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한 번도 메일함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 보지 않았을까? 왜 그동안 그녀가 보냈던 메일을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 메일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날짜는 2017년 3월 11일이었다. 그녀 역시 본인이 마지막에 나한테 어떤 내용의 글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났다며 "노화의 부작용"이라고 했다.
메일에는 얼마 전, 펜실베이니아에서 살던 2층짜리 주택에서 1층에 지하실도 없는 작은 집으로 옮겼다고 돼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많이 정리했는데 어차피 플로리다로 이주할 계획이어서 짐 정리가 필요했다고 했다.
"Fort Myers, Florida" 아마 이곳인 듯했다.
그녀가 이주할 곳은 침실이 한 개인 작은 아파트인데 동네에서 집값이 제일 비싸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근처에는 골프장이 있는 화려한 주택들도 많다고 했다.
그녀가 머물게 될 곳은 Assisted Living Unit (노인을 위한 생활지원 주택단지)인데 식사가 제공되고 단체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다고 했다. 다만 얼마큼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했다.
그곳에서 지내다 더 이상 혼자 움직이기가 힘들어지면 요양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케어를 받기는 하겠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그곳에 있어야 하는 거라고 했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메일에 쓰여있었다.
외국영화에서 하얀 백발의 어르신들이 휠체어를 타고 요양시설에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아는 그녀도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그런 장면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예전에 그녀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돈이 많은 사람이 부럽다고도 했었다.
펜실베이니아의 그녀의 집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 호화롭지는 않아도 안락하고 따스했던 그 공기가 나는 참 좋았었다.
저녁을 먹고 그녀와 산책을 하다가 옆집에서 안 쓰는 테이블을 버리려고 밖에 놔둔 건 발견한 적이 있었다. 마침 내가 머물고 있던 방에 작은 테이블이 필요했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낑낑대며 그 테이블을 들고 왔다. 차고에서 테이블을 깨끗하게 씻을 때 데이지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었다. 말끔해진 테이블은 내 방에서 쓰기에 딱 알맞았다.
크리스마스 전날, 그녀의 레시피대로 다양한 모양의 맛과 크기의 쿠키를 함께 굽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나도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우리나라의 다이소 같은 1달러 샵에서 산 노트, 가방도 있었고 마트에서 구입한 바디크림이나 젤도 있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내복"이라는 걸 선물 받기도 했다. 운동복에 티셔츠만 입고 잤었는데 월마트에서 샀다고 한 하늘색 실내복은 감촉이 참 좋았다. (이 실내복은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편하고 따뜻했다. 이제 보풀이 많이 날리고 때도 많이 탔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이면 이 하늘색 실내복만 입고 지낸다)
그때 그녀와 그녀 가족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은 나에게 제일 풍요로웠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는 걸 느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주하는 곳 주위에 골프시설이 딸린 주택이 있다고 했을 때, 요양원에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비용에 대해 언급했을 때 노후생활에 대해 걱정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왜 그때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말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건 현실이었다.
그녀가 보낸 편지에는 데이지에 대한 소식도 있었다.
데이지는 이제 22살이 되었고 집에서 돌봄 케어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주일에 2번 이상 상담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에 복용하고 있는 약 때문에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계속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밤에는 잠도 잘 못 잔다고 쓰여 있었다. 데이지의 근황에 대해 설명하는 그녀에게서 손녀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방금 전 고양이 캐릭터 선물을 보낸 게 후회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후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