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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02. 2021

인생에 외국어 하나쯤



"칸쿤에 가보세요"


혼자 가방을 낑낑 끌고 멕시코의 "메리다"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직원이 내 일정을 물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토요일에 멕시코시티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갑자기 칸쿤 이야기를 해서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칸쿤이요?"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휴양지 그 칸쿤을 얘기하는 게 맞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라 직원한테 다시 물어보니 웃으면서 맞다고 했다. 여기서 칸쿤까지 버스를 타면 금방 갈 수 있다고 있다. 그러면서 칸쿤 아래에 있는 "플라야 델 카르멘 (Playa del Carmen)이라는 곳 바다색이 더 이쁘니 그곳을 가보라고 추천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칸쿤은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상상하며 "멕시코 칸쿤"이라고 노트에 적을 때만 해도 그런 일은 머나먼 미래에만 가능한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버스를 몇 시간만 타면 칸쿤에 도착할 수 있다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주말이라서 다행이었다. 직원의 도움으로 비행기 일정을 변경하고 버스표를 샀다. 내 돈을 주고 숙소도 예약했다.


다음 날 새벽, 캐리어 가방을 끌고 버스에 혼자 올랐다.





버스를 탄지 4시간이 지나 드디어 칸쿤에 도착했다.

 

그곳의 바다는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투명하고 맑았다. 하얀 모래는 뜨거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물속에 두 발을 담그자 기분 좋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믿을 수 없었다. 어느 휴양지 영화에서처럼 나도 레모네이드를 한잔 시키고 썬베드에 누웠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해변가에서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너무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서 조금만 쉬고 다시 나가려고 했는데 아뿔싸,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시차 적응을 못해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거였다. 깜짝 놀라 아침도 못 먹고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공항으로 갔다. 


꿈만 같았던 칸쿤의 해변가에서 고작 몇 시간만 보낸 게 다인데 떠나야 해서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몇 년 전에 갔던 그곳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참 설렌다. 










칸쿤은 신혼여행으로, 혹은 은퇴 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내 평생 칸쿤을 이렇게 일찍 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비록 몇 시간의 물놀이가 다였지만 은퇴도, 신혼여행도 아닌데 칸쿤을 이렇게 일찍 다녀올 수 있던 건 "스페인어" 덕분에 가능했다.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당시 중남미 담당이었고 마침 멕시코로 출장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목적지가 칸쿤은 아니었지만. 






평범했던 내 인생이 남들과는 달리 조금 특별해질 수 있었던 건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스페인어가 아니었다면,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어쩌면 밋밋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삶이 풍요롭다고 느껴졌을 때, 그곳에는 항상 "스페인어"가 있었다. 


입사 후 처음 남미로 해외출장을 갔을 때였다. 같이 간 회사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할 때의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회사 사무실에서는 말도 잘 안 하고 조용한 직원이었는데 스페인어로 말할 때의 내 모습은 전혀 달랐다. 


스페인권 국가 특유의 낙천적인 국민성 때문에 나도 밝고 명랑한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고 또 실제로 내가 그런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스페인어를 쓸 때만큼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스페인어라는 외국어를 통해 내 안에 여러 모습의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범한 내 일상이 특별해질 수 있었던 건 이 새로운 언어를 배웠기에 가능했다. 내 삶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생에 외국어 하나쯤 배워둔다면 나도 몰랐던 나를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것이다. 이보다 설레는 순간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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