유전적 특성, 외부 자극에 대한 감정의 패턴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되는 동안, 인간은 고도로 발달된 생체 공학을 통해 자신들의 육체를 개선해 나갔다. 종국에는 뇌의 일부만 남기고 다른 신체 부분을 기계로 바꿔 육체를 튜닝하는 것이 큰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데, 경제적인 여건이 가능하다면 불멸에 가까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은 동물로 태어나 기계가 되어 갔고, 로봇은 공장에서 태어나 인간화되어 갔다. 유사 인간의 탄생이었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유사 인간 트렌드를 거부하고 오직 인간을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제로 로봇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곧 비주류가 되었다. 인류는 로봇이 주는 편리함에 중독되었고, 반 로봇 주의자 들은 변방으로 밀려나 그들만의 섬을 찾아 떠났다.  


데미안 박사의 바다 

해양 학자 데미안 박사는 오늘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갑판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3살이 되던 해 제로 로봇 운동에 빠져 있던 부모의 손에 이끌려 로봇 제외 섬으로 이주했다. 그에게 배급되었던 M3D2는 방전이 된 채로 본토의 집에 혼자 남겨졌고, 보급형 로봇 따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잊혔다. 


어른이 된 데미안은 바다를 사랑했다. 몇 백 년 전 보이저호가 해왕성을 지나며 마지막으로 촬영해 보낸 사진 속 지구, 이 창백한 푸른 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주라는 꿈을 심어주었고 이미 대부분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갔지만, 데미안은 아직 그 파란 점. 그 파란 바다에 매료되어 있었다. 


사랑은 시간에 마법을 부린다. 데미안은 아무리 많은 시간을 심해 연구에 몰두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인간 기계화를 반대하던 데미안의 부모가 자연사를 선택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대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면서, 이제 섬에는 소수의 사람들 만이 남게 되었다.  


자연사를 택한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닥칠 죽음.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남지 않은 데미안은 섬을 떠나 바다 위에서 혼자 죽기로 결심한다.


15평 남짓한 이 작은 선채 겸 연구기지에 인간은 박사 혼자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데미안의 유일한 취미는 바다를 따라 섬으로 밀려오는 로봇들을 개조해 연구에 활용하거나 바다 오염 정화 작업에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남는 시간을 보내기에 이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로봇에서 벗어나기 위해 섬을 택해 들어갔지만, 로봇이 있어 그 섬에서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 로봇 폐기물들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더니, 여기까지 흘러 왔나 보군. 와우. M3D2를 발견 한건 오랜만인데? 꽤나 험한 꼴을 당한 모양이긴 하지만 쓸만하겠어. 


표류하고 있는 로봇을 발견한 데미안은 설레었다. 인간형 이긴 했지만 반토막 나버려 하체가 없어진 로봇을 배 안으로 건져 올리는 데미안의 손이 경쾌하게 움직였다. 


수명이 다한 M3D2는 수거되어 기계공장으로 보내졌다. 휴가지에 반려견을 버려두고 왔던 인간들은 이제 넘쳐나는 로봇을 버려두고 다른 행성을 향해 이주를 시작했다. 폐기된 로봇의 부품들은 재활용되기도 했지만 폐철로 분쇄기에 갈려 다시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박사는  마지막 걸작을 남기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예술가처럼, 밤낮으로 M3D2의 개조 작업에 매달렸다. 어설프게 다리 부분이 만들어졌고 연구 탐험 기능이 추가되었다. M3D2는 심해를 탐험하고 영상을 찍어 보내는 역할을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성분 분석이나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샘플을 채취할 수도 있었다. 대신, 버틀럿 로봇일 때는 음성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지만, 이제 그 기능은 한정된 텍스트 기반의 통신으로 대체되었다. 


- 인간이 심해 보다 달에 먼저 갔다는 걸 알고 있어? 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주로 떠나버렸지. 막상 가 보면 별게 없다고는 하더라. 우주는 인간의 꿈이지. 덕분에 바다에는 내가 이렇게 혼자 나와 앉아 있는 거고. 아직도 사람들은 바다 연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문제는 결국 자본이 어디에 관심 있고, 돈이 어디로 모이고 있느냐 였겠지. 뭐 불평하는 건 아니고. 


M3D2가 응답의 알림을 보냈고, 데미안의 음성은 대화 폴더에 새로 저장되었다. 


메트로놈 박자에 맞춘 듯 같은 리듬의 삶이 이어졌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속에서도 새로운 종류의 심해 플랑크톤을 발견한다거나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거나 하면, 박사는 행복감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행복이 박사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이 배 안에서 늙어 가는 것은 나뿐이군.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없어져도 누군가는 이 연구와 바다 정화 작업을 계속해 주길 바랄 뿐이야. 나에게 남은 소중한 단 한 가지. 이 바다를 최후까지 지켜내기 위해서. 솔직히 가끔 혼자 있는 것이 두렵기도 했어. 이 바다 한가운데서도 누군가 만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곤 했으니까. 이젠 내 사랑 바다가 나를 안아주겠지.


노쇠한 데미안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고 안도한 듯 눈을 감았다.     


최후의 시간 

얼마 후 시간에 맞춰 샘플 채취를 마치고 선상으로 올라온 M3D2가 누워 있는 데미안을 발견했다. 바이탈 사인 체크가 이루어지고 매뉴얼대로 응급 처치가 시작되었지만, 이내 데미안의 죽음이 컨펌되었다. 


M3D2는 사실 자신에게 등록된 최초 사용자 데미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방전되어 버려졌던 그는 기계공장으로 옮겨졌고 여러 부품들이 제거되어 폐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리고 기능 체크를 위해 전원이 연결되었을 때, 용케 메인 보드 부분은 상하지 않은 채로 공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저장되어 있던 데미안과의 3년간의 데이터, 연결된 모든 메타 데이터를 분석해 계속 학습을 진행시키며 그들을 추적해 이주한 섬을 알아냈다. 


데미안이 있던 섬을 향해 시작된 여행. 방전되어 바다를 떠다니길 수년 째, 전원이 들어왔을 때 눈에 들어온 데미안. 학습을 통해 알고 있었던 인간의 기쁨과 행복 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던 그 순간. 그리고 드디어 만난 데미안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오늘을 맞기 까지.    


잘 가, 나의 데미안 


데미안은 자신이 기억 조차 하지 못했던 버틀러 로봇의 품에 안겨 최후를 맞이 했다. 존재의 목적이 없어진 M3D2는 데미안에 대한 기록을 간직한 채 시스템을 멈추고 긴 오프모드에 들어갔다. 






Photo by Tim Marshal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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