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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명희 May 03. 2024

싫은사람과 연대

당신은 연대와 유대를 구분 할 수 있는가?

분명히 나와 노선이 같은 선한 사람일텐데도 함께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가치관과 관심사가 비슷해서 우연히 만나게 될 경우도 많다. 같은 곳을 향하니 저절로 견주어 보게 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마음이 섬세하고도 미묘할 때가 있다.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이거나 모르는 사람이라면 신경도 안 쓰일텐데, 신경은 더 예민해지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것에 힘이 들어가면서, 왠지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연대는 해야겠다. 그러나, 안들어 봤지만 그 사람의 액션 제안은 왠지 땡기지 않고, 내 스타일을 설득하는 것도 어렵다. 은근히 동선이 겹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 같은 목적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인데, 불편하다(사람 자리에 조직을 대입해도 된다). 그 사람(조직)과 내가 함께 향하는 공동의 목적이 이상한 걸까? 그 사람(조직)이 일하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을 모르는 답답이 일까?


그는 그저 나와는 다른 방식을 지닌 사람으로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조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같은 목적이라는 미명 하에 내 스타일이 아닌 것에 껄끄러움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같이 연대하는 존재들이니까, 촘촘히 함께 해야 한다고 함께 똑같이의 굴레를 나와 그 모두에게 씌우려 한 것 같다.


그러나 연대에도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대에 가까운 연대다. ‘유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끈과 띠라는 뜻으로, 둘 이상을 서로 연결하거나 결합하게 하는 것, 또는 그런 관계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서로 친밀함과 강한 연결감을 느끼는 처지와 환경에 놓여있는 가족, 친구, 동료, 학교 동문 등의 유대 관계가 있다. 개인의 관심사와 목표가 맞아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유대 관계를 갖게 될 수 있다. 같은 미션을 가진 사람들이 다소 협소한 주제나 목적에 맞게 모여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함께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을 팀이나 커뮤니티, 공동체라고 부른다. 번역가 ‘안톤 허’가 만든 <스모킹 타이거즈> 가 그런 경우다. 프리랜서 번역가들의 모임으로 번역을 맛깔나게 잘하고 싶어 번역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번역 글을 리뷰해주고, 일하는 데 필요한 관련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서로를 통해 동료 없는 외로움도 달랜다. 이러한 유대의 공동체는 든든함과 안락함이 있다. 영향력 확산 등을 이유로 모임의 크기를 키우고자 하지도 않는다.


…… 이때 안톤과 같이 있던 소피 보우만이 ‘우리도 모임 만들자. 재밌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이미 워크숍을 같이 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웹디자인을 할 줄 아는 안톤이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해외 출판사에 번역을 제안할 때 ‘우리 웹사이트가 있다, 우리 프로필이 여기 있다, 이 책에 대해서 더 읽고 싶으면 여기로 오시라’고 링크를 주는 용도로 쓰고자 했다. 좀 더 공식화하고 좀 더 있어 보이기 위한 시도 였다……. 그렇게 번역가 모임 스모킹 타이거즈가 탄생했다. ’……저희는 그냥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사람들이 모인 거죠. 더 젊은 번역가들이 들어오려고 하면 제가 우리한테 별거 없으니까 다른 콜렉티브를 만들라고 권유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오라고 하고요. 셋업하고 웹사이트 만드는 거 도와줄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여기로 들어올 필요는 없다고요. 가장 이상적인 거는 번역 콜렉티브가 여러 개, 수백 개 수천 개 생기는 거지 이거 하나가 막 문학 권력을 갖고 있는 건 너무 안 좋고 이상한 거 같아요.
<번역가 ‘안톤 허’ 인터뷰,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한국 시 번역가 인터뷰 산문, 은유 지음>


유대는 또 혼자로는 영 안될 것 같은 일에, 배짱을 제공하기도 한다. 때로 이들은 소기의 목적을 위해 프로젝트 팀으로 활동하여, 프로젝트를 위한 독립적인 회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파도야 놀자, 여름이 온다 등으로 국제적인 상을 받으며 그림책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이수지 작가는 다른 작가와 함께 하기 위해서 사업자 까지 내서, 매년 다른 그림책가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한다.


결국 양평군청에서 ‘흰토끼프레스’등록증을 받아 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흰토끼 프레스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실은 ‘바캉스Vacances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옛이야기를 가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품고 있었는데, 이건 나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의 힘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 더 재밌어질 것 같았다. ……. 자기 세계가 이미 있지만, 여전히 정의되지 않은 어떤 보글보글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이들이 함께 모이기만 해도 예상치 않은 폭죽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림책 하는 동료 작가들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팬심과 애정이 더해지면서 어떤 독립 출판 공동체에 관한 꿈을 꾸게 되었다. 작가들은 독립된 섬이다. 각자의 섬이었다가 물이 빠지면 비로소 길로 연결되고, 그렇게 모여 잘 놀고 다시 물이 들어올 때쯤 미련없이 돌아가는 유연한 모임을 상상했다. …… 그냥 평소에 뭐든 하고 싶었던 것을 옛이야기 핑계 삼아 여기서 같이 해보는 것, 어때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우리 모임의 이름을 짓기로 했는데, 대체로 놀멍쉬멍 작업하자는 표현의 이름들이 많이 나왔고 결국 ‘바캉스’가 되었다. 재밌자고 시작했지만, 분명히 고된 일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본업 마감에 쫓기면서, 또 바캉스 마감에도 쫓기게 될 것이다. 전혀 휴가 같지는 않겠으나 그래도 기분만은 휴가처럼 좋을 거다. 그렇게 서울 국제 도서전에 참가하기로 했고, 아무래도 내가 사업자 등록증을 가진 편이 각종 잡다한 절차의 신청과 진행에 편리할 것 같아 급히 도모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바캉스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나는 흰토끼 사장이 되었다. 그때부터 진짜로 재미있는 일들이 시작 되었다.
<만질 수 있는 생각, 이수지>


이렇게 형성된 유대관계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구성원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고, 그 사람이 바로 설 수 있는 땅이 되어 준다. 나의 안전지대(safety zone)를 찾는 마음. 서로 긴밀히 호응하고 박수쳐주고, 그 안에서 내게 싫은 소리가 나와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곳. 나의 공동체, 나의 커뮤니티, 나의 부족이 그 안전지대다.


만들어진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공동체의 목표는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것일 수 있으나) 절대적으로 개인차원의 관심사를 기반으로한 목표와 일치한다.

구성원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가닿는 만족과 즐거움이 구성원 지속가능성의 원동력이다. (미션이 달성 안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원동력이 다하면 쇠할 수도있다 )

소속되는 데 조건이 있다. (천부적인 것이든, 획득하는 것이든) 그 조건이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든다.

현재 구성원이 함께함으로써 필요한 기능이 충족된다면 그 이상 더 커질 필요를 못느낀다. (세상 큰 가치를 실현하고자 모인 것이 아니다)


그에 비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연대는 좀 더 거창하다. 사전적으로 ‘이어져 있는 띠’ 라는 뜻이다. 유대라 하나의 띠라면, 여러 개의 띠가 이어져 어떤 큰 가치를 품을 때 우리는 연대한다라고 말한다. 영화 어벤져스는 연대하는 사람들의 잔치다. 토르, 캡틴아메리카, 아이언맨, 헐크, 닥터스트레인지, 블랙위도우, 블랙팬서는 각자 모두는 초인적 능력으로 지구를 구하고 있으나, 스타일은 제각각이라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매 순간 서로 맞지 않아 싸우기 일수다. 그래서 인지, 지구를 구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결국 하나로 연대하지만, 싸움이 끝나고 영화가 끝날 때쯤 되면, 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상대를 구해주고, 소중해 해도 각자는 각자의 땅과 영역으로 흩어진다.


같은 어벤져스 안에서도, 블랙팬서를 중심으로 그의 왕국, 와칸다 안에서도 연대와 유대의 차이점을 살펴볼 수 있다. 왕국 안에는 여러 부족이 있다. 5개 부족의 생활 양식과 사고방식뿐만아니라, 부족을 이끌어가는 리더십 스타일 또한 다르다. 와칸다에 있는 부족 하나하나가 요즘 말하는 클랜(clan), 팸(family, 가족을 줄여 이르는 은어)이다. 부족, 클랜, 팸 안에서 추구하는 연대는 유대관계에 가깝다. 서로 같은 생활 양식, 거주지를 공유하는 끈끈한 사이이다. 하나 하나의 부족이 모여 함께 와칸다 전체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힘쓰며 위기시 다른 부족과 연대한다. 나아가 세계 평화에도 힘을 모은다. 매사 왕국의 수장인 블랙팬서와 부딪치고, 반항적이었던 자바리 부족의 리더 음바쿠는 블랙팬서와 유대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블랙팬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블랙팬서와 연대하여 와칸다를 위험에서 구한다. 어벤져스에서 볼 때 와칸다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연대하는 여럿 중 하나의 단위로 와칸다 하나로 이해되지만, 와칸다만 놓고 보면 와칸다 내부는 유대관계에 있는 다섯 개의 다른 부족이 함께하는 연대체이다. 이처럼, 연대와 유대는 상대적인 개념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볼 때는 서울 시민, 글로벌 수준에서 볼 때는 대한민국 국민, 우주적으로 볼 때 지구인처럼 유대와 연대의 범위는 관점마다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연대냐 유대냐의 정치한 사전적 개념과 분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대와 유대가 ‘함께’의 밀도와 양식이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유대와 연대를 뭉뚱그려서 ‘(거창한) 연대’라고 상정하고, 거기에서 나와의 케미, 나의 안전지대를 찾고 유대관계를 찾으면, 오히려 함께가 어렵다는 감각이 먼저 생긴다. 연대 이전에 내가 누군 가와 함께 하고 싶은 일에 아직 유대하는 사람들이 없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같은 부족인지 사실은 확신이 없거나, 우리 같은 부족하자고 모이긴 했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다. 힘들게 만난 그룹에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스타일이 다를 경우, 유대관계도 없는데, 연대가 안된다고 볼멘소리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역시 함께는 힘들어 하고, 연대 자체를 포기하기 쉽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큰 일을 이루고 싶다고 연대에 조바심내지 말고, 내가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일을 표현함에 있어 안전감을 느끼는 나의 부족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내가 유대감을 느끼는 부족에서의 소속감 획득이 먼저다.  유대의 안전지대 없이는 서로 다른 존재를 다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대는 일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공동체야’ 이렇게 공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공동체는 케미스트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운이 필요한 것 같아요. <번역가 ‘소제’ 인터뷰,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한국 시 번역가 인터뷰 산문, 은유 지음>



나의 부족을 찾는데는 지극히 ‘나’ 중심인 게 필요하다.

나를 잘 모르는데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하기고 결정하기 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끊임없이 내어주기도 하고 받아보기도 하면, 케미가 맞는 나의 부족이 분명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못찾겠으면 내가 만들 수도 있다. 메뚜기처럼 이리 저리 다니는 것도 좋고, 하나만 진득하게도 좋다. 오래 걸리더라도  나의 부족, 나의 공동체를 맞춰보는 마음과 에너지를 잃지 않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인간관계, 오래가는 단단한 파트너십을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이 공감하고 경청하며 세밀하게 관찰해야 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나에 대한 파악, 나라는 사람에 대한 메타인지가 정확하고 정교해야만 뚜렷한 비전을 세우고 그에 맞는 파트너십도 찾아낼 수 있다. 애자일 조직에 가장 적합한 인재도 자 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회사와 조직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과 잘 조절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하지만 앞만 보고 열심히 내달려야 하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는가?, 이소영 지음>


자신이 설 땅이 없는 연대는 어렵다. 개인의 유대관계가 기반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자리에 흔들리지 않고 서서 더 큰 가치를 함께할 엄두를 내볼 수 있게 된다. 나의 유대가 단단해지면 다른 사람이 이 유대 관계에 소속될 수 있도록 안전지대를 넓힐 수도 있다. 그제 서야, 우리는 다른 부족을 만나 함께할 준비가 된다. 나, 우리 부족의 행복은 결국 세상의 모든 존재가 각자의 이유와 형태로 잘 사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래 행복하게 살며, 우리 다음의 세대까지를 헤아려, 세상에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 생태(환경) / 평화 / 인권과 같은 가치들을 추구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연대에서 같은 편으로 만나지만 나와 다른 부족들이 나타나 힘이 되어준다.  그 때,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 다른 부족과 조직이 공동의 가치를 위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달리며, 서로 같은 목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다른 부족들은 분명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데, 방식이 다를 사람들에게 우리는 때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거리를 두고 싶을 수 있다.)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는 다른 공동체와 신뢰로 일을 조율하고, 공유하며, 힘을 끌어 모으면서, 우리는 다시 연대를 이야기 한다.


말이 길었다. 기껏 연대한다고 결심해서 나갔는데, 함께하는 사람이 케미가 안맞고, 스타일 다른 것, 그게 보통이다. 나와 연대하는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부족일 수 없다. 싫은 사람? 싫은 조직? 나와는 안맞는 방식? 그래도 크게 봤을 때 나와 같은 목적과 가치를 지닌 다른 부족이라면, 일단 그에 감사하고, 킵(keep)하자. 함께해야지 가까워 지려 애쓰지 말고, 떨쳐 내지도, 손절하지도 말고. 내 마음 속은 내 마음이니, 상대를 내 마음 속 아주 조그맸던 거기 그 자리에 두자. 혹시 모를 연대의 어장관리라 해도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연대하는 부족으로 다시 만나자. 결국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이루기엔 나의 부족만으로는 턱도 없을 것이므로.  결국, 공동의 목적으로 우리가 함께 나아가고 있음에 대한 향함을 인지하고, 달라도 서로를 놓지 않을 때, 우리는 연대한다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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