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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Sep 08. 2021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퇴근할 때마다 생각했다. 


강변을 따라 걸으며, 여름밤에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이 불어올 때 


가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낙엽이 쌓여있는 이 길을, 눈이 쌓여있는 이곳을 걷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비가 오지 않던 날, 퇴근길에 무작정 또 걷고 싶었다.


지하철역을 지나 강변로에 다다르자 이전과는 다른 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 가을이구나. 


다행히 챙겨 온 재킷이 있어서 꺼내 입었다. 


계절의 변화가 온몸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날들이 생각났다. 


퇴근 후,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었고 이런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서 강변을 걷고 또 걸었다. 


푸른 잎의 나무가 많은 이곳에 도착하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마스크를 잠시 내리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집에 도착하면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개운할 수 없었다. 이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힘들어도 걸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었는데 날씨가 더 이상 여름이 아니었다. 


시계를 보니 회사까지 걸어가도 충분할 만큼 시간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걸어서 출근을 해볼까?" 


갑자기 마음이 신났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해가 쨍쨍했던 여름에는 밖에서 걷는 게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걸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이 길을 아침에 걷게 될 줄이야.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 도착했다. 출근길은 퇴근길보다 훨씬 짧게 느껴졌다. 


저녁노을이 깜깜하게 뒤덮을 때 걷던 길을 맑은 하늘에 구름이 떠 있는 아침에 걸으니 기분이 색달랐다.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가을이 왔다. 

바닥을 치던 마음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에는 그동안 생각만 하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던 몇 가지 일들을 해보고 싶다. 그중 하나는 기억 속에 점점 희미해져 가는 해외에서의 경험과 그때의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막막하기도 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천천히 꺼내어보고 싶다. 


두렵고 설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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