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1
어떤 순간에도 부모는 자식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어릴때부터 일찍 철든 아이가 있다. 돈벌이보다 바깥세상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와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딸로 태어난 아이는 환경에 맞춰 진화했다. 초등학교때 가게문만 열어두고 밖으로 유람다니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엄마는 가게를 지키며 하루종일 뜨개질 부업을 했는데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는 어린 딸이 뜨개질을 대신했다. 일찍부터 집안일을 거들며 학교공부도 숙제도 알아서 하던 소녀는 엄마에겐 없어선 안될 딸이었다. 교회가는 것 외엔 늘 일만하던 엄마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아들 둘은 가방 던져놓고 놀러갈때 딸은 오자마자 숙제부터 하고 엄마옆을 지켰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 셋을 키우며 살림하고 돈벌이를 하는 인생이 어린 나이에도 안쓰러웠으므로 눈치 빠른 소녀는 그렇게 엄마를 위로했다.
딸이 아기일때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돈을 빌린 일부터 내기도박에 껴서 몇백을 날린 일까지 눈물없인 들을 수 없고 남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어린 딸은 들으며 자랐다. 딸은 일찍부터 아버지를 미워하며 살게 되고 희생하는 엄마의 인생이 불쌍해 더 많이 걱정하고 위하게 되었다. 스무살이 되고 학비도 스스로 조달하고 일찍 독립해 돈을 벌어 엄마를 먼저 생각했다. 본인의 자취집은 남이 쓰던 물건에 싼 옷을 입으면서도 엄마와 가족이 좋으면 그만이었다.
직장 동료들이 해외로 휴가를 갈때 엄마는 한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다 서른이 한참 지나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갔다. 때되면 화장품과 옷도 알아서 사다 주었다. 매달 본가에 가면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들면서 엄마가 편해져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삼남매가 매달 내는 생활비가 있지만 딸은 개인돈을 쓰며 노동을 했다. 명절이나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면 무조건 갚아야 하는 엄마에게 딸은 선물도 대신 마련해 주었고 좋은 물건이 생기면 무조건 집으로 보냈다. 엄마는 항상 고마워했고 미안해했다. 그런 날들이 오래 이어졌다.
엄마는 나이가 들고부터 힘들어하는 날이 많아졌다. 집에 갈때마다 엉망인 집상태와 냉장고에 변변히 먹을게 없을때가 많았는데 어느순간부터는 딸이 장보고 반찬도 해놓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알아서 열심히 하던 어느날 화가 터졌다.
“뭐하길래 집에 반찬하나가 제대로 없어. 독거노인도 이렇게는 안 살겠네. 멀리 사는 딸이 오면 다른집 부모는 반찬해서 들려보내는데 나는 왜 항상 내가 다 해야돼!”
딸이 소리쳤다. 남들은 부모가 반찬해서 찾아오거나 택배보내거나 한다지만 딸은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에 혼자서 잘 해먹으니 맘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곤 했다. 부모가 자식을 챙기러 오진 않아도 딸이 부모를 챙기러 오는 날이 많았다. 초등학교때부터 오빠와 남동생의 공부를 봐주고 부부싸움을 하면 딸이니까 아빠한테 잘 말해보라고 등떠밀고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살때는 근거리의 아들보다 딸이 싸게 잘 산다고 연락했다. 그때는 몰랐다. 딸이 아니라 엄마로 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