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많은 부모도 자식을 망친다

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2

by 마릴라 Marilla

엄마는 실질적인 가장으로 자신이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자녀의 인생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부친에 대해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부친을 원망했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그게 더 문제였다. 부친이 자식의 인생을 망치는데 엄마는 모른척 방관했다는 사실이다.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는 랜덤인생이고 더한 부모도 많으니 이건 약과라 치자. 어느날 본가에 가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팬데믹 상황일때 재난지원금 지급기준이 가족단위인데서 오는 가정불화가 전국에서 생겼고 개인별로 지원하라는 민원이 발생한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다. 얼마안되는 돈으로 가족간에 다툼이 생긴다는건 남의일 인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재난지원금을 부친이 더 가지려 했고 반감이 있던 작은아들과 말다툼이 발생하며 싸움이 생겼다. 말다툼중에 부친의 어깨에 손을 댔는데 그 자리에서 본인이 노인학대를 당한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출동하고 대상자가 노인인 만큼 아들은 경찰조사를 받아야했고 엄마에겐 상담까지 붙어 학대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옆에서 폭행이 없었다고 엄마가 진술을 해도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염려해 사실을 감춘다고 의심할 수 있으므로 신고자외 다른 가족이 진술을 하고서야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부모가 어떤 생각이면 자식을 신고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식의 인생을 망치려는 의도가 없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을까.

부친은 노인이지만 머리가 비상하다. 자신의 이익계산이 누구보다 빠른 사람이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부모이기에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부친에게 '인연은 여기까지' 라는 말을 들을때의 충격과 동시에 그 날이 떠올랐다. 나중에 본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방법으로 인연 끊은 자식을 죄인으로 만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가족과 돌봄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자식이 노인을 방치했다고, 말로 학대했다고 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관계로 얽혀 한집에서 살았다는 것외에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는 나중에 그 관계로 인해 없던 죄도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족관계라는 것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가족은 살아가는 힘이 될 때도 있고 짐이 되는 순간도 있다. 가끔 노인학대 뉴스를 접할 때 노인의 입장에서 봤지만 자식을 신고하는 부친을 보고 사실과 다른 상황이 실제로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친은 대외적으로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다. 모든 노인이 약자가 아니고, 노인이라고 모두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성인이라고 부모를 다 이기는것도 아니다. 어느날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녀라는 이유로 가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겼다. 늙어서도 부모는 자식을 망칠수 있다. 그러나 그게 내가 죽을 이유는 아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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