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
대학 졸업 후 2019년 여름까지 그럭저럭 18년을 회사적 인간으로 살았다. 내 출퇴근의 수레바퀴는 멈춘 적이 없고, 나는 조직 생활에 꽤 적응을 잘해서 수월하게 승진도 하고 이직도 했다. 그렇게 회사 안에서 일희일비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보니 젠장, 어느새 40이 넘어 버렸다.
그 사이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다. 여동생도 조카를 낳았다. 나는 미혼이고 아이도 없다. 덕분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딱히 대단한 것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오랜 기간 일을 하면서 쌓아온 스킬로 회사적 인간으로서의 레벨업은 가능했지만, 다른 삶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서툴고 어리석은 부분이 많아서다.
나는 최근에 백수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2개월 동안 10명이 넘는 임직원들과 면접을 보며 어렵게 뽑힌 자리였는데, 일에 대한 확신이 없이 6개월을 내적 갈등 속에 보내고, 8개월 만에 퇴사했다. 어쨌거나 회사는 그 조직 안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잘 한 결정이었지만, 환율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배가 아팠다. 모든 결정엔 대가가 따른다. 트레이드오프 trade-off다
20대들도 퇴사가 고민인 것 같다. 대형 서점의 한 코너를 맡고 있을 정도다. 나도 20대의 첫 퇴사를 기억한다. 헛헛함과 아쉬움, 절망, 두려움, 기대, 희망 같은 것들이 시원섭섭함이라는 감정의 짬짜면으로 퉁 쳐졌다. 그리고 나는 커리어의 사다리를 따라 세 번 더 이직했다.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받기 위해서. 20대의 퇴사는 통과 의례로 보이기도 하고, 성장통으로 보이기도 한다. 쉽고 어렵고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어차피 우리는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얘기다. 밥벌이는 중요하다.
40대가 넘기 시작하면 원하지 않아도 퇴사를 강요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법정 정년 나이는 60세이고 앞으로 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심리적/실질적 퇴직 나이는 더 어려지고 있는 듯하다. 퇴사 후에는 인생이 궤도를 벗어난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회사생활이 길 수록 두려움은 더 커진다.
나는 40에 이 업계를 은퇴를 하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100세 시대. 운이 좋다면(?) 앞으로 40년, 길게는 60년을 더 살게 될 것이다. 우리 업계는 은퇴시기가 매우 빠르고, 몇 년 후면 나는 어차피 치킨집을 차려야 할 것이다. 이럴 바에는 아예 새로운 것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게는 대학까지 공부한 것으로 40까지 한 업계에서 밥 벌어먹고 잘 살았으니, 지금부터 몇 년은 다음 40년을 위한 베이스를 만들어 보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아버지는 미혼 중년 딸의 경제상태와 노후 준비에 걱정이 많다. '남은 생을 백수로 지낼 수도 있다'는 저주 같은 충고도 따라온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불안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내 최후의 날은 언제 올지 모르고 어차피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오직 내가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지금을 담보로 미래를 꿈꾸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하며 이 소비 조장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도 돈을 적게 쓸 수 있는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는 여유. 그 대가는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지금은 오직 나를 위해서.
백수 일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