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건 순간이다

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4

by 마릴라 Marilla

밤새 1kg이 빠졌다. 100g 빼는 것도 어렵더니 역시 다이어트는 맘고생이 가장 빠른 감량이라는 걸 실감했다. 가족을 떠나던 날처럼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나날이 다시 시작되었다. 몸은 늘어졌고 잠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잠들고 나면 깨어나지 않길 바라며 오래 누워있었다. 처음으로 수신차단 목록을 열어봤다. 긴 기간 동안 차단된 목록 중 가족번호가 별로 없었다. 예상과 달리 몇 개월에 한 번꼴로 수신의 흔적이 있었다. 반년 전 오빠의 연락이 남아 있었다. 이 상황을 누군가에는 알려둬야겠다는 생각에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에 전화 안 받더라 “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사라진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본가에 가는대도 엄마는 아들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 사실에 또 충격을 받았다. 딸의 행방이 묘연하고 연락이 안 되고 더군다나 안 좋은 상태에서 사라졌다면 더더욱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 그런 사실을 가족에게도 숨기고 있다는 게 소름 끼쳤다. 내가 알던 엄마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고 인생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상황을 다 설명하고 처음 헤어질 결심을 할 때 다짐처럼 부모가 죽어도 가지 않을 것이며 차후에 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더라도 인수거절하라는 말을 남겼다. 감정기복이 없고 차분한 오빠는 한 시간 동안 내 얘기만 듣고 있을 뿐 어떤 동요나 설명도 붙이지 않았다. 이모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 수고로운 인생을 아는 동성의 가족임에도 이 상황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동생이 가정사를 얘기하지 않으니 한 번에 이해할 수도 없었다.


마음의 괴로움과 분노가 온몸을 휘감고 어딘가 토해내지 않으면 터져 죽을 것 같은 마음에 주소록을 보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럴 때는 바다 위 섬처럼 혼자가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해소되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상처를 보인 후회만 남았다. 하지만 당장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오는 순간엔 목에 걸린 이물질처럼 어딘가에 토해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오밤중임에도 내 상처를 전혀 모르는, 과거에 담담하게 자신의 얘기를 하던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를 끝내고 나는 또 후회했다. 모르는 사람에겐 위로를 받을 수 있어도 아는 사람에게 위로받기란 어렵고 불편한 마음만 남는다. 하지만 고통의 고비를 넘기고 숨을 쉴 수 있을 때 돌아보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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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슬픔을 듣는다는 건 말하는 사람만큼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큰 상처 앞에서는 어떤 위로나 말도 가늠이 안 된다. 도와주려는 마음이겠으나 간혹 위로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상대방의 입장을 대변해 주거나 나쁜 마음은 아니었을 거라는 설득 같은 말을 첨부하는데 도움은커녕 해가 된다. 잘 들어주리라는 언니 역시 엄마도 상처받고 힘들 거라는 말로 나를 설득했고 부모가 나이 들면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는 친구의 말도 내 상황을 대변하지 못했다. 상처에 소금이 뿌려졌다. 나도 남의 사연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과 예측 가능한 선에서 위로하는 것이다. 그게 더 괴로운 상처가 될 수 있다.

힘든 이의 순간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정도만 해주길, 알지도 못하는 미움의 대상까지 대변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위기를 맞고 고통이 커지면 어떤 생각까지 하게 되는지 나도 처음 겪는 여러 생각과 감정에 스스로 놀랄 만큼 힘들고 어렵다. 그러니 모르면서 안다고 말하지 말고 이해한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는 누구도 남의 고통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해 보려 노력하거나 이해한다고 착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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