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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Sep 24. 2020

부동산과 나, 그 10년의 기록(2)

임대인과 하수구 

임대 #1, 임대인이 된 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물쩡 임대인이 되었지만, 오래된 아파트를 세 놓는 것은 그저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집과 관련된 자잘한 수리를 해 줘야 하고, 각종 민원을 처리해 줘야 하고, 막힌 하수구를 뚫어 줘야 하고, 관리소장과의 다툼을 해결해 줘야 한다.


세입자 신혼부부는 1년 계약 기간이 임박하자 이사 일정이 안 맞는다며 2개월만 더 연장하고 싶다고 했다. 신생아를 데리고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일단은 동의를 해 주었다. 부동산에도 내놓을 겸 방문 약속을 했는데, 집에 들어서자 덩치가 산 만한 골든 레트리버가 나를 반겼다. 허억. 이런 얘긴 없었잖아요. 


나쁜 예감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지. 레트리버, 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덩치에 이 작은 집에서 버티기 힘들었다는 건 잘 알겠다. 현관이며 걸레받이며 문 틀이며 네가 갉아 놓은 흔적들을 보면, 어지간히 활발한 녀석이로 구나. 네가 문제라는 건 아냐. 너는 훌륭해. 네 주인이 문제지. 


이 귀여운 사람들아.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끝까지 붙들어 놓고 지랄을 떨었어야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자기들이 알아서 필름지 시공을 다시 해놓겠다고 해서 결국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사 날 정산할 때는 월세도 밀려 있었지만, 관리비 마저 밀려 있어서 돌려주고 말고할 금액도 별로 없었다. 처음의 당당하고 참신했던 모습이 왠지 모를 초조함과 지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면, 그건 그냥 느낌이었을까. 


이들이 미쳐 정리하지 못하고 떠난 우편함에는 전국 지방 경찰청에서 날라든 고소장과 청구서들이 가득했다. 사업을 시작했다더니 잘 안 풀린 모양이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타인이 남겨 놓은 삶의 흔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임대 #2, 하수구 막힘과 삶의 질에 대한 고찰 

먼저 "하수구 막힘"이라는 키워드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유튜브만 해도 그렇다. 한창 하수구에 문제가 있을 때는 한 시간을 하수구 뚫는 영상을 쳐다보고 있었던 적도 있다. 오물이 가득한 하수구가 뚫리며, 물이 쏴 하고 내려가기까지의 과정. 그곳엔 오직 어둠과 나만 있을 뿐이지. 이게 뭐라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냐. 


매매 후 5년을 잘 버틴 내 집은 하수구에 문제가 생기더니, 어느 날 역류를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두 번째 세입자는 결국 나가버렸다. 물론이다. 하수구 역류와 막힘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장난 아니다. 이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더 죽을 맛이다. 일단은 세입자를 내 보내고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막힌 하수구를 시원하게 뻥 뚫어드린다던 업자들이 몇 번을 왔지만 그때뿐이었다. 뭔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했다. 업자들마다 이건 공동배관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관리실에 따져 물으면 돌아오는 건 "어쩌라고"의 서양식 제스처. 


관리 소장은 이 건물에서 20년을 근속한 터줏대감이었다. 실입주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이 임대물인 이 건물이 관리가 잘 되고 있을 턱이 있나. 자기가 살지 않는 집의 관리는 남의 얘기다. 비싼 관리비가 어떻게 쓰이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연수의 부모님 아파트를 생각해 보면, 괴리감이 컸다. 


관리소장과의 대화는 역시 쉽지 않았다. 대화라기보다는 독백과 샤우팅에 가깝다. 이야기는 본론에 이르지 못한다. 건물 관리에 대한 넋두리의 16번째 변주곡이 끝날 무렵에서야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물 설계도와 배관 구조도도 들여다 보고, 하수구 배관 전문 업자도 데려오고, 관리 소장을 통해 건물의 최초 시공자도 수소문했다. 도대체 왜 때문에 배관을 이렇게 공사를 해 놨는지 모르겠다며 소장이 부도난 시공사를 탓한다.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건물 구조 때문에 작업 난이도가 상당하다. 


공동주택 관리 분쟁 조정위원회도 전화를 해 보고, 강남구청 건축과에도 전화를 해 봤다. 최악의 경우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분쟁 조정위원회의 사연들을 보면 기가 막힌 경우들이 많다. 이거, 우리 건물은 양반이구만. 타인의 불행으로 나를 위로했다. 


관리소장을 매일 찾아가서 음료수도 사 주고 푸념 장단에 맞장구도 쳐주고, 구청에 전화해서 방법을 찾고 있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서 3개월 만에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듯했고, 아주 꼴도 보기 싫던 관리소장과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뭐 대충 사람이 나쁜 건 아니었던 걸로. 


오래된 집은 잘 관리하면서 써야 하는데, 남이 그걸 해 주기를 바라는 건 요행일 뿐일까. 

10년을 거래해온 부동산 이사님은 나에게 임대인 할 기질이 아니라고 했다. 


"그걸 하실 수 없으니까 이런 오래된 아파트는 파시는 게 나아요." 

"그럼 팔고 어디 다른 데 갈 데가 있을까요?"

"이 금액으로 서울에서 신축은 안되죠. 다른 쪽으로 알아봐야죠." 


첫 눈에 반해 매매까지 했었던 집이지만, 백수가 되려는 마당에 서울에 내 집이 있을 필요는 없었다. 

집을 내놓기로 했다. 


to be continued 



Photo by Michal Matl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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