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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빨간 날을 좋아한다. 신년이면 달력을 펼치며 올해는 법정휴일이 며칠이나 되는지 확인한다. 목요일까진 지치다가 금요일이면 기운나는 것처럼 노동자에게 주말과 휴일은 선물 같은 날이다. 직장인일 땐 쉬는 날을 기다렸다. 휴일이 좋다기보다 직장에 가는 게 더 싫으니까. 주말과 휴일을 선호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어디든 밀리고 혼잡해지는 게 싫었다. 대체로 모두가 '9 to 6' 패턴으로 근무하는 것도 별로였다. 출퇴근 지옥에 점심시간 식당 전쟁, 획일화된 움직임에 답답함이 있었다. 전화와 회의, 관계에 치이는 낮보다 가끔 돌아오는 당직이나 주말근무가 그래서 더 편했다. 인파가 사라져 마우스 클릭 소리만 나는 고요가 좋았고 능률이 올랐다. 왜 많은 회사가 같은 시간대에 몰아서 일하는 걸까. 종종 주말이나 공휴일만 근무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놀러 갈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고 싶었다.
명함 없는 삶을 살기로 결정하면서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남들과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말에 일정을 만들지 않고 대형마트도 가지 않는다. 주로 도서관에 가거나 출퇴근 시간을 피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공연 같은 문화생활, 취미수업도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를 선호한다. 도시에서 기 빨리지 않고 사는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가끔 명절이나 공휴일이 붙은 황금연휴가 오면 다들 좋아하지만 나는 명절이 싫다. 도서관도 휴관이고 명절 당일은 마트도 웬만한 가게도 휴무여서 갈 곳이 없다. 가족없는 혼자는 전국적으로 함께 쉬는 날이 달갑지 않다. 명절,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처럼 ‘누군가와 함께’를 유독 강조하는 날은 특별히 더 쓸쓸하다. 올해는 명절과 공휴일, 주말이 절묘하게 겹쳐 열흘에 가까운 연휴였다. 명절이 다가올 즈음부터 우울감이 들었고 어떻게 지내야 할지 불안감이 생겼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기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집순이도 아닌 사람은 답답할 따름이다. 무기력에 시달리는 사람은 더 깊은 우울로 빠지기 좋은 기간이다. 예상대로 누워서 드라마 정주행에 많은 시간을 썼다. 마음으론 그런 자신을 한심해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는 상태로 오래 늘어져 있었다.
명절이 지나고 열흘 동안 뭘 했는지 돌아봤다. 다행스럽게도 두 권의 책을 읽었고 몇 장의 글을 썼으며 명절 기념으로 잡채도 만들어 먹었다. 누웠다 일어나는 것 외에 큰 움직임은 없었지만 여러 번 본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몇 년 전에는 몰랐던 등장인물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냥 누워서 시간만 보내지 않았다. 그 드라마 안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찾고 글의 주제를 떠올렸다. 문장노트에 기억하고 싶은 글귀도 적었다. 크게 가치 있거나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만사 귀찮고 가라앉는 중에도 나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작은 움직임에 스스로가 대견하게 여겨져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