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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Sep 21. 2019

조카와 함께 춤을

춤을 추자.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어떤 조직이나 모임이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내 행동들의 결과물이기도 했지만, 더러는 별 이유도 없는 미움이었다.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내 손을 떠난 일이고 오직 상대방이 결정할 일이라지만, 최초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괴로웠던 것 같다. 그들이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될까. 저렇게 하면 될까. 부질없는 고민들을 참 많이도 했다. 


유치원에서 조카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조카의 말에 따르면, 그 괴롭힘의 종류란 너에게 똥냄새가 난다고 한다던가, 장난감을 빼앗아 간다던가, 밀친다던가 하는 것이다. 조카는 꿈에서도 그 아이를 본다고 했다. 꿈에서 그 아이는 메롱 메롱 하며 조카를 놀리고 있었다.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너도 냄새난다고 해. 네가 더 크게 메롱메롱 해."라며 복수혈전식 해결안을 제안해 보았으나 조카는 "싫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조카는 정색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 작은 사람들도 자신만의 우주를 가진 하나의 인격체이다. 내 우주 안에서의 메롱 메롱과 그들 세계에서 그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다를 것이다. 나는 좀 더 신중하게 대답하거나 대답을 유보했어야 했다. 나이를 무기로 함부로 조언해서는 안된다. 


5살 조카에게 벌써 이런 고민들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맞닥뜨리는 이슈들은 평생 짊어지고 갈 고민이기도 하고, 또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 힘든 경우들도 많다. 제 엄마가 이미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또 선생님과 상담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여기서 나의 역할은 어쩌면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조카를 붙잡고 춤을 췄다. 적어도 나에게는 잘 먹히는 방법이다. 격렬한 운동만큼 좋은 스트레스 해결 방법은 없다. 식구들이 평화롭게 일일 연속극을 보고 있는 와중에, 나는 거실 한쪽 구석에서 조카와 살풀이 춤을 춘다. 


유나야, 이모를 보렴. 누가 너를 힘들게 하면, 이렇게 춤을 추면 되는 거야. 


한 손에 든 핸드폰에서 빌리 아일리쉬 Billie Eilish의 Bad Guy가 조용히 흘러나오는 가운데, 우리는 막춤을 시작한다. 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발을 움직일 수 없으므로, 상체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 번잡스러운 침묵 속에서 한참 동안 춤을 추다 보면, 머리가 상쾌해진다. 


어제 동생과 함께 있는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조카가 뜬금없이 일어나 유치원 선생님 앞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고 한다.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요. 선생님이 물었다. 


조카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춤을 췄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으로 기분이 좋아졌다면 다행이다. 누군가가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음악 없이) 춤을 추는 행위는 내가 그 구역의 미친 자임을 증명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며, 상당히 웃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다. Dance! As if no one is watching. 좋았어. 우리 집안에 이런 사람 하나 나올 때 됐어.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조카가 이뤄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고, 온갖 개소리의 집단 독백 속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신이시여. 다음 생애에서는 제가 꼭 댄스 가수로 태어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멘. 




Photo by Angelos Michalopoulos on Unsplash

Photo by Marion Miche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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