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6
일찍부터 자립심이 강하고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어린이는 칭찬을 받는다. ‘어쩜 이렇게 똑부러지냐, 일찍 철들었다, 엄마한테는 역시 딸이 필요하다, 착하다' 같은. 어린아이는 그 말에 힘입어 더욱 칭찬 받을 아이로 자란다. 이모는 나를 이렇게 회상한다.
“네가 어떤 아이였는줄 아니? 학교에 다녀오면 알아서 밥상펴고 숙제부터 하는 아이였어.”
하며 자랑스러워 하곤 했다. 부모가 아님에도 집에 올때마다 이번에는 몇등을 했는지 물었고 성적이 좋으면 칭찬을, 좀 떨어지면 정색을 했다. 나는 어릴때부터 이모의 방문이 예정될때면 위축되어 긴장상태가 되곤 했다. 집안에 첫 딸이었던 나에게 이모는 옷을 사다 입혔고 내 의지와 상관없지만 옷을 얻어입었으므로 성적으로 보답해야 했다. 이모에 의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브랜드 신상제품으로 도배한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집안의 첫 아들이던 오빠에게도 똑같이 해줬을거란 생각과 달리 오빠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고 동생은 누나를 보고 자신의 졸업식을 기대했으나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해 어린 마음에 받은 상처가 오래 갔다고 했다. 철저히 성적에 의한 차별대우였다.
그 사랑과 관심이 초등학교에서 끝났다면 나았을텐데 성인이 되고서도 이모는 옷을 사 입혔다. 옷을 주러 회사에 찾아온적도 있다. 이모는 딸이 없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동생의 딸이니까 유독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그 마음은 충분히 고맙지만 내 취향이나 의지와 반해도 선물을 받았으므로 갚아야 한다는 빚진 마음을 품고 살아야 했다. 동생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엄마에게도 뭔가를 잔뜩 챙겨 보내곤 했는데 다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면서 친언니에게조차 거절을 못하는 엄마대신 내가 나서야 했다. 돌아보면 어릴 때 이런 경험들이 가만히 못있는 병을 만들고, 눈치빠르게 나서서 해결하게 하고 그럼으로 예민해지고 연쇄작용으로 화가 많아지고 그 결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이로 자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고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처럼 자립적인 아이에게 원치 않는 선물을 하면서 뭔가를 바라는 상황에 노출시킨 것이다. 요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는 자녀의 상태와 심리를 살피고 성향을 파악하지만 과거의 엄마들은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공부를 닥달하는 엄마는 있어도 마음을 살피지는 않았다. 부친은 내가 말을 알아들을때부터 당신은 자기인생을 살면서 “엄마는 약하니까 딸인 네가 도와야 한다” 고 가스라이팅했다. 아들에게는 하지 않는 말이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린 마음에도 뭔가 부당하다고 느낀 날이 있었다. 열 살무렵 "내가 딸이어서 집안일을 해야하는거면 아들은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거냐"고 대든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가 울었다고 기억한다. 내가 한 말이 엄마를 울게 한다는 죄책감에 그 뒤로는 아무말 없이 집안일을 거들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엄마가 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어린애 셋 키우면서 혼자 생계와 살림을 하는 현실에서 내 도움이 간절했던 상황이라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도 아닌 어린 아이가 엄마를 걱정하고 엄마가 힘들까봐 불안해하며 이모에게도 하지 않는 한탄을 듣는 대나무숲이 되었다. 오랜시간이 걸려 우거지는 나무숲과 달리 대숲은 죽순이 순식간에 자라 단기간에 숲을 이룬다. 풀에 속하는 식물을 나무라고 혼동하는 대나무처럼 어린아이가 빠르게 자란 대숲은 나무가 될 수 없다. 나이테가 생기고 가지가 뻗어나는 다른나무와 달리 대나무는 속이 비어있고 바람에 휘청이며 쓰러지기도 한다. 천천히 자라야할 아이가 사춘기도 없이 일찍 철든다고 어른들은 좋아하지만 그 아이는 뒤늦게 심한 사춘기를 만나고 혼란의 시기를 보내야 한다. 제때 거쳐야 할 것을 속성으로 넘기면 더 크고 힘든 시간을 만나 방황하는 것이다. 어릴 때 면역을 만들지 못하고 자라면 커서 고생하듯이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어른같은 아이는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키우고 있다는걸 알지 못한다. 그걸 알아채는게 부모여야 한다. 나의 부모는 지금도 알아채지 못했고 그래서 홀로 아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