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3

by 마릴라 Marilla

오랜기간 가족이라 믿고 살았던 부모에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통보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고 인생이 곤두박질치는 듯한 격한 고통이 뒤따랐다. 방송과 인터넷 상담사례에 흔히 등장하는 K-장녀의 이야기, 어느날 가족과 연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볼때는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존재할까 정말 못된 인간이라 생각했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다가 철천지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부부처럼 그런 일은 부모자식, 형제지간, 친구사이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흔한 일이란 사실이었다.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만큼 괴로움이 따라왔지만 사는 것 만큼이나 죽는것도 쉽지 않다. 당장 죽지못한다면 미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 처음 가족을 떠나던 순간의 복수심이 다시금 불타올랐지만 그런 것으로 내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안보고 산다고 모든 관계가 끝나지 않고 법적 관계가 남아있는 만큼 자식을 놓은 부모는 이후 어떤 문제를 자식에게 남길지 모른다. 어디나 사연없는 가정은 없고 베짱이처럼 살거나 게임이나 술중독에 빠져 있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등 없는게 나은 부모는 세상에 많지만 이런 흔한 사례외에 염려되는 것이 있다.

내 부친은 노인임에도 총기가 있고 재능이 많다. 술담배를 하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건강관리도 철저히 한다. 패션감각이 뛰어나 젊은 스타일로 차려입고 배기량이 높은 오토바이를 자주 팔고 사며 매일 여기저기를 달린다. 자기애가 강해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고 맘에 드는 옷을 잘 산다. 장을 봐주고 학교 라이딩을 하고 집에 문제가 있으면 고치는 당연한 일을 하며 가족에게 댓가를 바라고 전통적인 가장의 덕목인 처자식을 먹여살리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자식의 돈을 대신 관리해준다며 만기가 되면 원금만 돌려주고 이자는 본인이 수수료로 챙겼고 아내가 번돈과 아들의 사고보상금에 본인의 돈은 조금 보태어 아파트는 본인명의로 등록했다. 이마저도 본인 돈은 쓰고 싶어 늙은 나이에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이사가자고 하기도 했다.

이재에 어두웠던 엄마와 어린 아들은 부친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공부에 재능이 없는 자식이어도 어떻게든 대학보내려고 모든 방법을 쓰는게 한국의 부모이건만 어린 아들이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중학교를 졸업하자 기술원에 보냈다. 공부가 싫은 당시에는 학교에 안가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으나 일찍 사회로 진입한 아들은 얼마되지 않아 산재로 장애를 얻었다. 아들이 성인이 되고 세상을 살면서 그날 부친의 결정이 자신의 인생에 준 영향에 분노하게 되었다. 자녀가 어릴땐 판검사가 되야 한다고 지겹게 말하고선 공부에 재능있고 관심있는 딸에게는 학비를 해줄 돈이 없으니 고교 졸업후 취직하라고 했다. 미안함없는 당당한 어조였다. 공부를 잘하지만 집안형편상 차선을 택하는 경우는 많았으니 형편이 어려우면 다 그러는줄 알았다. 중학교때 수학여행에 가지 못할정도로 어려웠던 친구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으나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고 의사가 되었다. 친구의 형편이 더 어려웠지만 차이는 부모의 의지였다. 자식의 인생은 부모에 따라 달라진다는걸 친구의 사례를 시작으로 성인이 되고 세상을 겪으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keyword
이전 03화경험 많은 부모도 자식을 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