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다시 말해줘." "답답해, 빨리 말해줘."
"엄마?"
"엄마?!"
시도 때도 없이 날 찾는 소리 뒤에는 늘 싱크대 그릇 소리,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휴대폰 벨 소리, 밥솥 돌아가는 소리, 청소기 소리, TV 소리, 그리고 사람 소리가 뒤섞여 있다.
소리와 함께 매 순간 내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인다. 집에서 해야 할 일, 직장에서 해야 할 일, 연락해야 하는 사람들, 사야 할 물건들, 버려야 할 것들, 오늘 들은 것, 본 것, 또 놓친 일이 뭐가 있나 생각 중이기 때문이다. 그때 어떻게 했어야 했나, 고민을 하기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손 역시 분주하다. 이리저리 놓여 있는 접시들을 치우거나,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정리하거나, 빨래를 개거나, 식사 준비로 가스레인지 불 앞에 서 동동 거릴 때도 있으며, 칼을 쥐고 재료들을 바삐 썰고 있을 때도 있다. 스마트폰을 잡은 손은 또 어떤가.
바쁜 손놀림과 얽힌 생각들.
눈은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다, 정신없이 바쁘다.
그러다 보면, "엄마?" "엄마?!"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부르는 TV 볼륨소리 20 정도의 큰 소리가 도착하지만 놓쳐 버릴 때가 많다. 그러면 보통 아들은 최대한 가까이에 와서 다시 나를 부른다.
"엄마?""엄마?!"
강한 억양, "파" 정도의 높이로 쉼 없이 이어지는 두 단어의 외침이 간신히 도착했다.
"응?"
대답은 한다.
머릿속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고, 손은 바쁘게 다른 뭔가를 하고 있으며, 눈은 애타게 부르는 아들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한 아들의 말은 재생이 되지만,
손과 발, 머리, 마음, 눈, 귀, 제각각 널브러지고 흩어져 있는 나는 사실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답을 하는데, 보통 이 세 가지 중 하나다.
"그래."
"응"
"안돼."
그 대답을 하고 나면, 아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무언가를 하거나, 혹은 더 큰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짜증, 화가 묻어나는 표정이나 말을 보낼 때가 있는데, 그제야 머리, 손, 눈, 귀, 마음이 아이를 향한다.
컴퓨터 화면의 로딩이 길어지면 결국은 멈춰 버리고, 강제 종료 버튼을 눌러야 한다. 3초 정도 길게 전원 버튼을 누르면 다시 껐다 켜지는 컴퓨터처럼. 내 몸과 마음이 다시 켜진다.
그러면 그제야 아들의 눈을 바라보고, 말한다.
"뭐라고? 다시 말해줘."
아들은 하나에 꽂히면 그 하나만 생각했다. 말을 해도 유독 그 말만 하고, 자기가 본 것, 들은 것, 모두 꽂힌 그 하나로 연결이 가능했다. 꽂힌 그것이 유명 애니메이션의 굿즈 같은 물건일 때도 있고, 그림, 운동, 노래, 악기 같은 활동일 때도 있다. 아들은 그 하나를 위해 매 순간을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피리 배워볼까?"
"응?"
"나 피리 불고 싶어."
내 머리, 몸, 머리, 마음이 잠시 멈춤이다, 다시 켜졌다.
"피리?"
"응, 나 피리 불래."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마음은 일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당황스러웠다.
'피리라면, 그 전통 음악에 단소처럼 생긴 그런 건가?'
'얇고, 가느다란 거?'
'푸른 빛깔 도는 하얀색 한복을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가 부는 그 피리?'
'피리는 어디서 배우지?''
닫힌 입 속 머리는 바빴다.
'왜 배우고 싶지?'
할 수 있는 말을 찾아서, 입을 여는 도중에 이미 아들 말이 도착했다.
"답답해, 빨리 말해줘."
"왜... 피리가.. 배우고 싶어? 그... 대나무로 만든.. 그... 피리?"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랩 하듯 말한다.
"그거 장기자랑할 때 발표할 거야. 어디 가면 배울 수 있지? 오늘 가 볼까?"
'장기자랑? 장기자랑은 또 뭐지?'
'피리를 배운다면, 피리를 가르쳐 주는 학원이 있을까?'
'몇 년 전, 가야금 박물관에서 가야금 배우는 수업 안내문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미 아들의 머릿속은 피리를 배워서 아주 완벽하게 연주하는 장기자랑 속 아들의 무대를 상상하는 듯했다.
"피리.... 아는 학원은 있어?"
"나도 모르지. 엄마가 도와줘."
"그래, 한 번 알아보자."
우리 집 근처 피리 학원을 스마트폰 화면에 검색어로 입력했다.
마술피리 서점,
마술피리 공연,
꿈꾸는 마술피리 음악학원,
매운탕 피리 튀김 등등을 거쳤다.
국악예술원 커뮤니티를 찾았다. 태평소, 피리, 해금, 판소리 등의 게시판이 있고, 2-3개월 전 최근 글이 서너 개 가량 있는 곳이었다.
"엄마, 찾았지? 여기 가볼까?" "응?"
"답답해, 빨리 말해줘."
머리, 몸, 마음이 다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