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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Sep 26. 2020

부동산과 나, 그 10년의 기록 (3)

인테리어 스킬 +1 

# 인테리어를 시작하다. 

처음 집을 내놓을 때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생애 최초 내 집에 대한 애착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집을 내놓고 보니 이 집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 인 것은 분명했다. 부동산에서는 가격 메리트 때문에 많은 사람이 보고 갔다고 하는데, 정작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첫눈에 반했던 집. 그러나 아무도 살지 않은 채 3개월 이상 방치된 이 집은 이제 어딘가 삭막하다. 과거의 영광을 지닌 폐허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 전 세입자의 취향 때문일 것이다. 벽면에 거울과 번쩍이는 것들을 잔뜩 붙여 놓고 나갔다. 가격만 낮추면 될 줄 알았는데 역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군.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겠어.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다시 한번 내놓기로 했다. 


인테리어 업자를 찾기 위해 검색에 몰두했다. 물론, 절친 레벨의 관리소장에게도 물어봤다. 그렇게 해서 컨택한 업체는 7개소. 같은 항목인데도 가격이 천차만별. 견적서에 들어앉은 알 수 없는 단어들. 도대체 '자재양중직영'은 무슨 뜻인 거야? 눈탱이 맞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되겠어. 


업체와 통화를 하고, 실측 견적을 받기 위해 직접 만나고, 견적서의 내용을 토대로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느낌이 온다. 어디가 나와 맞고 맞지 않는지.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고른 업체는 관리소장 추천 업체였다. 이 건물에서 3건이나 인테리어를 진행한 적이 있어 무엇보다 건물에 대해서 잘 알았고, 공사 기간도 가장 짧았으며, 또 견적도 나쁘지 않았다. 이건 뭐 최상의 조건이구만.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어서 신이 났다. 견적서를 받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일정 조율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거의 다 왔는데.. 어랏. 담당자 연락이 안 되네. 초조했지만 질척거리고 싶지 않아서 기다렸다. 


4일 만에 연락이 되었다. "제가 백화점 수주를 하게 되어서 영업시간 이후에 하다 보니 낮 밤이 바뀌어 버렸어요. 죄송합니다. 오늘 내로 최종 견적서 드리겠습니다. " 아니, 그래도 그렇지..." 만 뭐 바쁘면 조금 기다릴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고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이 자식은 또 잠수를 타 버렸다. 오늘 준다던 견적서는 함흥차사.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엿새...카톡을 해도 읽씹. 전화를 해도 안받아. 이 호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엔 연락이 되고 따져 물으니 다른 일 때문에 한 달 후에나 시간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중간에 들어온 큰 공사 때문이었다. 


돈이 더 되는 걸 하고 싶은 건 이해한다고 쳐. 하지만 고객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해도 되나? 라며 이 잣 같은 상황에 대한 쌍욕 샤우팅을 하고 싶어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잘 참았다. 오랜 마음 수련을 해왔는데, 이 자식이 나를 또 인신공격 하고 싶게 만드네.  


이렇게 해서 3주를 날리고 나는 다시 원점에 섰다. 


# 인테리어 스킬업 

업체에 맡기려고 보니 내 마음대로 일정을 정하기도 쉽지 않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작은 집을 일부 수리하는데, 이렇게 중간업체를 둘 필요가 있을까. 백수인 마당에. 나도 지금 까지 직장에서 PM역할을 했는데, 이 걸 못할 이유가 뭐 있어. 


그래, 시간 많은 나로 정했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 내가 피엠 역할을 하기로 했고, 그동안 받은 견적서를 바탕으로 필요한 일감을 정리해서 개별로 진행해줄 업체를 찾았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통화했고, 운이 좋겠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에이전씨와 진행했을 때는 견적이 1500만 원 이상이었기 때문에 예산을 여기에 맞춰 설계했으나, 결론적으로는 절반의 예산으로 시공했다. 


인테리어 시공 포스트모템 

처음에는 인터넷 검색을 하며 엄청나게 많은 사진들을 긁어모았다. 인테리어 잡지도 많이 읽었다. 내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작품을 만들어 내기라도 할 모양이었다. 눈만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통장 잔고는 내 안목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적 목표는 깨끗하고 아늑한 집, 누가 봐도 '보통은 되네'라고 생각할, 가장 보통의 집을 만드는 것이다. 너의 개성 따윈 필요 없다. 중요한 건 가성비야. 시공의 마감을 잘 살피자. 

나에게 필요한 작업은 도배-걸레받이/천정 몰딩-필름지-화장실 전체-주방 전체 

일의 순서/예산을 설정한 후 업체 컨택을 진행했다. 에이전씨 비용이 공사금액의 8-10%인데 이것을 내 월급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업체를 찾았다. 나중에는 보상 심리 때문인지 나 자신에게 과도한 월급을 주어서 별로 남는 것이 없어졌다. 

마루를 교체하지 않기 때문에 걸레받이 시공을 해 주겠다고 하는 업체가 없어 고생했다. 하지만, 이걸 바꾸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서 꼭 시공해야 했다. 

주방 교체는 정말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사제 업체를 찾아 시공했고 너무나 만족한다. 

주방 쪽 타일은 화장실을 시공할 때 같이 해서 시공 가격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타일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결정장애가 생길 것 같았다. 도무지 고를 수가 없는 상황에 아무도 상담을 해주지 않으니, 아 이래서 에이전씨 업체를 쓰는구나 싶었다. 

주방 교체 비용이 줄어서 남는 돈으로 같은 업체에서 신발장까지 교체했다. 어차피 싱크대 쪽은 문짝 값이기 때문에, 같은 재질로 진행하니 돈이 더 절약되었다. 신발장이 현관 바로 옆에 있고 들어오는 사람의 첫인상을 반영하기도 하니 어쩌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 쪽은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비용에 비례하는 퀄리티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타일을 덧방 시공하니 확실히 화장실이 작아진 건 어쩔 수 없지만, 백색 조명 대신 따듯한 조명을 써서 그런대로 아늑한 느낌이었다. 

철거를 따로 알아보기도 했지만 양이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개별 업체들에 돈을 더 주고 부탁했다. 주방은 붙박이장을 철거하고 보니 아래 마루가 비어 있어서 당황했다. 급하게 마루 하는 사람을 컨택했으나 이것도 20-40만 원 까지 비용이 천차만별이었다. 시공 자체의 퀄리티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간에 맞춰 시공을 하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도배는 좋은 반장님을 만났다. 실측하러 왔을 때부터 남다른 포스를 풍겼는데, 현재 집의 도배 상태, 문제점과 보완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 시공 진행할 때도 매우 꼼꼼하게 진행해 주셔서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문/문틀은 필름지 작업을 하고 싶어서 알아보니 문 3개에 80-12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이 부분을 고민하다가 필름지만 사서 셀프로 진행했다. 주방 싱크 문짝을 필름지 시공해 본 경험과 유튜브 강의를 참고해서 프라이머/젯소를 사용하고, 대신 상급의 엘지 하우시스 무늬목 필름지로 했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 빼고는 대단히 만족한다. 혼자 문틀 시공을 하며 매일 땀을 한 바가지 씩 쏟았다. 


그렇게 해서 3주 만에 인테리어 공사를 끝내고 다시 집을 내놓았다. 그리고 3일 만에 월세와 매매 쪽에서 모두 계약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to be continued 



Photo by Jonathan Francisc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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