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7
가족을 보지 않으면 나아질까 싶었다. 처음 얼마간은 마음이 덤덤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려고 누운 어느 밤에 깊은 설움이 올라오고 거리를 걷다가 문득 눈물이 쏟아지는 날이 생겼다. 해결되지 못한 상처가 불쑥불쑥 생활 위로 올라와 번졌다. 혼자 있는게 힘들어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사랑했던 인생의 첫 친구와 헤어졌다는 말로 입을 뗐다. 생전 품어보지 못한 나쁜 생각, 나쁜 말들이 입밖으로 나오고 억울함에 몸서리치는 생활이 괴롭다고 말했다. 낯선이에게 내 마음을 꺼내보이는게 어색했으나 차분히 듣고 공감해주는 선생님에게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일 잘하는 사람은 보상대신 일로 얹혀지더군요. 직장과 가족, 모든 관계에서 그랬어요. 돌아보니 보상을 제대로 받아본게 없었습니다. 엄마는 말로 갚는 사람이고 저는 몸으로 갚는 사람이었더라고요. 엄마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인데 저는 투덜대면서 다하는 사람입니다. 어느해 겨울,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를 위해 목도리를 몇 개 떠서 보낸적이 있어요. 몇 개를 더 떠주면 연말에 교회 집사님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평소 잘 챙겨주는 분들께 마음을 전하고 싶어해서 열 개를 더 해서 보냈습니다. 그중 선물이 맘에 들었던 집사님이 엄마에게 털실을 주며 목도리를 두개 떠 달라고 부탁을 했대요. 저에게 묻지도 않고 냉큼 받아와서는 떠 달라고 하는데 순간 짜증이 났어요. 그 집사님의 손주에게 줄 선물을 왜 제가 떠야하는지 황당하잖아요. 자신의 딸도 있으면서 부탁을 한 집사님도, 그걸 받아오는 엄마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떠줄 생각없으니 당장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갈때마다 그 실이 계속 있어서 볼때마다 화를 내면서 안한다는 의사를 반복해서 전했어요. 다음해 겨울이 되자 부탁한 집사님이 언제 완성되느냐고 묻더라며 다신 부탁안할테니 이번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더라고요. 엄마가 남의 부탁으로 딸에게 사정하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요. 저는 남을 위한 뜨게질에 화난게 아니에요. 제가 어릴 때 엄마가 10년간 뜨개질 부업을 했는데 잠자는 시간 빼고 종일 뜨개질을 하셨거든요. 본인이 경험으로 알잖아요. 그러면 자식한테 그런 부탁을 하면 안되는거잖아요. 귀여워 보이는 그 목도리 하나 뜨는데 안쉬고 꼬박 대여섯시간이 걸려요. 저는 엄마에게 보낼 목도리를 뜨면서 허리랑 팔이 아파 엄마가 부업할때 엄청 힘들었구나 싶어 한참을 울었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미리 묻지도 않고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본인이 해본다지만 오래전이라 다 잊었고 인터넷도 할줄 모르는데 어디서 도안찾고 익히겠어요. 그게 더 싫었어요. 엄마는 남에게 싫은 소리도 거절도 못해요. 제가 그렇게 싫다고 하는대도 거절대신 저에게 사정하는 그 상황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어요. 이미 1년이 지나 거절할 타이밍도 놓친뒤라 결국 두개를 떠서 보냈습니다. 왜 부모가 자식의 마음보다 남에게 더 신경쓰는지 답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부모였던거에요. 어릴때도 엄마는 필요한 잔소리도 안해서 제가 대신 하고 엄마의 역할을 했는데 그게 생활이 됐나봐요. 돌아보니 저는 보상을 받은게 없더라고요.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말한건 상징적인 의미였어요. 백만원이든 2백만원이든 엄마가 주는 시늉만 해도 됐어요. 엄마의 마음을 확인해보고 싶었던거지 돈을 받으려는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주겠다던 엄마에게 돈도 위로도 받지 못했어요. 제가 엄마였고 엄마가 딸이었어요. 지금껏 딸인줄 알았는데 멀리 떨어져 돌아보니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