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친구를 잃었다

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0

by 마릴라 Marilla

가족이나 지인,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다정한 모녀가 있었다. 딸은 인생에서 처음 만난 친구인 엄마를 사랑했고 세상에 없는 베프처럼 지냈다. 일찍 독립하여 주도적으로 인생을 꾸려가는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자립심 강한 자신을 딸은 스스로 뿌듯해했다.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아갈 것 같던 어느 날 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불행의 도미노처럼 이사하는 집마다 문제가 생겨 1년에 4번을 옮겨 다니는 악재가 반복되었다. 처음 자취집을 구할 때부터 20여년을 사는동안 잘해왔는데 갑자기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복잡한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세는 귀해지고 전세가가 폭등하는 데다 힘들게 이사하고 짐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난데없는 하자가 튀어나왔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해도 어떻게 가는 집마다 다른 문제가 생겨 집주인도 이사를 권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을까. 몇 년에 한 번 이사도 큰 숙제인데 1년 내내 이삿짐을 풀고 싸길 반복하다 집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임시로 본가로 옮기게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집을 보러 다닌 적이 없고 집값은 올랐는데 집의 상태는 나빠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딸은 스트레스가 많았다. 독립초기부터 스스로 잘 해왔건만 갑자기 몰려오는 불행과 혼자 힘들어하는 상황에 ‘나는 왜 고아처럼 혼자 해결하고 사나’ 싶은 자괴감과 함께 이번에도 알아서 잘하겠거니 무심한 가족에게 서운함마저 생겼다. 돈이 많으면 갈 집이야 많겠지만 집 없는 서민에게 서울은 변심한 애인처럼 차갑고 냉정하게 대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던 건가, 이제 그 운은 여기가 끝이라고 말하는 듯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한숨도 못 자던 어느 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엄마. 나 돈 좀 보태줘. 전셋값이 너무 올라서 집을 구할 수가 없어.”

“너 돈 있잖아.”

“엄마 걱정할까 봐 그런 거지. 나도 변변한 집에서 살아보고 싶어.”

“나도 먹고살아야지. 너 줄 돈이 어딨어.”

“내가 집에 그렇게 돈을 썼는데 왜 그렇게 말해.”

걱정이 아니라 무정한 말에 상처받은 딸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엄마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식이 부모한테 해줄 수도 있지. 난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하단 생각에 요즘 잠이 안 온다.”

“남편 있고 챙겨주는 자식 있는 엄마가 왜 불쌍해. 혼자 살면서 지 인생 못 사는 내가 불쌍하지. 자식이 부모한테 해줄 수 있으면 부모도 자식한테 해 줄 수 있어야지. 나는 이제껏 내 힘으로 살면서도 해줬는데 어떻게 이래.”

엄마는 고개를 돌리고 한숨만 쉬었다. 딸이 이어 말했다.

“내가 언제 부탁한 적 있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렵게 얘기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지난주에 엄마대신 이모한테 보낸 돈, 생신 때 목돈 챙겨 드린 돈, 엄마보험 만기까지 내준 거 그거라도 돌려줘. 남한테 뭐 하나 받으면 다 갚으면서 왜 자식돈은 당연해? 그럼 나한테도 갚아. 내가 동생 차 사줄 때도 엄마는 뭐랬어? 니돈 너 위해 쓰라는 게 아니고 단박에 고맙다고 했지? 부모 대신 하니까 고마운 거잖아!”

“악한 영이 씌었구나. 그래 알았다. 내 목숨 팔아서 보내주마.”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돈은 보내지 않았고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일생을 자신보다 엄마를 염려하며 살아온 딸은 엄마가 자식보다 돈을 생각하는 사람이란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배신감에 부들부들 떠는 딸과 달리 엄마가 TV를 보며 웃는 모습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에 여러 날을 울었다. 딸의 심정을 이해하지도 상처를 보지도 못하는 엄마와 멀어지기로 결심하고 며칠 뒤 새벽,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와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자식이 사라졌지만 몇 달에 한번 전화가 온 흔적만 있을 뿐이었다. 상처가 불쑥불쑥 올라와 편치 않은 날들이었다. 연락처를 차단하고 떠난 지 17개월이 지난 어느 날 스팸함에 아버지의 문자가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 전화는 받아라.”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던 마음에 파도가 쳤고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연락은 하지 마시고 제 돈은 보내라고 하세요.”

얼마의 시간뒤에 온 문자에 딸은 주저앉아 통곡했다.

“알았다. 연락 안 할 테니 잘 살아라.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로 하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연락두절하고 지내는 동안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나 자신을 찾느라 못 자고 못 먹고 지내는 건 아닐까 염려와 불안증으로 상담을 받으며 한 번씩 찾아오는 생각에 울면서 잠드는 나날이었는데 부모가 자식을 놓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애초에 돈을 바란 적 없고 옆에서 힘든상황을 보면서도 태연한 모습에 엄마의 마음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설마 아닐 거라며 꺼낸 말은 자신이 일생동안 도움 되는 딸이어서, 쓸모 있는 사람이어서 가족으로 존재했다는 자각으로 돌아왔다. 딸은 사라지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말하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 대신 죽을 수도 있는 게 부모라고, 부모는 그런 위대한 존재라고 말하던 세상의 말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가족이라 믿었던 그 많은 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그렇게 고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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