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할까?
'사랑'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제일 가치 있는 개념이다.
삶이 유한하고, 끝이 정해져 있음에도 우린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좌절하며 살아간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하고, 만남은 또 다른 이별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사랑을 한다.
수없이 예정되어 있는 이별 앞에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존재의 이유는 사랑에서 찾게 된다.
이별의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작은 이별부터 큰 이별까지 이별을 대처하는 자세는 어때야만 할까.
이별을 어떻게 대처해야 더 좋은 만남을 할 수 있을까, 그 만남 또한 결국 이별하지 않을까.
결국은 정답이 없는 문제지를 들고, 이별의 방정식을 풀어내본다.
가슴 아프게도 사랑은 대게 기울어져 있다.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때도 있고, 시소처럼 흐름이 바뀔 때도 있다.
우주의 원리처럼 사랑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있다. 밀려올 때와 쓸려갈 때. 감정의 파도에 맞춰 기운을 살피고 밀고 당긴다. 그러다 보면 결이 맞지 않을 때도 있고, 맞지 않음에도 맞추고 싶을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의지라도 있을 때 어떻게든 관계가 이어진다. 마침내 양쪽의 의지가 꺾이면 관계가 부서진다.
우리가 후회하는 이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단순히 나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해 부서진 관계, 지독하게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관계, 둘의 의지보다 우주의 기운이 더 컸던 관계, 기울었던 시소 속에서 상대방의 의지와 노력을 미처 몰랐던 관계, 사랑함에도 노력하지 못했던 관계.
소중한 건 항상 잃어봐야 깨닫는다. 부서지고 나서야,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부서진 모래성을 다시 쌓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수없이 이어질 이별의 순간들을 모두 후회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 성숙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이별에 쿨한 척할 필요는 없다. 사랑했던 내 마음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할 시간도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고, 나를 위한 명상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런 이별에 대한 유예 시간을 지지하는 편이다. 그래서 유독 '환승연애'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이 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아이폰 17이 너무 마음에 들어도, 갑자기 누군가 아이폰 18을 선물해 주면 17은 잊혀진다. 보통 그렇고, 대부분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추억하고 기억하며 살아간다. 지나간 길에는 늘 배울 것이 있고, 아픔이 있고, 행복이 있다. 그래서 잘 헤어져야 한다.
잘 헤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에 '잘'이 있을까?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단어가 아닐까.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며, 상연이 안락사하는 여정을 은중에게 함께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무척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오죽했으면'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은중은 끝까지 상연을 받아주었다. '잘' 헤어지기 위해. 둘의 우정과 사랑과 추억을 조금이나마 예쁘게 남겨둘 수 있게.
이별하는데 잘 헤어지는 게 중요할까?
(그건 너무 낭만적인 거 아니야? 어차피 안 볼 사이인데.)
잠수 이별이나 메신저로 이별을 통보한다거나,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한다거나 여러 방식의 일방적인 이별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이별 방식이 꼭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이거나, 귀책사유가 분명할 때이거나.
신뢰가 오래 쌓인 관계에서 다소 일방적인 이별 방식은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임은 분명하다. 어차피 헤어질 것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니 확실하게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자신의 이기심을 합리화하기 위한 그럴듯한 핑계로 보인다.
붙잡고, 사과하고, 매달리고, 울고불고,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그럼에도 우리가 헤어져야 하고, 사랑했고, 미안하고, 응원하고. 그런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런 태도가 매 순간 만남을 대하는 자세를 만든다.
우리는 늘 이별해야 하기에, 아름답게 이별하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할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한 당신을 위한 예의,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에 대한 예의,
기울어진 시소를 붙잡고 있던 나에 대한 예의.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