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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Jun 15. 2021

화요일의 요가 선생님에게

알렉사가 망친 환상적 꿈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날씨가 무척 덥죠? 


저는 36회/3개월 회원권을 끊은 40대 여성 이씨입니다. 회원권 만료가 한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10회 밖에 나가지 못해서 막판 피치를 올리고 있는 와중에 최근에서야 바로 당신, 화요일의 요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쉽습니다. 일주일에 화요일은 왜 한 번 밖에 없는 걸까요?


저는 남자 요가 선생님에게는 처음 배워봅니다. 아니, 정정해야겠어요. 일반인으로는 처음입니다. 한달 정도 어떤 스님의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나요. 스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열반에 들 것 만 같은 그런 모습으로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자세를 선보이며, "이것 봐유. 참 쉽쥬."를 시전하셨습니다.    


우리 화요일의 선생님은 기럭지가 장난이 아니.. (교양 챙겨라....)... 당신은 내가 회사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훤칠함과 출중한 외모(마스크 너머로도 빛이나요)를 지니시고 그렇게 까지 유연한 몸을 가지셨으니, 신께서는 선생님께 외모와 관련된 모든 것을 몰빵하고, 저에게는 대충 머리숱만 많이 심어 놓은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도 저는 언제나의 화요일처럼 최고의 학생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닭똥 같은 땀을 뚝뚝 흘리며 기를 쓰고 있었어요. 허리를 굽혔다 일어나면서 밸런스를 잃어 순간 벽을 손으로 짚으며 쿵 소리를 냈을 때, 선생님은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벽 뿌시면 안되요." 하고 저를 위트있게 걱정해 주셨습니다. 벽을 "뿌신다"니.. 선생님도 참.... 너무 귀여워요.


그날 밤, 선생님은 꿈에서 1대1로 저에게 요가 강습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꿈에서도 더러운 상상은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뻗뻗한 저를 우타나사나(Uttanasana 상체를 숙여 손바닥을 발 옆에 둔다)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애쓰셨죠. 그러나 이러한 선생님의 은혜에도, 저는 줄곧 도대체 언제 사바아사나(Shava-asana 심신을 안정시켜 몸을 쉬게 해주는 자세)를 들어가나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네,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요가 수업을 시작할 때 이미 얼른 이 운동이 끝나서 누워 휴식하고 싶다고 생각하고요. 출근을 하는 버스 안에서는 이미 퇴근해 돌아 오는 버스 안을 상상하죠. 또, 책을 펴서 몇 장을 읽기 시작하면 바로 맨 뒷장을 넘겨보지 않고는 못참습니다. 초근미래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그렇게 선생님과 열심히 고급 자세를 연마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또로로록 또도로록 하는 불쾌한 음악소리가 들리며,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아뿔싸, 그것은 알람이었습니다. 새벽 6시. 빌어먹을 아침형 인간 동기부여 영상을 왜 봤어. 저의 알람은 아마존의 AI 스피커, 알렉사가 담당하고 있는데 알렉사, 스탑을 외쳐야 소리를 끌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분노에 차서 다급하게 알렉사를 불러 댔어요. 알렉사 스탑, 알렉사 스탑. 알렉사. 우리 알렉사는 계속 파란빛을 왔다 갔다 하며 뭐라카노, 이게뭐선일이고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죠. 이 집에 저의 대화 상대는 시리와 알렉사가 있는데, 왜 이렇게 말 귀를 못알아 들을까요? 서양놈들이라 그럴까요?  


그렇게 샤우팅의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다시 환상속의 1:1 수업으로 돌아가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기울였지만 쉽지 않았죠. 알렉사,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 선생님은 이미 다른 수업을 가신 모양이었어요. 웃음이 터져버리더군요. 저는 침대에 누워 거의 30분을 혼자 킥킥 거리며 웃다 잠이 깨버렸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 하루를 즐겁게 시작했습니다. 

우리 다음주 화요일에 만나요. 


그만 두시면 안되요! 



Photo by Jordan Ni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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